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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껌정호랭이 Black Tiger Jul 11. 2023

5. 결혼사진은 분명히 촬영했는데 영원히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결혼 전에 서로 간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 알아보는 추심이라는 것을 했었다. 상대방이 알 수 없게 은밀하게 지인들을 통해서 그 집안의 재산상황이라든지? 형제자매 친척들 관계는 어떤지? 또한 알려지지 않은 범죄 사실은 없는지? 유전으로 내려오는 질병은 없는지? 혹여 혼인은 처음인지? 등등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사항들을 두루 섭렵해서 알아보고 그다음에 이상이 없을 때에 서로 양가 부모 형제들이 만나서 상견례를 진행했었다. 


예전에는 결혼에 이 추심을 하지 않고서는 서로 간에 결혼을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이것이 최우선적으로 진행했었다. 


진실 씨네 집에서도 이점을 염두에 두고 여러 방면으로 지인들을 수소문해 보았으나 저 먼 시골사람들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 까지 추심을 한다는 건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견례를 사랑 씨네 집으로 가서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었는데, 사랑 씨네 집에서도 아마 진실 씨네와  마찬가지로 거리관계상 추심은 쉽지 않을 거라고 진실 씨네 집에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 씨네 집에서는 안 씨  집안의 본(本)이 죽산 안 씨이다 보니 진실 씨네 시골과 그리 멀지 않아 그 안 씨 집안사람을 수소문해서 진실 씨 동네에까지 보내서 나름대로의 진실 씨네 집안 내력을 알아봤었다는 얘기를 후에 들을 수 있었다.


진실 씨와 사랑 씨가 가까이 지내면 지낼수록 양가 집안에서도 빨리 두 사람을 짝을 맺어 줘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진실 씨나 사랑 씨 입장에서는 우선 가지고 있는 결혼자금이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기다리고 있는 일이지만 그리 반갑지 만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금전 관계에 대해서 두 사람 말고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부모님들은 더더욱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진실 씨네 집안에서는 아무리 사업이 망했다 해도 차마 전 재산이 30만 원 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증금 30만 원에 12만 원짜리  월세를 살고 있지만 진실 씨는 부모님들께 집에 대해서는 一言半句 도 하지 않고 오로지 방 두 칸짜리만 강조했었다. 이를 믿고 있는 진실 씨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한 진실 씨한테 시집보내는 사랑 씨네 집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사자 달린 직업을 가진 사람들한테 결혼 혼수품으로 준비해 온다는 열쇠 세 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으로 어느 정도의 혼수는 챙겨서 보내지 않겠냐? 하는 조금 큰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직장을 구하다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숙명인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자 진실 씨가 잠시 고향에 내려와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진실 씨네 시골 마을 집에 예고 없이 어여쁜 아가씨가 두리번거리면서 불쑥 들어섰다. 사랑 씨였다. 전혀 아무런 기척도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깜짝 놀란 진실 씨는 어떻게 된 일 이냐며 물어볼 여유도 찾지 못하고 커다란 두 눈망울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 휘둥그레졌다.


사실은 진실 씨가 만나는 여자는 있다고 부모님들도 알고는 계셨지만 직접 소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 씨가 시골 구석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스스로 찾아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첫 번째 진실 씨의 여자친구를 부모님들께 소개해 주게 되고 말았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사랑 씨가 진실 씨네 고향에 한번 가고 싶다면서 가는 방법을 여러 차례 물어본 적은 있었는데 그것이 사랑 씨는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워낙 산골짜기 시골인 지라 서울 출신인 사랑 씨가 찾아오기까지는 그리 쉽지 않은 코스였다. 버스를 타더라도 강남터미널에서는 버스가 없어서 당시에는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이나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군청소 제지까지 와서 거기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면소제지에서 내려 다시 말 그대로 시골길을 달리는 2시간이나 3시간에 한 번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목적지에 내려서, 다시 또 한참 산길 들길을 걸어야만 진실 씨네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기차를 타더라도 기차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탈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의 지선 버스를 동일한 방법으로 갈아 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군소재지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택시를 타면 올 수는 있었지만, 어려운 시기에 자가용이 있을 리는 만무했고, 택시 또한 자기 관할 군이나 면소재지를 벗어나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통 급한 일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이 대중교통수단 인 시외,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 씨를 처음 본 진실 씨 부모님들은 반가움 반 놀라움 반... 


