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가구 중 대략 30% 정도가 반려동물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만큼 반려동물들의 위상도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너 나 할 것 없이 요즘은 아파트에서도 한 집 건너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것 같다. 이는 세상이 너무나 삭막해지고 이웃이나 가까운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스스로 해 본다.
그런데 모든 인간들이 서로간의 관계설정에서 모두 배반 배신을 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들만큼은 그 주인을 배신이나 배반을 하지 않고 언제나 기다려 주고 반겨 줌으로서 나약한 인간들에게 위안을 주면서 행복을 안겨준다.
진실 씨네도 다를 바 없이 애완견을 여러 마리 키웠었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 부부가 모두 맞벌이를 하다 보니 집이 항상 비어 있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휑하고 썰렁한 집안 분위기를 바꿔주고자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찌 다시 말하면 강아지를 키운 게 아니고 모시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아마 애완동물과 같이 생활하는 대부분의 가정이 다 그러할 것이라도 믿어 음심치 않는다. 비록 모시고 산다 해도 그들이 주었던 사랑과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불평불만 없이 함께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실씨 집에 처음 강아지가 들어 온 날은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작은 아이가 2학년 정도 되었을 때로 기억이 된다. 진실 씨 회사 근처 생맥줏집에서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 삼아 퇴근 후에 자주 드나들던 생맥줏집 주인아주머니가 그날도 한잔 할 생각으로 들렀는데 진실 씨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던 아주머니가 지인이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사정이 생겨서 키울 수 없게 되었다며 애들을 위해서 한번 키워 보라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애들이 어려서 하교 후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징징 대곤해서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은 있었는데 입양 권유에 자기도 모르게 "그래요 예쁜가요?" 하면서 급 호감 표시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 여기 있는데 한번 보셔요?" 하면서 자그만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 작은 박스안에서 눈망울은 총총하고 털은 새하얀 푸들 한 마리가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것처럼 강렬한 눈빛을 발사하고 있었다.
진실 씨는 박스 안의 강아지를 보자마자 겁도 없이 덩컥 껴안아 버렸다. 단한번도 고향에서 똥개 황구나 백구말고는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워 본 적은 없었고 사랑 씨 또한 처음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작으면서 눈이 땡 그런 푸들은 진실 씨 품 안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 조용히 안겨 있었으며 진실 씨 또한 떼어 놓을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진실 씨네 첫 강아지는 가족이 되었다.
그날 저녁 진실 씨네 집에서는 강아지 입양 환영 행사가 열렸다. 수차례나 아이들이 강아지 한마리만 키우자고 보챌 때는 안된다면서 강하게 거절하던 사랑 씨도 이 자그마한 귀여운 푸들을 보고 나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두 아이들은 좋아서 서로 대리고 자겠다면서 데려가려는 난리 아닌 난리 소동이 벌어 지기도 했다.
"그래 강아지 이름은 뭘로 할까?" 진실 씨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진실 씨나 사랑 씨는 그 나름대로의 각자 이름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가족 모두가 자기들 이름으로 정하려고 서로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삐삐, 땡글이, 사랑이 등등 많은 이름들이 거론 되었지만 아이들 이름에서 영문 한 글자씩 따왔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뱉은 "지지"라는 이름이 진실 씨 입에 바로 와 달라 붙었다. 그때는 깊게 생각도 없이 내뱉은 지지를 이름으로 하기 위해 진실 씨는 이런저런 묘안을 짜면서 아이들 이름과 연결시키기 위해 주야장천 설명을 늘어놓았다. 힘없는 아이들은 자기들이 제시한 이름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jijy"로 정함으로써 진실 씨네 1호 애완견 이름은 지지가 되었다.
그날 밤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강아지 목욕을 아이들 어렸을 때 목욕 시키면서 조심하던 그때보다도 더 조심스럽게 난생 처음으로 강아지 목욕을 다 시켜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동물 병원에 가서 예방 주사도 맞히고 나이를 물어 보았더니 5~6살 정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지지 나이를 6살로 기억하고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입양한 날자 언저리에는 매년 생일 파티도 간단하게 치러 주면서 귀엽게 잘 키웠다.
