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자 구역(1)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영원히 미지의 공간,
사람과 흐름이 만드는 전혀 다른 공기.
공항에는 떠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출국자 구역' 이 있다.
출국심사장 입구에서 여권과 탑승권을 꼭 쥐고는 잃을새라 계속 쳐다보던 첫 비행이 있었다. 여러 번 소지품 주의사항을 읽었어도 벨트 위에서 사소하게 걸리는 물건들이 나온다. 잊고 있던 라이터, 왜 핸드백에 들어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작은 가위 같은 것들. 괜시리 더워지는 순간을 지나고 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이 다시 내게로 온다. 기내용 캐리어의 손잡이를 꺼내 통로를 걸어가는 두근거림과 바퀴 소리가 닮았다. 소란스럽지 않지만 충분히 들려오는 그 소리.
출입국 심사대에서 눈도장, 손도장을 찍고, 처음으로 여권에 진짜 도장도 찍히던 순간을 기억하는지. 혼자 심사관 앞에 서서 모자를 벗고, 당신이 보는 사진과 내가 틀림없이 같은 사람입니다, 두근거리며 텔레파시를 보내고. 한 명의 여행자로서 떠나도 좋다는 '인증' 을 받았던 그 순간을.
유리문이 열리고 면세구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만난 눈부심은 그 외의 공간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종류의 빛이다. 사람들의 눈빛과 걸음걸이가 그린 궤적이 긴 통로 여기저기에서 프리즘처럼 반짝인다. 출국 안내방송과 게이트 번호들, 제복을 입은 승무원들,'오직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 빛들은 아무도 머무르지 않아서 더 예쁘다.
들떠있는 공기, 정지하지 않는 곳.
이제 곧 이 땅과 멀어지기로 확정된 사람들.
게이트로 향하는 길에 쏟아지는 햇빛이 투영하는 유리 너머
아름답게 도열한 여러 나라의 비행기들을 보던 순간을.
그 완전한 설레임의 공간을 여지껏 사랑해서
나는 삶을 다시 시작하기로 생각했다.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