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크기를 조절하는 방법
동생은 공항 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언니 1층까지만 짐 같이 들어줘, 인기척에 깬 나는 잠옷바람으로 그 애의 캐리어와 쇼핑백을 양 손에 들었다. 건물 입구까지 그것들을 옮겨 놓고 계단참에 서서 동생에게 잘 다녀와 인사를 했다. 잠시 서로 손을 흔들고 난 뒤 동생의 모습이 문 프레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침공기가 서늘하다. 몸을 조금 움츠리고 하품을 하며 나도 돌아섰다. 아, 졸리고 배고프다.
꽤 오랜 여행을 떠났던 때가 떠올랐다. 팔천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이 내게 일상적인 느낌이 아니었던 그 때. 떠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설레 하면서도 익숙한 안락함을 몇 번이나 돌아보고, 그랬던 그 때. 긴 여행을 떠나려 조금씩 준비하는 시기에는 자신의 삶에 촘촘히 엮여있는 일상적인 안정감을 떠나도 괜찮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 있을까?
내가 출국하던 날 동생은 평소처럼 출근해서 자신의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오후의 노곤함에 깜빡 졸거나, 퇴근길에 테이크아웃 할 커피를 골랐을 수도 있다. 다른 가족들도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잘 도착했는지 생각했을 텐데, 나에 관한 모든 생각은 일상을 영위하며 이뤄졌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편안해졌다. 나의 떠남이 그들에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나의 출발도 어떤 하루에 일어난 일 중의 하나가 된다는 새로운 시각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동생을 배웅한 뒤 나는 평소처럼 냉장고에서 달걀 두 개와 토마토 하나를 꺼내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늘 쓰던 타원형의 흰색 접시를 꺼내 프라이를 올렸다. 작게 잘라 구운 토마토는 어제 구웠던 토마토와 같은 맛이다. 점심 즈음이면 동생은 제주도에 도착하겠지. 몇 시쯤이면 언니가 그 곳에 도착하겠지, 생각했던 것처럼. 삶의 고리 안에서 우리는 떠나고 돌아온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혹여 불확실한 두려움이 느껴질 때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각하기로 했다. 바로 지금처럼.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