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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Jun 16. 2018

보딩 브릿지: 시간과 공간의 9와 4/3

출국자 구역(2)

영화'해리포터' 에는 주인공 해리가 마법 세계로 건너가는 통로인 '9 4분의 3 승강장'  등장한다. 런던 킹스 크로스 역으로 설정된  승강장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평범한 벽이다. 오직 용기를  호그와트로 가고자 뛰어드는 해리에게만 통로가 되었다가, 해리가  편으로 가면 공간의 일부로 돌아간다.


·착륙 대기중인 비행기와 게이트 웨이를 임시 연결하는 통로, '보딩 브릿지*'는 현실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이다. 사람이 정해 둔 모든 출국 절차를 마치고 딛게 되는 공항 건물의 끝, 탑승동의 가장 바깥쪽 문.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 줄 비행기의 출입구. 보딩 브릿지는 두 가지 공간의 마지막과 처음을 연결한다. '통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비행기에 타는 스태프와 승객 뿐인, 한정된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조립식 다리.    


물리적으로 건물과 여객기라면 감각적으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보딩 브릿지를 건너 비행기를 타면 우리는 이 곳이 아닌 곳, 다른 시간대로 건너간다. 그러니 호그와트의 초대장 대신 탑승권을 손에 쥐었다고 상상해 볼까. 여행객인 내가 이륙을 앞두고 종종 마법같은 경험을 기대하며 가슴이 뛴다는 걸 떠올리면서.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장을 품에 안고 브릿지를 걸어간다. 바로 그 시간만의, 유리와 프레임이 만드는 무늬가 깔린 카펫 위를 지날 때 내 옆에 천천하고도 또렷하게 멀어져 가는 지상의 한결같은 풍경. 기체는 곧 활주로를 돌아 고도로 날아오를 것이다. 구름의 모양도, 별의 위치도 그 무엇 하나 일 초 전과 같지 않은 그 곳으로.


보딩 브릿지의 끝에 닿는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승무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입구 오른쪽에는 오늘의 국내·외 신문들이 놓여 있다. 한 부를 골라 들고 자리에 앉아 살펴 본다. 여기 인쇄된 날짜는 곧 어제가 되겠지. 시간과 공간을 건너 가는 모두가 탑승할 때 보딩 브릿지도 자리를 떠난다. 내일로 가는 환상의 다리는 제 역할을 무사히 마쳤다.   

    


*주) 전체 명칭은 Passenger Boarding Bridge. AeroBridge, AirBridge 등으로도 명명한다. 착륙 때에도 브릿지를 이용하게 되지만 본문에서는 '출국자 구역' 주제에 맞춰 떠날 때의 모습만을 다룬다.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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