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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24. 2023

남파랑 길 23일차

다랭이 마을에서 잠시 어두운 저녁에 마실 구경을 나갔다. 여기도 저녁이 되니까 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간간이 마을의 좁은 골목길로 승용차는 지나간다. 조용한 바닷가 시골 마을이다. 앞에 있는 바다에는 불 밝힌 배들이 떠 있었다.

조용한 마을에서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마을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다랭이논들을 보니, 경사가 심한 곳에 돌로 높이 쌓은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어디에서 물을 끌어오는지 궁금하고, 아니면 천봉답일지도 모른다. 저런 논에서 먹고살려고 농사를 한 애쓴 흔적이 보이는 것 같다. 만일 이것들이 논이 아니고, 밭이었으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랭이 논에서 눈을 돌려 바다를 보니까 푸른 바다와 그 위의 구름이 햇볕을 받아서 약간 붉은빛을 띠면서 수평선을 만들고 있다.

그 구름을 보니까 저 구름 너머는 무엇이 있는지 하는 생각에 이른 아침 비행기 타고 멀리 갈 때의 느꼈던 기분이 든다.

오늘은 푸른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날이다.


다랭이 마을에서 시작되는 길은 ”다랭이지겟길“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는 길이다.

이 길은 바다 위로 난 길을 걸어가는데, 마을이나 집들을 내려다보면서 걷다가 다시 해안으로 내려가 바다와 같이 걷기도 한다.

다랭이 마을에서 출발해서 간간이 나오는 집들은 모두가 잘 지어진 펜션들이고, 마을로는 향촌마을이 처음 나온다. 향촌마을은 작은 항구도 있고 해수욕하는 백사장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다음은 선구 마을이다. 선구 마을은 마을이 완만한 경사로 된 지형으로 위에서부터 해안까지 집들이 층계로 되어 있다. 이른 아침에 햇살을 받은 선구 마을은 지붕 색깔이 다양한 것이 아름답다.

사촌해수욕장이라고 둥근 입구문을 만들어 놓은 곳이 사촌마을이다.

해수욕장 바로 위에 있는 소나무 숲에는 캠핑장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일박을 하면 2만 원에서 3만 원을 받는다고 쓰여 있다. 해안가에 경치 좋은 곳은 거의 주변 마을에서 숙박료를 받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받는지는 알 수 없다.


사촌마을에서 평산 마을에 이르는 해안선이 아름답다.

그 중간에 섬은 아니지만, 그것을 앞에 두고 무지개 색깔 같은 지붕을 한 집들이 푸른 바다와 잘 어울려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다.


유구 마을 선착장을 지나서 평산항으로 넘어가는 언덕 아래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학교가 폐교가 되어있다. 운동장에는 벌써 잡초가 무성하고, 문을 굳게 닫혀 있다. 이곳에도 학교에 갈 아이들이 없으니까 문을 닫은 것이다. 교실 건물 바로 밑 화단에 반공 소년 동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초등학교였던 것 같다.

그다음에는 평산항이 나오는데, 제법 큰 항구이다. 이 부근에서 본 항구 중에는 가장 큰 항구이고 여기서 ”다랭이지겟길“이 끝나고, 남파랑 길 43코스도 종점이다.


다시 시작하는 44코스는 처음부터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에서 내려다보이는 것이 잘 정비된 골프장이다. 바닷가에 경관 좋은 조용한 평지에 자리한 골프장이다.

골프장을 내려다보니까 전 홀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겨우내 못 치다가 이제 골프를 시작하는 것 같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골프 치는 멋에 사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골프장을 보면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고, 주변에는 골프장에 잡일이나 정비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런 광경만 보면 골프 치는 사람이 겉보기에는 여유 있고 잘 사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골프장에 잡일을 해도 나름 행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지 비교할 필요는 없다. 내가 걷는 것은 골프 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바다 경관이 멋진 곳이 많이 보인다. 섬들이 있고 먼 항구의 큰 도시도 잘 보인다.


그렇게 속이 시원한 곳을 걷다가 임진성으로 올라갔다. 임진성은 임진왜란 때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군, 관, 민이 같은 쌓은 성으로, ”민보성“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많이 보수하였다고 하면서 그래도 바깥 외성은 겨우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임진성을 내려오다가 배당 소류지까지 내려오기 전에 석재로 둥근 아치 모양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서 내려가 보았다. 어떤 가문의 묘지를 석굴암처럼 만들어 놓았다. 또 그 밑에는 현충원처럼 질서 정연하게 묘지석을 세워서 작은 현충원처럼 보인다. 이렇게 묘지가 분봉이 없어지면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고,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변할지 모르겠다.


남구 마을 지나서 북구 마을에서 천왕산 산길을 올라간다. 길고 긴 길을 내려오면 만나는 곳이 장전항이다

장전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또 멀리 푸른 바다와 건너편의 큰 도시가 보인다.

장전항의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남해군의 남해스포츠파크에 들어선다. 체육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도로도 너무 넓고 길어서 한참을 걸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대단위 스포츠파크이다.


이 스포츠파크를 지나면 서면 소재지이다. 이곳에서는 오늘 어린이 축구 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숙박 시설이 만 원이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지낼 곳을 찾았다.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리를 잡았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다른 사람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예전에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에서 알베르게를 이용했던 것이 몸에 익어서 먼저 사워를 하고 다음에 식사나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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