매일처럼 밤에는 아이들 둘이서 번갈아 가면서 놀아 주지만 낮에는 텅빈 집에 혼자 있으면서 이제나저제나 식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지지가 항상 맘에 걸렸다. 그렇다고 누가 대리고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안 되었고...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오후 회사 업무에 시달리다 피곤도 하고 해서 잠시 숨 좀 돌릴겸 해서 1층 다른 부서 사무실에 잠깐 들렀는데 웬 껌정인지 흰색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하얀 털이 까맣게 오물로 뒤 덥힌 강아지가 한 마리 보였다. 무슨 강아지냐고 물었더니 그냥 들어온 강아지인데 내보내도 다시 돌아와 가질 않는다고 했다.
진실 씨는 여기에서 또 갈등이 있었다. "지지 혼자 외로운데 이 친구를 데려가 깨끗이 씻겨서 같이 살아 볼 것인가? 아니면 모른척하고 그냥 넘어갈 것인가?" 그 강아지를 본후 자리로 돌아왔으나 계속해서 그 친구가 눈에 밟혔다. 지지와 함께 살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이제는 강아지 품종에 대해서도 제법 많이 알고 있었는데 1층에 무단으로 침입한 친구는 몰티즈종은 분명한데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래 지지 외로움도 달래 줄겸 한 마리 더 함께 살아 보자.두 마리가 함께 살다 보면 아이들도 각자 나눠서 더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에 하얀털이지만 껌둥이 몰티즈를 퇴근길에 안고 집으로 와서 수십번 목욕재계를 시키고 나서야 조금씩 하얀털이 보였고 발목이나 주둥이 근처의 노랗게 변해버린 털은 다음날 미용실에서 깎아주고 나서야 제대로 된 몰티즈가 되었다.
이 친구는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동물병원 말로는 지지와 비슷한 5~6살 정도 된것 같다고 했다. 예방 주사는 다시 맞추면 되지만 혹시 길거리를 떠돌았던 강아지라 다른 질병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런 이상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이름은 지지와 비슷하게 아름답게 자라라는 뜻으로 "미미"라고 지었다. 나이는 지지와 비슷하지만 지지가 먼저 입양되었으니 오빠가 되었다. 지지는 수컷이었고 미미는 암컷이었다. 각자가 性이 다른 강아지였지만 다행히 지지가 전에 살던 집에서 수술을 해 주었기에 서로간에 즐거운 성적인 사랑은 나눌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은 아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아이들처럼 둘이 잘 어울려서 싸우지도 않고 우리가 정해준 서열을 알고 있다는 듯이 몸 체구는 작지만 당찬 지지가 위 오빠로, 덩치는 크지만 자기가 동생인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미미를 동생으로 서열 정리가 되어 즐겁게 둘이서 잘 놀면서 진실 씨 가정에 행복의 빛이 되어 주었다.
몇 년을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던 어느날 마침 그 언저리가 진실 씨 아버님 기일이 다가와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몇일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지가 지민이 침대 위에서 놀다가 갑자기 아래 방바닥으로 툭 떨어지더니 일어 나질 못했다. 사랑 씨가 급하게 동물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2~3일 정도 힘없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더니 제사 다음날 아침 지민이 방에서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고 말았다.
나이는 추정치이지만 12살 정도였다. 가족들 모두가 너무나 정이들어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지를 바로 보내지 못하고 하룻밤을 거실 한편에 수건으로 잘 싸서 지지가 사용하던 집에 안치해 두었는데, 동물인 미미도 느낌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수건으로 꽁꽁 싸매 놓은 지지 주변을 떠나질 못하고 빙빙 몇 바퀴를 돌면서 냄새를 맡고 하는 행동을 보면서 몰상식한 인간들 보다 짐승인 강아지들이 더 정이 있고 의리가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당시에는 강아지 장례식장이 변변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지지는 사랑 씨네 고향 선산에 생전에 사용하던 모든 물품들과 좋아하던 과자 몇개를 넣어서 편안하게 잠들게 묻어 주었다.
