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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Nov 02. 2019

새로운 출발이 두려운 사람에게

생각의 크기를 조절하는 방법

동생은 공항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언니 1층까지만  같이 들어줘, 인기척에  나는 잠옷바람으로  애의 캐리어와 쇼핑백을  손에 들었다. 건물 입구까지 그것들을 옮겨 놓고 계단참에 서서 동생에게  다녀와 인사를 했다. 잠시 서로 손을 흔들고   동생의 모습이  프레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침공기가 서늘하다. 몸을 조금 움츠리고 하품을 하며 나도 돌아섰다. , 졸리고 배고프다.



꽤 오랜 여행을 떠났던 때가 떠올랐다. 팔천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는 것이 내게 일상적인 느낌이 아니었던 그 때. 떠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설레 하면서도 익숙한 안락함을 몇 번이나 돌아보고, 그랬던 그 때. 긴 여행을 떠나려 조금씩 준비하는 시기에는 자신의 삶에 촘촘히 엮여있는 일상적인 안정감을 떠나도 괜찮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 있을까?


내가 출국하던 날 동생은 평소처럼 출근해서 자신의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오후의 노곤함에 깜빡 졸거나, 퇴근길에 테이크아웃 할 커피를 골랐을 수도 있다. 다른 가족들도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잘 도착했는지 생각했을 텐데, 나에 관한 모든 생각은 일상을 영위하며 이뤄졌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편안해졌다. 나의 떠남이 그들에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나의 출발도 어떤 하루에 일어난  중의 하나가 된다는 새로운 시각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동생을 배웅한 뒤 나는 평소처럼 냉장고에서 달걀 두 개와 토마토 하나를 꺼내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늘 쓰던 타원형의 흰색 접시를 꺼내 프라이를 올렸다. 작게 잘라 구운 토마토는 어제 구웠던 토마토와 같은 맛이다. 점심 즈음이면 동생은 제주도에 도착하겠지. 몇 시쯤이면 언니가 그 곳에 도착하겠지, 생각했던 것처럼. 삶의 고리 안에서 우리는 떠나고 돌아온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혹여 불확실한 두려움이 느껴질 때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각하기로 했다. 바로 지금처럼.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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