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언제나 이 말을 삼키곤 했다. 내일 밤이면 이 도시가 아니라는 실감이 일 분 일 초 다가올 때마다, 늘 더 멀리 가고 싶은 내 안의 나는 잠들지 못했다. 예약된 귀국 티켓의 탑승 스케줄을 확인하며 다음엔 더 오래 있을 거야, 다음에 올 때는 아주 오래 떠나지 않을 거야, 되뇌면서.
그렇게 돌아오고 나면 한동안은 내 모두가 돌아오지 못해 끙끙 앓았다. 비행하는 동안 멈췄던 휴대폰 속 날씨 정보가 창 밖의 인천공항 상공을 배경으로 아직도 여행지에 머물러 있는 게 서글펐다. 이상한 시간에 자고 깨면서 내 몸은 아직도 그곳에서 낮 같은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래 지나면 향수병을 동반한 몸살은 ‘그냥 더 오래 있다 올 걸 그랬어’, ‘그때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로 바뀌었다.
이 열병을 필연으로 평화롭게 받아들이게 된 건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니다. 늘 하듯이 다음 여정을 상상하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내게 아쉬움을 남겼던 모든 여정이 연습비행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사람은 대개 대담한 일을 한 번에 덜컥하기 어려운 법.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 단순한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본 비행에 익숙해지도록 연습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주 아주 멀리 날아가기 위해 조금 멀리 갔다 돌아오고, 더 멀리 떠났다 돌아오고, 더 오래 있다 돌아오는 경험을 모으는 것. 삼 일을 있다 보면 일주일도 생각해 보게 되고 한 달을 있어보면 반년쯤 머물러볼까 도전할 용기가 나는 것.
언젠가부터 비행기표를 찾아볼 때 가장 저렴한 것보다는 체류기간이 충분한지를 먼저 확인하게 됐다. 그만한 경비가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혹시 더 있고 싶어 질 때를 대비하게 됐다. 그러나 매번 귀국 날짜가 다가오면, 역시 정해진 일정대로 이젠 돌아가야지 마음이 한 풀 꺾였다.
나는 그렇게 체류를 연장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늘 용기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의 나 시점으로 생각해보면, 그 많은 비행들이 도움닫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미래의 나에게 다가갈 시간이 필요하고, 계속 떠나고 돌아옴으로써 계속 다가가고 있다, 내일 먼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로.
내가 반복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찾으니 이제는 더 잘 떠났다 돌아올 수 있다. 다음 여정은 지난 여행보다 길어질 수도 있겠지.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의 체류가 될 수도 있고, 그러다 어느 날 돌아보면 새로운 도시가 나의 돌아올 곳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걷고 걸어서, 날고 날아서 미래의 내게 도착해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또, 떠나보자. 날아가는 연습을 하고 또 해 보자.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