지지를 그렇게 보내고 난 후에 알려젔지만 그 당시 강아지 사료가 제조상 문제가 있어서 한동안 시끄러웠었는데 지지도 그 불량 사료에 희생 당한 한마리의 강아지란 사실을 나중에야 동물병원에서 알려 주어 알게 되었다. 인간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만 더 주의해서 사료를 제조해 판매했더라면 하는 마음에 가족들은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
그처럼 둘이서 다정하던 지지가 떠나서 느낌인지는 몰라도 미미가 혼자라는 것이 더 애처로워 보였다. 그것은 진실 씨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사랑 씨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입양을 부탁하고 있었는데 마침 회사 구내식당 이모님 아는분이 강아지 새끼를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탁을 했다. 이번에는 이제 갓 젖을 뗀 아기인데 진짜 손바닥 보다도 작아 보이면서 아주 까만색 검둥이였다. 품종은 미니핀이라면서 아주 작지만 사냥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이 친구는 그냥 데려 오기가 그래서 10만 원을 건내 주고 태어난지 이제 겨우 한달 된 어린 새끼를 데려왔다. 미미가 혼자 있다 외로움을 느꼈는지 아니면 모성애를 발휘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 새끼인 양 가까이서 핧아도 주고 비록 나오지는 않지만 젖뿌리를 물려 주는 등 진짜 엄마처럼 키우는 듯했다. 그 당시 밖에서 돌아다니다 들어온 미미는 잉태를 했던 경험이 있었던지 젖 꼭지가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출산 경험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긴 했었다.
그렇게 미미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껌둥이 미니핀 아기 강아지는 진실 씨네 가정을 항상 행복하게만 해달라는 의미로 이름을 "해피"라고 정하고 이름처럼 해피하게 매일매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실 씨네 온 식구들이 고향 집에서 행사가 있어 내려갔다가 고향에 계시던 어머님과 할머님까지 모시고 서울 집으로 올라왔는데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누구를 막론하고 문을 열고 얼굴이 보일 때까지 그치지 않고 짖어 대야 정상이건만 웬일인지 그날따라 조용한 암흑 세계에 온 듯 조용했다. 그러나 그건 잠시 후의 일에 대한 기우였던가! 현관 문을 열고 들어 서려는데 현관문앞까지 온 집안에 물이 차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장마로 인한 홍수는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어디 물 한 방울 나올 데 없는 아파트인데 온 집안에 물이 찼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싱크대며 화장실 변기며 세면대며 여기저기 물이 샐만한 곳은 다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흘러내린 물줄기를 따라서 역으로 올라가 보니 냉장고 뒤에서부터 물이 흘러 내린 것을 알수 있었다. 체구가 작은 해피가 막 자라나는 이빨이 간지러워 이를 해결하고자 냉장고 뒤 좁은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정수기 호스를 씹어 구멍을 내 놓자 거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온 집안을 강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현관 밖 엘리베이터까지 물이 흘러 넘치기 직전에 가족들이 도착해서 해결함으로서 엘리베이터 고장은 없었지만 온통 집안은 물바다가 되어서 정리하고 말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집안에 기일이 다가와 친인척들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외부인 여러명이 와서 집안 도배와 페인트 공사를 하고 있기에 미미와 해피는 한쪽 방안에 의자를 놓고 거기에 임시로 묶어 놓고 출근했다가 돌아와 보니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다르게 미미가 힘없이 앉아만 있었다. "외부인들 때문에 놀라서 그렇겠지!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무심코 넘어 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처지더니 순간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진실 씨나 식구들이 어떻게 손을 쓸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일어났다.
가족들은 아무도 없이 외부인들만 있는 곳에서 그것도 하루 종일 의자에 묶여 있으면서 죽어가는 아픔을 불안속에 맞이했을 미미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미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미미도 지지처럼 하루를 집에서 함께 보내고 다음날 지지가 묻힌 사랑 씨네 선산에 나란히 잠들어 있으라고 평소에 사용하던 집이며 옷가지 장난감까지 다 챙겨서 지지와 같은 곳에 편안하게 매장해 주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사랑 씨네 선산에 오랜만에 찾아간 가족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산속 깊숙한 곳이기에 절대 없어지지 않을 곳으로 생각하고 안전하게 묻어 주었는데 그사이 근처가 재개발이 되면서 선산 문턱까지 집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 있었고 가족이었던 지지 미미가 고이 잠들어 있던 무덤 자리는 이미 다 파헤처저서 어디론가 실려 나가 없어저 버리고 그 자리에는 고급스럽게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 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가족들은 마음만 아파할 뿐 어디에 하소연도 찾을 길도 없어서 한숨으로 아쉬움을 달랬고 준비해갔던 지지 미미가 좋아했던 과자 몇 조각만 묻혀 있었던 근처에 던져 줄 뿐이었다.
