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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Aug 24. 2018

내향형 도쿄-가깝지만 괜찮고 가까워서 괜찮은

그 정도가 나는 더 없이 편해요

이번 여름 더위는 유난하다, 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를 포함해서, 거리 어디에나 계속 녹아 진득해지기만 하는 카라멜 코팅 사과사탕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혼잡한 골목이나 지하철에서 혹여 살을 스칠 때면, 이대로 기온의 절벽에서 떨어진 모두가 아득하게 뜨거운 용광로의 불길이 되는 일도 가능할 듯 싶었다.


불쾌함이 통제되지 않는 때에 나는 도쿄를 떠올렸다. 거의 모든 지역이 관광지 화 되어 길마다 사람의 군락을 이루는 거대한 도시에서 길을 걷던 기억. 시부야의 메인 스트리트들은 인도 폭이 그다지 넓지 않지만 사람과 원치 않게 부딪힌 적은 없었다. 마치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공간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 물리적 안전거리가 암묵적 룰로 존재한다.


가장 번잡한 곳에서 누군가와 절대 옷깃조차 스치지 않는 경험에 '여행자' 신분이란 무형의 이름표가 합쳐지는 경험 속에는 복합적인 감각이 새겨져 있다. 관광객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이는 -현지인으로 착각해 길을 묻거나 마크시티 앞 광장에서의 난파 따위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그런 심리적인 주춧돌이 공간으로써의 안전거리를 뒷받침해 주면 '예측 불가능한 불상사적 만남' 에서 자유로워 진다.


반대의 경험을 떠올려 본다. 입을 다물면 완전히 혼자이지만 또 내가 말을 걸면 무엇이든 답을 얻을 수 있는 도시가 도쿄다. 그들은 낯선 이의 등장에 너무나도 친절하다. 도쿄역에서 휴대폰 전원이 나가고 현지의 지인에게 연락할 수 없었을 때 퇴근길 가던 발걸음을 돌려 나를 도와 주었던 비지니스맨이며, 복잡한 신주쿠역에서 나갈 길을 몰라 헤맬 때 열과 성을 다해 경로를 그려주던 역의 직원... 내가 원할 때에 다가간 만큼의 정성을 돌려 받는 '정량적'인 사람들이 보장된 메가 시티는, 객으로 머무는 사람에게 얼마나 편리하고 안심되는가.


그런 그들의 '안전거리' 감각은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인' 같은 문장으로 많이 이야기된다. 조금 더 들여다 보면 그건 내가 피해주지 않는 만큼 남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도 생각된다. 굳이 민폐를 수치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고 오려는 것보다 개인적인 경험을 소회하려 이 말을 꺼낸 것인데, 롯본기의 어느 골목에서 요리집의 마담과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는 고프고 적당한 음식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입구의 메뉴판에 끌려 올라간 2층의 작은 가게에선, 단골로 보이는 손님 한 두명과 완벽한 기모노 차림을 한 중년의 여주인이 있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눈치로 내가 그들의 조용한 공간에 난데없이 나타난 역할임을 알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식사가 가능한지 묻는 내게 더없이 공손한 경어로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조금 놀랐던 것은 가게를 나오는 나를 여주인이 건물 밖까지 따라 나와서 거듭 죄송함을 표하며 허리를 굽혀 몇 번이고 인사하던 모습이었다. 그녀가 식사를 거절했던 이유는 준비가 여의치 않았어서 였을수도 있고, 그 요리점이 스쳐가는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니어서 였을 수도 있다. 속내야 어떻든 그저 아니라고만 해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환송을 하는 일에 대해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긴 여운이 남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그녀의 친절에서 새로이 읽게 되는 건, 안전영역에 대한 규칙적 감각이다.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이 정한 룰과 공간을 지키되 의도하지 않은 방문객에게 폐를 끼쳤다는 마음을 주지 않으려는 듯한 행동 안에, 그 스스로의 안전영역에 대한 철저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주인과 같은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여 도시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도쿄에서 지켜지는 심적, 물적인 안심함이, 도쿄를 언제고 혼자여도 괜찮은 곳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어떤 자료들에서 읽은 '내향형 인간'  대한 설명이 생각난다. 갑작스레 가까워지는 느낌을 불편하게 생각하며 상호간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지켜질 , 그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깨지는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없이 편안해하는 내향형 인간, 이라는 설명에 나는 무척 공감했었다. 도쿄는 바로 그런 '내향형 도시' 라서, 나는  곳을 여전히 사랑하는 여행자일  밖에 없다.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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