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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키 IKE Mar 26. 2022

응답하라 2012, 라떼의 '파리바게트' 알바생 시절

라떼는 말이야 1인 5역을 했지, 왜그랬을까

"여기 케이크 하나 주시고요, 팥빙수 2개 포장이요."

"라떼 하나에 에스프레소는 절반, 카푸치노 두 잔, 딸기 스무디에 생과일 토마토 한 잔이요."




때는 바야흐로 2012년, 내가 '파리바게트' 빵집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1인 5역쯤 했던 거 같다. 매장 포스 기를 담당하고 있던 나에게 케이크 포장과, (여름에) 팥빙수 포장, 커피 주문, 빵 포장 및 계산이 한 번에 들어왔다. 물론 관련된 재료가 소진되어 보충하는 작업은 덤이다.

줄 서있는 손님들이 하나씩만 주문하면 참 좋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난 정말 많은 순간에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했다.


당시 시급은 4천 원대였으며(지금은 두 배인걸 보며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주말 근무였는데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정적인 점심시간도 고정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꽉 채운 10시간을 일했다. 앉아있을 새 없이 바빴으므로 늘 일이 끝나면 다리가 퉁퉁 부어서 혈액 순환 스트레칭을 하기 바빴다. 지금 보면 첫 아르바이트였는데 너무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그때는 재밌는 일이 많았다. 친한 친구랑 같이 일해서 맨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빵을 구워주시던 기사님이랑도 친하게 지냈다. 때로 신제품이 출시되면 사장님께서 맛을 보라며 먼저 주시기도 했고 아침에 배고픈 상태로 출근하면 갓 구워낸 빵을 먹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역시 갓 구워낸 빵은 진리이던가? 그 이후로 난 확실한 빵순이가 되어 지금도 빵집 앞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의 방앗간이 되어 버렸다.


당시 10시간 근무했던 빵집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는 이랬다.

오전에 본사에서 도착한 빵을 진열대에 옮겨 정리한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면 새벽부터 출근해서 열심히 기사님이 구워낸 빵을 판에 식히고, 식힌 빵을 포장한다. 틈틈이 손님을 응대하고 계산을 한다. 중간중간 일손이 부족하면 그 외에 다른 일들도 했다. 그리고 포스를 보면서 카페(커피)도 운영하고, 케이크도 포장하고, 진열대도 정리하고, (여름에는) 빙수도 만든다. 지점, 시간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시 내가 일했던 방식으로는 정말 극기훈련과 비슷한 강도의 힘든 아르바이트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큰 실수, 케이크를 꺼내다가 흠집을 냈다.

어느 날은 본사에서 만들어서 들여오는 케이크를 포장하다가 손으로 흠집을 내어 판매가 불가해진 적이 있다. 아마도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그 이후로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케이크를 매장 진열대에서 꺼내는 일에 두려움이 생겼었다. 케이크는 대부분 크림으로 겉이 쌓여있기 때문에 약간만 건드려도 100% 티가 난다. 그리고 고객은 당연히 그 흠집을 발견할 수밖에 없어서 판매가 불가해진다. 가격도 일반 빵과는 다르게 1~2만 원 이상이었으므로 아르바이트생인 나에게는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수를 한 이후에는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조급함으로 인해 생긴 실수이니 한 번에 하나의 행동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디 내가 마음먹었다고 세상이 알아줄까. 나를 어렵게 만든 주문은 동시에 '케이크 포장과 팥빙수 혹은 커피 주문을 하는 고객'이었다.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작업이 한 번에 필요한 것이다. 작은 동네 매장이어서 2명의 알바생으로만 충당했으니 한 명이 하나에 작업을 하면 나머지 한 명이 다른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그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은 능숙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난 손이 빨라졌다. 동시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었으며 비교적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으로 발전했다. 이 모든 건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가능했던 일이고 실수가 있었기에 만회할 능력이 필요해서 생긴 변화일 것이다. 힘든 과정은 그 순간에 늘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돌이켜보면 또 장점을 내재하고 있었다. 장/단은 분명히 공존한다.


일 년 넘게 일했던 빵집 아르바이트생을 그만둔 이유, '크리스마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빵집 아르바이트생 전과 후로 나뉜다. 전과 지금은(아무 상관이 없으므로) 가장 좋아하는 연례행사 중 하루다. 그런데,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에는 가장 싫어하는 날이었다. 이유는 케이크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다수가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면(이브와 당일) 미리미리 케이크를 예약하고 구매한다. 난 크리스마스 당일 비유를 하자면 케이크 박스에 깔린 수준이었고 손님 대응을 하다가 진이 빠졌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로 케이크가 너무 싫어졌고 결국 다음 해에 같은 시즌을 맞이할 자신이 없어 그만두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그 일의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의 시절을 보냈으므로 지금 만나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일이 몰려서 빠르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 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번이라도 경험해 봤다면 혹은 역지사지로 생각한다면 막무가내로 나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진상 손님은 될 수 없다. 함께 공존하는 사회에서 불평하기 이전에 심호흡 3번으로 한 번 더 인내할 수 있는 참된 어른이 많아지기를. 답답하기는 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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