그 어리고 작던 껌둥이 해피도 이제 제법 시간이 흘러 나이가 5~6살 정도 되었을까 아니면 더 먹었을까? 아른거릴 때쯤 미미가 가고 혼자 남아 있었기에 파트너를 찾아 줄려고 생각하고 있던 찰라 동물병원 근처를 지나가는데 진실 씨 눈에 들어온 회색빛의 강아지가 있었다. 보기에는 아기인데 덩치도 조금은 있는 듯 했고 콧수염이 꽤나 길게 자란 슈나우저 새끼였다. 이 친구도 해피와 비슷하게 이제 갖 젖을 떼고 입양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진실 씨 마음속에는 이미 해피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동물병원이다 보니 1년분 예방 주사값이라면서 40만 원을 결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 예방 주사 실 금액이 얼마나 된다고... 아마 강아지 몸값이려니 알면서도 눈에 밟히는 친구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데리고 나오면서 정민이한테 전화를 했다. 근처가 마침 정민이 학교였다. 쏜살같이 달려온 정민이는 이 어린강아지를 안으며 엄청 좋아했다. 그때 마침 아는 지인과 호프집에 있었는데 이 어린 슈나우저를 데리고 놀다가 꽤나 높은 테이블 위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차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정민이 한테 조심하지 그랬냐면서 순간 소리를 지르면서 여기저기 만저 보았으나 다행이도 찡찡 대지 않는걸 보니 어디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4번째 진실 씨네 가족이 된 이 친구 이름은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를 풍겨 달라는 마음에 "땅콩"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강아지 키우는 집에는 그 집집 마다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고들 하는데 진실 씨네 집에도 그런 냄새가 있는지 없는지 매일 살고 있는 가족들은 알 수 없었으나 혹시나 강아지 냄새가 나더라도 땅콩이 이름으로 땅콩 냄새처럼 고소한 느낌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해피와 땅콩이도 서열 관계가 뚜렷하게 정리가 잘 되어 단 한번도 싸우질 않고 잘 살고 있었다. 해피가 앞컷 땅콩이 수컷이었기에 땅콩이를 수술을 해주었기에 性적인 것 또한 큰 문제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해피는 성견이 되었는데도 어른 손바닥 크기에 두 귀는 하늘로 쫑긋 서있고 눈은 땡그렇게 약간 튀어 나와 있어 귀엽기 그지없었다. 슈나우저인 땅콩이는 나날이 몸이 불어 나는 것은 물론 짖는 목소리도 대형견처럼 우렁차 졌고, 특히나 가족들이 퇴근하는 발소리만 들리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전속력으로 현관으로 뛰어와서 현관문을 부딪치는 소리가 조금만 과장한다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갈수록 커져 가는 덩치에 가족들이 돌아오면 앞 발을 들고 올라타면서 좋아하던 땅콩이, 자기집에서 나오지는 않고 요염하게 앉아서 땡그런 눈망울만 반짝거리고 꼬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안아 달라고 반기던 해피와의 나날들은 매일매일이 행복 그 자체였다.
그렇게 지민이 정민이도 이제 성인이 다 되어 가고 있던 어느 날 땅콩이가 어딘가 모르게 기운이 없는것 같고 그처럼 먹성이 좋던 친구가 밥도 싫다면서 구석에 처박혀서 잘 돌아 다니지도 않아서 어딘가 이상이 있을것 같아 동물병원에 대려 가서 검사를 받아 모았더니 사람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당뇨병"이 강아지인 땅콩이에게도 똑같이 발병 해 있었다.
