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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Mar 07. 2022

관계의 서문

서문  

살아있음을 언제 느끼는가.

나는 내가 살아온 방식과 일련의 경험들로 다져진 나의 생각들이 뒤틀리기 시작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들을 방향도 정하지 않고 끊임없는 고찰과 성찰을 반복하며 점차 가닥을 잡아가는 그 과정이 내게는 너무나 큰 희열을 가져다준다.  내 삶에 활력을 공급해주는 이 변화는 처음부터 반가운 존재는 아니지만 결국 나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더 모양새 있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하면 반갑지 않을수록 더 기대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이 사람 관계에서 올 때 가장 지독하고 흥미로운 성장통이 시작된다.  


수많은 기억들이 존재하는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나는 관계 속에서 쉽지 않은 순간들을 연이어 마주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무리’라는 표현 안에는 그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화합을 이뤄내기 위해 악착같이 견딘 나의  마음을 담았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고,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부족함을 알아 책임을 지고 싶었고, 나의 억울함과 상처를 토해내고 싶었지만 사과하는 사람이 변명을 하지 않을 때 그 진정성이 전달된다고 믿어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돌아봐도 아마 구차한 변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러한 진흙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진주를 발견했다. 바로 ‘인연’이다.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허우적 대는 중에도 내 옆에서 내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여러모로 도와준 사람들을 나는 처음 인연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주어진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 경험상 내가 한 발짝 물러서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연이라 생각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뭇 다르게 사고했다. 많이 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가지는 생각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상대방을 아끼기 때문에 한 발짝 물러선다. 상대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배려하고, 상대방을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서 더 알아가고자 한다. 누가 내게 인연인지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나랑 잘 맞는 사람만이 인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특별한 접점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인연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각각 나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어 어떤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설명하기 어렵고, 영원할 수는 없지만 영원하고 싶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는 등 인연을 표현해보라면 다양한 단어들로 형용할 수 있지만 쉽게 말해 지금 내가 선물처럼 여기는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인연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나를 그저 엄청 친한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다. 인연이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단어를 상대방도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살짝은 있어도 단어의 선택이 관계의 색깔에 덧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 나를 위해 살아가지 않고 남, 그리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살아가는 내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 같은 존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의식 과잉이라 할 수 있고 행여 나도 언젠가 지금을 돌아보며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나는 인연을 믿는다. 그리고 인연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내게 다가오고, 나도 저마다 다른 마음이 들지만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간다면, 놓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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