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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가 Sep 17. 2022

오늘의 바지락 칼국수

국수를 마주하며

 국수를 아주 시원하고 깔끔하게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속에 있는 비릿한 것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은 그런 날. 그럴 때 어울리는 국수는? 바지락 칼국수! 국수 요리에서 감칠맛을 내는 용도로 빠질 수 없는 것이 멸치, 무, 다시마라면 바지락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추가해주는 느낌. 조개류인 바지락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맛있게 먹으려면? 바지락이 많이 나는 곳으로 가면 되지~ 그래서 오늘은 작년 봄, 나의 오이도 여행기를 잠깐 소개하려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면, 바지락 칼국수를 먹기 위해 오이도를 찾은 건 아니었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서해. 대학 때 딱 두 번, 오이도로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같이 갔던 사람들, 그리고 바다 내음, 등대, 조개 구이 등 좋았던 기억들이 오래오래 남아있다. 그래서 약간은 충동적으로 지하철을 타고 4호선 종점인 오이도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어찌어찌 찾아갔더니 시간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이도의 상징인 빨간 등대 주변을 어정쩡하게 구경하다가, 간조 때의 갯벌을 보기 위해 바다 가까이로 다가갔다. 갯벌 안에 들어갈 수 있게 장화 대여점은 물론, 발을 씻을 수 있는 곳도 잘 마련되어 있다. 나는 차마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아서, 조개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가족들과 커플들을 소심하게 구경하며 앉아있었다. 중학교 때인가 배운 서해안의 '조석간만의 차'를 확실히 느끼며, 둑길을 천천히 두세 번 정도 걷다 보니 오후 6시 반 정도 됐을까.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시간 맞춰 정확히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만조였다. 그래, 내친김에 밤바다까지 보고 가자.


 서해안의 노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늘이 오색으로 그렇게 물드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래서 노을 맛집이라고 하는구나. 그날 하루 나에게 허락된 노을이라 그런지, 특별히 더 눈물 나게 멋있었다. 살다가 정말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마음속에 별처럼 꾹꾹 묻어 두었다. 그때 노을을 보면서 들었던 비긴 어게인-마리나 버스킹 ver. '크러쉬'의 <그대 내 품에>는... 진짜 말해 뭐해. 유재하의 원곡 그 이상이었다. 몇 번을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르겠다. 해가 다 져서 바다에 내려앉아, 그 속으로 저물기를 기다리면서.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밤바다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 배가 고파졌다. 그때 둑길 근처에 있는 늘어서 있는 조개구이집 중에, 그냥 마음이 가는 집 한 군데에 들어갔다. 조개구이가 아닌 바지락 칼국수 먹으러! 몰랐던 사실인데, 바지락은 봄이 제철이라서 봄에 먹는 바지락은 살도 통통하고 맛까지 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날 먹었던 바지락 칼국수는 최고였다. 삼삼오오 모여 들어와 조개구이 해 먹는 단체 손님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한 그릇을 다 먹을 정도로.


유독 나를 반겨주는 조개구이집 이모의 미소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바지락 칼국수는 비주얼부터 예술이었다. 연두색 애호박과 주황색 당근이 주는 눈의 즐거움과, 파와 양파와 간이 잘 된 재료들이 어우러져 '나 빨리 먹고 싶지?'하고 말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비약이 너무 심한가).


무튼 이날의 압권은 싱싱하게  공수되어 칼국수 맛을 완성시킨 서해안의 바지락. 거기에 청양고추의 맵고 알싸한 맛과 바지락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면발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다. 특이한 점은, 바지락 칼국수와 함께 주신 보리밥이었는데, 남은 국물에 보리밥을 말아서 먹었더니 그것 역시 별미였다.



다 먹고 나오니 오후 7시 반. 해는 드디어 바다로 떨어질 듯 말 듯 하다가 얼굴을 감추고. 나는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 한 편을 지었다. 무슨 시였는지는 비밀! 서울로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노을과 눈물 나게 맛있던 바지락 칼국수가 그날 내가 받은 선물이었고, 값진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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