단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시골에 데려온 적 없는 진실 씨였는데 소리소문 없이 여자 친구가 나타 난 그것도 그럴 수밖에 진실 씨가 6남매의 장남이다 보니, 며느리 감이나 사윗감을 대해 본 적도 처음이라서 부모님들도 긴장되기는 마찬 가지였다.


"아버님 어머님 이 사람이 안사랑  제가 만나는 사람입니다"

"사랑 씨 인사 하세요? 아버님 어머님이세요"


진실 씨 집을 향해서 서울을 출발할 때는 평상시처럼 긴장도 하지 않고 활기차고 당당해할 것 같았던 사랑 씨의 얼굴 표정은 이미 긴장한 탓에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사랑입니다"

"좀 더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진실 씨 아버님이 사랑 씨 인사말에 즐거움의 미소를 띠시며 반가운 맘으로 인사를 받는다.


"그래 이 시골까지 찾아오느라 고생했네."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제야 보는구먼"

"잘 왔어 편하게 쉬었다 올라가게나"


진실 씨 어머님은 더 온화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아이고 아가야!!! 고생했다"

"이 멀고 먼 촌구석까지 서울 아가씨가 어떻게 잘 찾아왔구먼!!"

"잘 왔다, 잘 왔어"


여기저기서 동네 이주머니들이 진실 씨 여자친구가 왔다고 해서 보러 왔다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들 소식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진실 씨네 집으로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디 사는 색시이며? 나이는? 집안은 좀 잘 사는가? 등등 본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자기들 일인 양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래서 시골은 말이 많아서 무슨 일이든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하지 않으면, 말에 말이 붙어서 금세 온 동네에 다 퍼진다.


하루 이틀 사랑 씨와 진실 씨는 진실 씨네 고향 집에서 달콤하게 데이트를 즐기면서 보냈다. 낮에는 진실 씨네 동네 앞 큰 둑길을 걸으며 데이트를 했고, 특히나 밤에는 약간 높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네발을 교차로 앞뒤로 흔들면서 무한대의 사랑 속 허공을 휘저었고, 저 멀리 수 없이 많은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다짐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은 꼭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깊이는 나날이 깊어만 갔었다.


"사랑 씨 저 많은 별 중에 우리 별도 있겠지요?"

"내 별은 사랑 씨만 바라 보고, 사랑 씨 별은 나만 바라보고 말하네요!!"


"에이 어디 보이지 않는데요?"

"뭐라고 말하는데요?"


"영원히 함께 하자고~ 눈빛약속을 하고 있는데요?"

 "네 저기 있잖아요? 안 보이세요 사랑 씨"

"사랑 씨는 아직 저를 덜 사랑하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만 보이나 보네!!!"


 그날따라 시골 밤하늘의 별은 유난히도 많고 반짝반짝 빛을 내뿜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뇌리에 남아서 별만 보면 아른 거리는 푸르른 시절에 "눈빛으로 약속" 했던 별이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 지난날의 아픈 추억들을 되새기게 해 준다.


사랑 씨가 진실 씨네 고향을 다녀간 이후로 진실 씨네 집에서는 급속도로 두 사람의 결혼 얘기가 진전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진실 씨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떠한 상황이든 두 칸짜리 방을 얻어서 여동생 하고 살고 있으니 사랑 씨만 들어와서 살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계셨기에 서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진실 씨는 돈을 빨리 모아서 사랑 씨 돈부터 우선적으로 갚아야 하고, 결혼자금을  모을 때까지는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직장만 찾고 있었지, 결혼식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었는데... 


