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랑 Dec 30. 2024

신화의 현대식 재구성, 독자의 몰입감.

현대판타지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우리의 기록 속에 남겨진 역사, 신화, 설화와 같은 이야기는 현대에 와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었다. <명량>같은 역사를 재구성한, <왕의 남자>로 실존인물에 허구를 섞은, '마블'의 <토르>처럼 신화를 현대식으로 해석한...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남겨진 원천 IP를 새롭게 가공하고 발전시킨 창작물을 읽고 있다.


 이런 재해석과 재구성은 웹소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의 창작물인 영화나 소설 등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엄연히 웹소설의 장르적 문법 속에서의 시도로 이루어진다. 신화의 현대식 재구성의 예시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이야기해보자.


[오직 나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
무려 3149편에 달하는 장편 판타지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작품을 완독한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위는 2018년 연재가 시작되어 2년의 시간으로 본편을 완결낸 후, 2024년인 지금에도 꾸준히 외전 연재 중인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의 소개글이다. 말 그대로 메가히트. 연재 중에도 열렬한 호응을 받았으며, 지금에도 웹툰과 영화 등 2차 IP산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내가 매일 읽으며 울고 웃다가 기어코 석사 논문까지 웹소설에 대해 쓰게 만든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개글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끝까지 읽지 못한 장편 소설의 유일한 완독자다. 그리고 갑자기 현실이 그 소설과 똑같은 흐름으로 나아가고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현실의 사람이 되는 순간, 주인공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으로 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웹소설을 견인하는 주역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다. 작가와 멋진 스토리는 당연하게 밑받침이 되어야겠지만, 작품이 오래 사랑받는 것에는 독자의 역할이 크다. 독자가 얼마나 이 작품에 몰입하느냐가 작품의 힘이 된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 작품을 왜 그렇게 사랑하고, 여전히 사랑할까. 이 작품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다양한 IP의 활용과 캐릭터 설정에 중점을 두고 싶다.


성좌물 속 신화의 현대식 재구성


 IP는 '지식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를 의미한다. 인간의 창조적인 활동이나 경험으로 창출되거나 발견되는,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지적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 웹소설도 그 자체만으로 IP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으레 알고 있는 신화, 성서, 설화 등의 다양한 원형 이야기도 IP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독시는 '성좌물'이라는 장르를 크게 유행시키며 단어를 정착시킨 개척자의 위치에 있다. 비슷한 설정의 작품은 예전부터 있었으나, 후발주자인 전독시가 크게 대박을 터트리면서 단어가 정착된 것이다. '성좌물'은, 성좌(星座)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는 초월적인 존재가 지상의 인간을 선택하고 후원한다는 클리셰적 설정을 차용한 장르다. 읽는 독자가 쉽게 몰입하기 쉽도록 인터넷 방송의 형식을 따오는 것이 많으며,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방송인들이 후원을 받듯 성좌들은 자신이 선택한 피후원자인 인간에게 다양한 후원을 건넨다.



 전독시에서는 이런 성좌로 다양한 신화와 설화, 성서 등의 인물들을 차용했다. 그 원형에서의 캐릭터의 묘사와 행적을 살려 외형을 다듬고, 성격을 만들어 이를 전독시 속 등장인물로 승화시킨다. 이들은 자신의 특징적 요소를 통해 '진명'을 숨기고 성좌로서의 이름을 갖는다.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나 '긴고아의 죄수' 등이 그렇다. 주인공인 '김독자'는 이런 이름에서 그 특징을 통해 성좌의 정체를 유추하고는 한다.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는, 불꽃의 검을 들고 인간의 죄를 심판하며 악마를 물리치는 '우리엘'이라는 천사다. '긴고아의 죄수'는 긴고아를 머리에 써야 했던 손오공이다. 주인공과 그 일행이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 속에는 이런 다양한 성좌들과의 갈등을 그 성좌에 대한 지식으로 헤쳐나가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이 웹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작품 속 사건이 진행될 수록 기존의 배경 지식을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얻는다. 일종의 "아는만큼 즐겁다"인 것이다. 작품 속 성좌를 유추하거나, 성좌와 함께 일어날 사건을 추리하기 위해 독자들은 배경지식을 찾아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점점 작품 속에 몰입하게 된다.


몰입도를 올리는 캐릭터


 어떤 작품을 볼 때,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등장인물 중 주연은 3인으로 완성될 수 있다. 주인공과 적대자, 이 둘 뿐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 조력자가 들어간다. 주인공, 조력자, 적대자. 이 셋은 어떤 이야기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주인공의 일행이 3명으로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친숙한 예시를 들자면 '해리 포터'가 그렇다. 주인공인 해리와 그의 친구인 론과 헤르미온느가 그렇다. 전독시에도 이런 3인 구성의 조합이 있다.


 김독자, 유중혁, 한수영. '전독시'라는 작품의 주인공은 김독자지만, 이 셋은 서로의 주인공이자, 적대자이자, 조력자가 된다.



 주인공 '김독자'와 김독자가 읽었던 작품의 주인공인 '유중혁', 그리고 김독자와 마찬가지로 이 웹소설의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한수영'. 이 세 사람은 작품의 주요 3인으로서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작품 외부의 독자들이 읽고 있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인 김독자, 그리고 김독자가 사랑한 작품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주인공인 유중혁, 그리고 이 통칭 '멸살법'을 베낀 표절 웹소설의 작가 한수영. 이들은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이 다르다. 어떤 것은 작품 외적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것이고, 어떤 것은 작품 외적 독자들은 등장인물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들의 다양한 충돌과 협력은 독자의 몰입감을 높인다.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상은 작품의 몰입도를 올리는 큰 요소가 된다. 주인공 '김독자'는 작품 외부의 독자들에게 공감과 몰입감을 심어준다. '웹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최애 캐릭터를 비롯해 캐릭터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그의 모습은 웹소설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

 주인공 김독자는 아무도 읽지 않았던 웹소설 하나를 끝까지 읽으며 그 모든 설정을 외우고 있었고, 그 덕에 갑작스럽게 그 웹소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자 자신이 좋아했던 작품 속 주인공인 '유중혁'과 함께 작품 지식을 배경으로 사건을 헤쳐나간다.