당뇨를 발견한 이후로 한 1년여 동안 진실 씨는 땅콩이의 몸에 직접 주사기를 이용해서 매일매일 인슐린을 공급해 주어야 했다. 말을 못 하는 동물이지만 아침마다 목덜미를 잡고 주사기로 찔러야 하는 진실 씨로서도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매일매일 주사에 의존하며 살아가던 땅콩이는 9살이 되던 해에 진실 씨를 그토록 사랑해 주고 지민이를 3살까지 키워 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입원해 있던 단골병원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저서 근처 종합병원으로 이송해서 치료를 해 보았으나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가족들도 아무도 없는 낯선 영등포의 한 동물병원에서 쓸쓸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할머님 장례식장에서 들어야 했다.
땅콩이 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슬퍼하는 진실 씨네 가족들은 할머님이 가셔서 슬픈 건지 땅콩이 가서 슬픈 건지 모를 정도로 많이 아파하고 슬퍼했다. 할머님 장례를 치르고 올라오는 길로 땅콩이가 잠들어 있던 병원에서 땅콩이를 인수한 진실 씨는 지지 미미와 매 한가지로 집에서 해피와 함께 하룻밤을 더 보내고 다음날 일산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해서 한 줌의 유골만을 데리고 와서 예쁜 정원수 아래에 묻어 주었고 돌로 표지석도 만들어 주었다.
땅콩을 보내고 해피 혼자 외롭게 생활한지도 4~5년 정도 되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해피 나이가 16살이 되던 해에 병원 한번 아파서 가지 않았던 해피도 자꾸 식욕이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아픈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5~6년 동안 예방주사 말고는 아파서 병원 간 건 손으로 꼽을 정도였던 해피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 연약한 몸에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입원하는 횟수도 자꾸만 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칭얼대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진실 씨는 노견이기에 힘들어 하는 것을 헤아려 주지 못하고 칭얼댄다고 큰소리로 조용하라고만 소리 질렀고, 그래도 그치지 않자 자기 집에 앉아서 칭얼대고 있는 해피를 저쪽으로 밀치면서 왜 그러냐고 다그치기만 했다.
그 다음날 새벽 해피는 온 가족들이 다 보고 있을때 저 멀리 무지개나라로 다리를 건너 가고 말았다. 해피를 보내고 나서야 "노견이지만 가족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아파서 칭얼댔건만 16년이나 함께 살았으면서도 그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하고 진통제라도 한 번만 더 먹였더라면 그토록 아파서 칭얼대면서 다리를 건너가진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에 해피를 보낸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진실 씨는 지금도 그때의 실수를 마음 아파한다.
그렇게 무심하게 보낸 해피도 땅콩과 같은 곳에서 장례를 치르고 남은 그 한 줌의 유골은 땅콩이가 잠들어 있는 옆에 편안하게 안장을 해 주었다.
지지 미미 해피 땅콩 이 4친구들은 왜 진실 씨네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아니면 제삿날 언저리에 맞춰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는지 모르지만 가끔은 그 이유가 궁굼하기도 하다. 지지 미미가 잠들어 있던 자리는 지금은 사라저 없어저 버렸지만, 해피 땅콩 두 친구가 잠들어 있는 장소는 진실 씨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정원이기에 매일매일 보면서 인사하고 다니고 있고 가끔은 그들 앞에 서서 "잘 있지?" 하면서 그리워하기도 한다.
지금도 가끔은 사랑 씨와 정민이는 키우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함께 할 때는 즐겁고 한없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주지만,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고, 또 그때마다 슬픔을 맞이해야 하고, 그 슬픔을 잊는데 까지는, 긴 시간동안 힘이 들어 해야 하기에 더 이상 키우지 않기로 했다.
이런 슬픔이 싫어서 인지는 몰라도 지민이도 더이상 입양을 원하지 않고, 그리고 진실 씨나 사랑 씨나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새롭게 맞이해서 끝까지 행복하게 책임질 자신이 없을뿐만 아니라, 이제 다시 입양을 해서 끝까지 함께 할 수는 없음을 알기에 대신 관련된 프로그램을 빠뜨리지 않고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지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음속까지 모든것들을 다 헤아려 볼 수는 없지만,간단하고 하챦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가까이서 진심으로 다가가 살펴봐 주세요? 그렇게 하신다면 진실 씨처럼 지난 후에 가슴 아파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