진실 씨 부모님의 성화에 사랑 씨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금전 관계가 얽혀 있어서 지금 상황에서는 사랑 씨가 아무것도 혼수로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실 씨가 황성물산 운영 자금이 부족할 때 사랑 씨  결혼자금을 빌려서 이미 다 사용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설령 결혼을 한다 해도 사랑 씨 입장에서도 빈손으로 올 수밖에 없는데... 


이 상황을 진실 씨 부모님이나 사랑 씨 부모님이나 어느 부모님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건 말도 안 되는 靑天霹靂 같은 날벼락이 진실 씨와 사랑 씨 두 사람에게는 떨어지고 만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부모님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방법을 찾고 찾고 또 찾아보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일전에 하도 여러 군데라 언제 입사 지원을 했는지도 모르는 업체에서 진실 씨한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우선 취직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다급했다. NS컨설팅 그룹이라는 자그마한 신설회사였다. 진실 씨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어떤 회사이든 오라는 데만 있으면 우선 취직을 하고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NS에서 시행하는 면접에 응했다. 그런데 진실 씨 성격하고는 너무나 맞지 않는 마케팅 교육을 주업으로 하는 일종의 교육 기관 이면서 이와 수반되는 영업을 해야 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다음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일단 출근을 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백화점이나 유통업체 직원들을 상대로 영업 및 친절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였는데 국내에는 이 회사 말고는 전무했고 이런 업종 자체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 회사에서 담당할 업무는 전문적으로 직원교육을 맡길 회사를 컨텍해서 이 업무를 수주해 와야 했다. 진실 씨 성격하고는 전혀 맞지 않지만 결혼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다녀야만 했다. 직장도 없는 백수 사위를 좋다고 맞이할 처갓집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NS에 출근하던 어느 날 점심때쯤인가. 진실 씨 아버님께서 터미널에 도착했다면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생기 셨나!!!" 아무런 연락이 없던 아버님과 어머님이 서울로 올라오신 것이었다. 회사에 사정 얘기를 하고 무작정 용산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부모님들은 태연하게  진실 씨를 맞으시며 어서 집으로 가자고 하신다.


그날 저녁 사랑 씨도 오라고 하라 하셔서 광명시 진실 씨집으로 다 모여서 저녁을 먹고 나서 할 얘기가 있으시다며 사랑 씨와 진실 씨를 부르시더니, 뜬금없이 이번 주말에 사랑 씨네 집에 찾아가서 사랑 씨 부모님을 뵐 테니 사랑 씨집에 기별을 넣어 놓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날벼락도 유분수지 시골에서 결혼하라고 재촉하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오늘은 갑자기 올라오셔서 예고도 없이 사랑 씨 집을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진실 씨 부모님들이 찾아뵙는 것이 예의상 맞는 것 같다고 무조건 날자를 통보하신 것이다. 


사랑 씨네 집안에 대해서 추심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으로 알아볼 수도 없고 하다 보니 아마도 며느리로 받아들이려면 가정상황은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하고 싶으셔서 고민고민 하시다 결정하시고 올라 온신 것 같았다.


"진실 씨 어떻게 해?"

"우리 집에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해?"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하라고..."  

사랑 씨가 입장이 난처해하며 어쩔 줄 을 몰라했다.


방법이 없었다. 진실 씨도 아직 사랑 씨 부모님을 모두 뵙지는 못하고 겨우 사랑 씨의 하나뿐인 언니하고 어머님만 겨우 한 두 번 뵌 게 다였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사랑 씨 언니를 설득해서 양해를 구할 방법밖에는...


사랑 씨와 진실 씨가 어렵게 어렵게 언니를 설득해 사랑 씨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당행이 도 딸 가진 집이라서 약한 마음이 드셔서 일까?  일방적인 진실 씨 부모님의 강제 상견례에, 다행히도 기분 나빠하시지 않고 멀리 시골에서 올라오셨는데 뵙자며 쉽게 화답해 주셨다.


