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자 구역(2)
영화'해리포터' 에는 주인공 해리가 마법 세계로 건너가는 통로인 '9와 4분의 3 승강장' 이 등장한다. 런던 킹스 크로스 역으로 설정된 이 승강장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평범한 벽이다. 오직 용기를 내 호그와트로 가고자 뛰어드는 해리에게만 통로가 되었다가, 해리가 저 편으로 가면 공간의 일부로 돌아간다.
이·착륙 대기중인 비행기와 게이트 웨이를 임시 연결하는 통로, '보딩 브릿지*'는 현실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이다. 사람이 정해 둔 모든 출국 절차를 마치고 딛게 되는 공항 건물의 끝, 탑승동의 가장 바깥쪽 문.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 줄 비행기의 출입구. 보딩 브릿지는 두 가지 공간의 마지막과 처음을 연결한다. '통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비행기에 타는 스태프와 승객 뿐인, 한정된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조립식 다리.
물리적으로 건물과 여객기라면 감각적으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보딩 브릿지를 건너 비행기를 타면 우리는 이 곳이 아닌 곳, 다른 시간대로 건너간다. 그러니 호그와트의 초대장 대신 탑승권을 손에 쥐었다고 상상해 볼까. 여행객인 내가 이륙을 앞두고 종종 마법같은 경험을 기대하며 가슴이 뛴다는 걸 떠올리면서.
다른 세상으로의 초대장을 품에 안고 브릿지를 걸어간다. 바로 그 시간만의, 유리와 프레임이 만드는 무늬가 깔린 카펫 위를 지날 때 내 옆에 천천하고도 또렷하게 멀어져 가는 지상의 한결같은 풍경. 기체는 곧 활주로를 돌아 고도로 날아오를 것이다. 구름의 모양도, 별의 위치도 그 무엇 하나 일 초 전과 같지 않은 그 곳으로.
보딩 브릿지의 끝에 닿는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승무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입구 오른쪽에는 오늘의 국내·외 신문들이 놓여 있다. 한 부를 골라 들고 자리에 앉아 살펴 본다. 여기 인쇄된 날짜는 곧 어제가 되겠지. 시간과 공간을 건너 가는 모두가 탑승할 때 보딩 브릿지도 자리를 떠난다. 내일로 가는 환상의 다리는 제 역할을 무사히 마쳤다.
*주) 전체 명칭은 Passenger Boarding Bridge. AeroBridge, AirBridge 등으로도 명명한다. 착륙 때에도 브릿지를 이용하게 되지만 본문에서는 '출국자 구역' 주제에 맞춰 떠날 때의 모습만을 다룬다.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