 초반부터 쌓아올려가던 독자의 몰입감은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과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다. 매일 한 화씩 연재되는 웹소설의 특징을 살린 특별편이 그 예시 중 하나가 된다. 작품 속 김독자가 생일을 맞이하는 순간, 현실은 같은 날짜를 공유한다.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는 주인공과, 실제 그 내용을 눈이 오는 날씨 속에서 보는 독자들. 일종의 메타픽션으로서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전독시의 다양한 메타적 특성이 있겠으나, 스포일러로 인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한다.

 작품 외부의 독자들도 작품에 참여하는 것같은 몰입도와 함께 작품에 빠져들다 보면, 작품에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전지적 독자 시점>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주인공의 성장과 갈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고, 성좌들과의 상호작용은 독자들에게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한 작품의 서사 구조는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처음에는 작품의 관찰자적 위치에 존재했던 주인공이 점차 이야기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제공했다.



작품 내적 몰입도를 방해하는 외부적 요소들


 그러나 빛이 강하면 어둠도 강하다고, 작품은 몇 가지의 비판점을 받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이 처음 시작했던 시기에 비해 시간이 흐르며 독자의 성숙도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독자가 몰입했던 작품의 내부 내용과, 작품 외부의 출판·편집 등이 가져오는 괴리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그 예시 중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악은 언제나 비슷하고 진부하다.


 작품은 뒤로 갈수록 성좌와 설화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표현하지만, 작품 초반에는 현갑자기 재난 상황으로 무너진 현대 사회가 배경이 된다. 일종의 '아포칼립스'다. 아포칼립스, 멸망하는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양하다. 그러나 전독시에서 표현한 아포칼립스는, 인간의 악의적인 부분을 조명한다. 힘이 없어 맞아죽는 노인, 위기 상황에 스스로의 몸을 지키지 못하는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 살아남기 위해서 몸을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팔아넘기는 여성 등이 그 예시다. 이런 아포칼립스적 묘사는 오래된 클리셰지만, 이제는 시대에서 뒤쳐지는 클리셰가 될 수 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초반부에서는 독자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다양한 지명이 나온다. 그만큼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작품과의 거리감이 다소 좁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한다. 악은 대개 비슷하고 진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의지를 지키고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주인공의 성격은 이런 배경과 상반되며 더욱 도드라지지만 작품의 초반에 주인공의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다소 진부하다.


국뽕 대신 일뽕?


 또 내용 수정으로 비판을 받았던 부분도 있다. 작품의 초중반부에는 일본 국적의 등장인물들과 주인공이 갈등을 펼치는 장면이 있다. 일본에서 온 인물들의 '식민 지배'에 맞서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대립하는 '피스랜드' 에피소드다. 기존 연재 당시에는 일본인 등장인물인 '야마모토 하지메'의 배후성이 '이토 히로부미'였고, 그와 대치되는 등장인물인 '이복순 할머니'의 배후성이 '안중근', 주인공이 도움을 얻기 위해 불러내는 위인은 '유관순'이다.

즉, 유관순과 안중근이라는 독립운동가와 이토 히로부미라는 대립 구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독시가 시리즈의 독점작이 되면서 완전히 변경되고 만다.

 야마모토 하지메의 배후성은 일본의 지네요괴인 '만년백각오공'이, 이복순 할머니의 배후성은 무당왕이, 주인공이 불러내는 위인은 일본의 '음양사'인 '아베노 세이메이'로 바뀐 것이다.

네이버 웹툰 중 해당 변경 장면. 역사적 인물을 들어내고 '음양사'라는 일본의 대표적 캐릭터성를 넣은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작품의 일본 진출을 위해, 또 소위 너무 심한 '국뽕'이라 불호가 많았어서 수정했다는 등의 변명이 무색하게 이 수정사항에 대한 독자들의 문제 제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실제 작품에 대해 강한 몰입감을 갖고 있던 독자들은 더욱이 몰입감을 얻을 수밖에 없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에피소드가 사라짐에 따른 반발이 커진 것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끝맺어지지 않은 역사적 갈등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적대자인 일본인 캐릭터를 약자를 '식민지배'하려고 한다는 설정으로 만들어놓고, 이런 역사적 인물이 나오는 요소만 없애버렸으니, 작품의 정체성과 메시지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장르적 실험과 서사적 완성도로 웹소설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신화와 설화 등, 구전과 기록으로 남아있는 옛 이야기를 웹소설이라는 현대의 장르 속에 재구성해서 녹여내는 방식과 그로 인한 성좌물이라는 장르, 캐릭터의 조형으로 작품이 주는 몰입성 등은 분명히 작품의 강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초반의 클리셰와 역사적 갈등 묘사의 수정은 작품의 완성도를 다소 떨어뜨리는 요소로 지적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지적 독자 시점>이 보여준 콘텐츠적 의의는 여전히 크다. 2025년에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원작 IP로 하는 영화도 나온다고 하는데, 영화라는 미디어에서는 어떻게 이 작품을 그려냈을 지도 궁금해지는 일이다. 이 작품은 웹소설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문화적, 서사적 가치를 가진 매체로 성장할 가능성을 제시하며,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 <다시 읽는 웹소설>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이나 메일 주세요. 여러분의 소중한 작품 추천을 기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