주말에 사랑 씨네 집은 좀 멀고 어설픈 식당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시골분들이고 그러니 좀 편안한 가정집인, ㅇㅇ동에서 살고 계시는 사랑 씨 큰 오빠 집에서 뵙자고 하셨다.


상견례 날자가 잡히고 나니 사랑 씨와 진실 씨는 더 걱정이 많아졌다. 시골에 갔을 때도 동네 이주머니들이 사랑 씨 귀에 대놓고 말하듯 뒤에서 하는 말들이, 진실 씨 아버님께서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들을 늦게 낳는 바람에 회갑 때 손주나 볼 수 있을 런지 모르겠다면서 뒷담화들을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랑 씨 입장에서는 더 미룰 수도 없는 자명한 걱정거리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인간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던 시절이라 결혼들을 보편적으로 빨리 하는 시절이었는데, 진실 씨 아버님은 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시고 친형하고 누나가 한분씩 계셨지만 제대로 된 살림을 이루지 못하고 사셨고, 아버님이 스스로 자수 성가 하시다 보니 결혼을 늦은 나이인 30세에 겨우 하셨고, 당행이 도 진실 씨를 바로 다음 해에 낳았으나 아버님 연배의 동네 다른 분들은 20대 초반에 결혼을 일찍들 하다 보니 자식들이 훨씬 더 컸었기에 아버님께서 직접적인 말씀은 안 하시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러한 생각도 한쪽면은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상견례 당일 진실 씨는 부모님만 모시고 ㅇㅇ동에 있는 큰 오빠집을 처음으로 찾아뵈었다. 사랑 씨 큰오빠가 사업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빌라였는데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잘 지어진 꽤 나 큰 평수에 고급자재로 꾸며진 집에서 살고 계셨다. 진실 씨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처갓집 처남이 못 사는 것을 부모님께 보여 드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잘 살고 있는 편이 훨씬 유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혼수 얘기가 나올까 한편으로는 조마조마 걱정이었지만...


다행히도 두 집안 상견례는 잘 진행되었다. 사랑 씨 부모님들이야 너무나 착하게 사셔서 두말할 나위 없었는데 올케나 오빠께서도 많은 배려를 해 주신 덕에 진실 씨 부모님도 사랑 씨 집안에 대해서는 그리 부정적인 편견은 없이 만족하신 모습이었다. 조금 아쉽다면 하시면서 진실 씨 귀에 돌아서 들려오는 말은 사랑 씨 이빨 사이 간격이 좀 벌어 저 있는데, 옛말에 이빨 사이가 벌어 저 있으면 복이 새어 나간다면서 약간의 푸념을 하셨다는 얘기는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의 상견례로 인해 확정된 결혼 날자는 2달 후인 5월 5일로, 진실 씨와 사랑 씨의 의견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겨를도 없이 이미 확정되어 통보되었다. 모든 것이 다 바빠졌다. 혼수 준비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건만 돈이 없어서 바빠졌고, 예식장  예약부터 양가 부모님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말씀드려야 할지도 몰라 머릿속이 바빠지고..


진실 씨와 사랑 씨는 어쩔 수 없었다. 양가 부모님들께는 죄송 하지만, 선의를 위해 조금의 속임 수를 쓸 수밖에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예물은 저희 둘이 알아서 한다면서 종로에 나가서 두 사람 공히 반지는 모양만 갖춘 가짜로 했다. 다만 그래도 꼭 필요한 시계만큼은 아주 좋은 건 아니더라도 남들 이목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 가격 있는 것으로 하기로 해서 구매를 했고, 다른 예물들은 나중에 살아가면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신부에게 신랑이 꼭 금반지는 해 줘야 잘 산다는 옛말이 자꾸만 진실 씨 머릿속을 스쳐지나 가지만 결국은 해 주질 못했다. 진실 씨는 사랑 씨한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나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면서 많이 가슴 아파했다.


