열두 번째 끼니 - 4
자취를 하다 보면 주변에서 먹을 것을 종종 갖다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뭐라도 더 해먹이고 싶어서, 행사나 파티를 했는데 먹을 것이 남아 있어서, 그 밖의 많은 이유로 반찬과 먹을거리를 받을 때가 있다.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주신 사람들의 마음이 귀하고 소중한 걸 잘 알기 때문에 되도록 다 먹으려고 하지만, 어떤 때에는 좋아하지 않거나 체질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버린 적이 있었다. 먹지 못하고 버린 이 멸치볶음을 보면서, 나를 위해 베풀어 주신 분의 성의를 받는 법을 생각해 보았다.
전전 글에도 말했듯이, 나는 두 달 전에 한 권사님의 선물을 받았다. 파란 보랭 백에는 맛있는 함박스테이크 옆에 견과류와 함께 볶은 고소한 멸치볶음이 들어 있었다. 겉보기엔 정말 맛있어 보이지만,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나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느껴졌다. 한 달 동안 냉장고 한편에 자리만 차지하던 이 음식은, <한 끼의 이야기>의 글감으로 사용된 후 그대로 버려졌다. 정말 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눈물을 머금고 휴지통 안으로 던졌다.
자취 초기, 다른 사람들한테 반찬을 받을 때는 좋은 티,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고마운 표정이 만면에 다 드러났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으면 부담스럽다, 아쉽다는 태도를 직접 내비쳤다. 어떻게 보면 솔직한 거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무례하게 느껴졌다. 처음 한두 번은 반찬을 받을 수 있었지만, 좋고 싫은 태도를 대놓고 드러내니 나를 향한 도움의 손길이 점차 줄어들었다. 주는 사람도 받는 나도 부담스러웠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찬을 받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다 보니, 이제는 한 번 받을 때마다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게 되었다. 비록 내 입이 아니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더라도, 음식을 갖다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해서 그만의 방식으로 내게 마음을 표했을 뿐인데, 나랑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건 무례한 행동임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온 반찬이 쉬어버려도 감사의 예를 표했던 형의 행동을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론 맛있는 반찬 대신 따스한 마음을 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