결혼식 당일 날도 웨딩사진도 주례와 한판, 신랑 신부 한판,  온 가족 친지들 한판 세 판만 찍고 나머지 스튜디오 사진은 비용 절감을 위해 찍지 안기로 했다. 가구는 장롱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진실 씨가 현재 사용하는 물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나중에 집 넓은데로 이사 갈 때 사겠다고 했다. 


이럭저럭 겨우 눈 속임으로 아무도 모르게 구색을 맞춰서 마무리 정리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온 가족들이 모두 함께 찍은 결혼사진은 가족도 많고 예쁘게 잘 나왔다면서 예식장 홍보용으로 걸어 놓고 있겠다고 해서 승낙해 주었고 이 사진은 나중에 돈을 모아서 분명히 찾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진실 씨네는 부모님이 자식 중에서 첫 결혼을 시키 다 보니 많은 하객들이 오셨다. 시골에서 결혼식 전날 미리 잔치를 하고 버스 한 대만 불러서 올라오셨는데도 결혼식장으로 오신 하객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들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실제 결혼식도 내부사정은 어쩔지언정 현장은 화려하고 성대했다. 진실 씨 직장 동료 4~5명이 합창으로 당시 유행하던 신곡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우렁차게 불러 주었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인지도와 지위가 있는 사랑 씨가 다니던 봉사단체의 인지도 있는 회원분들이 오셔서 축하도 해주시고, 두 사람의 친구들도 많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진실 씨의 얼굴은 완전 죽상이었다. 결혼 준비에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얼굴에 살점이라고는 하점도 보이지 않고 빠작 말라 있고, 여기저기 여드름 자국으로 볼품이 없는 데다, 그 전날 사랑 씨 집에 함을 판다고 친구들한테 끌려 다니면서 얼마나 술을 마셨던지... 거기에다 결혼식 당일에는 늦잠을 자서 이발관에서 겨우 머리만 다듬고 택시를 타고 예식장에 왔으나, 예식시작 10분 전에야 도착해 시골에서 먼저 도착한 부모님들이 신랑을 찾느라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랑 씨의 마음 또한 편할리 만무했다.


오래전 얘기인데도 한동안은  진실 씨와 사랑 씨의 결혼식이 어느 누구 결혼식 보다 화려하고 성대했다고들 말했다. 특히나 큰 행사에 전라도에서는 필수로 하는 음식 중 홍어맛은... 진실 씨 사촌형 처갓집이 흑산도인 관계로 흑산도에서 직접 공수해 숙성시킨 홍어 요리 맛은 최고였다고 많은 하객들이 칭송을 했고, 그 이후로 그런 홍어 맛은 느껴 볼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기억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추억을 듣는 진실 씨와 사랑 씨는 돈이 없어서 아직까지도 찾지 못한 결혼식 사진을 몇 년 후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렸던 예식장에서 아는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하객으로 갔는데 그때까지도 사랑 씨와 진실 씨의 결혼식 사진이 예식장 측에서 홍보용으로 걸어 놓은 걸 보고도 그 결혼사진조차도 찾지 못한 아픈 추억이 되살아 이 얘기를 듣는 것조차도 싫었다. 


몇 년 후 어느 정도의 자금이 여유가 생겨서 결혼식 때 보관해 두었던 결혼사진을 찾으러 갔을 때는 당시 예식장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모두 버려 버려서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아픈 소식만을 듣고 되돌아와야 했다. 


몇 년 후  진실 씨는 어느 정도의 자금이 여유가 생겨서 시 결혼식을 올렸던 예식장을 찾아가 예식장 쇼룸에 홍보용으로 걸려 있었던 두 사람의 결혼사진을 찾아 금년 결혼기념일에 사랑 씨한테 깜짝 선물을 하고자 찾아오려고 방문을 했으나, 얼마 전 예식장 인테리어를 새롭게 바꾸면서 어디론가 사라저 버려서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뒤돌아 서는 진실 씨의  가슴속은 참으로 쓰라렸고, 씁쓸한 마음만 한아름 안고 헛걸음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그래서 진실 씨와 사랑 씨의

"결혼사진은 분명히 촬영했는데 영원히 없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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