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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난감한 쿠폰 3개

feat. 서른하나의 달달함이 있는 곳 20240329

by 축복이야


기프티콘이 쌓였다.

나도 너도 편하고 좋은 기프티콘.

멀리 있는 너에게도, 만나기 힘든 너에게도, 대면으로 이야기 나누기 어색한 너에게도,

큰 금액이 부담스러운 너에게도, 취향이 확고한 너에게도, 부담 없이 보낼 수 있는 마음.

마음을 보내기엔 어색하고 마음을 배제하기에는 난감할 때 좋은 기프티콘.



받아서 제일 부담이 없는 건 커피쿠폰이다.

커피 맛을 알아서는 아니고 그냥 카페인이 들어가야

정신을 차리고 움직일 수 있는 애 키우는 엄마여서도 그렇고 당충전이 중간중간 필요한 나이어서도 그렇다.

선호하는 가게는 있지만 다행히 동네에 웬만한 브랜드가 다 있어서 어떤 종류를 받아도 상관없어서 더 편하다.

하지만 내가 즐겨 먹지 않는 종류의 먹을거리는 난감한데 특히 제일 곤란한 것은 아이스크림케이크다.

모양도 예쁘고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막상 다 먹을 수도, 먹어서도, 먹어 본 적도 없다.

늘 촛불을 불고 축하를 하고 행복한 한 스푼을 하고 나면 주르륵 녹아버리는 달고 난감한 것.



내 쿠폰함에 그 달고 난감한 쿠폰이 3개나 있다.

그중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쿠폰을 먼저 써야겠다.

작년 봄쯤

서울소재 대학을 다니게 된 나의 조카가 보낸 것이다.

고모가 되어서 신경을 못 써줬나 마음이 쓰이던 차에 서로 가까운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조카가 잘 먹고나 있나도 싶고

고기라도 양껏 먹일 생각에 어린 두 애들을 데리고 나섰다. 덕분에 우리 애들도 좋아하는 사촌오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짧은 만남 후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애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집으로 갔다.

서른한 가지의 환상적인 맛이 있는 그곳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 무뚝뚝한 조카가 말했다.

"고모 애들 생일은 언제예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이렇게 챙겨주시니 감사해서 저도 애들 생일 정도는 챙겨주려고요."

늘 명절에 만나면 말수가 별로 없이 웃기만 하던 조카의 생각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3살쯤이던 조카가 멜빵바지를 입고 사과를 굴리고 있던 치명적인 모습을 보고 홀딱 반했었다. 그 애가 이렇게 대학생이 되어 이런 생각도 하는 올바른 청년이 되었다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속으로 뿐 아니라

연신 어머머를 연발하며 찐 감탄사를 계속 내뿜었다.

아마도 엄마 같은 마음에 비타민에 영양제에 이것저것 챙겨가고 용돈을 쥐어준 것이 고마웠나 보다.

쑥스럼 많던 아이가 이렇게 똑똑히 마음을 표현하다니 내심 놀랍고 고맙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번에 또 봐~하는 인사 같은 말을 건네며 헤어지고 얼마 안 있어 카톡이 왔다.

조카가 보낸 아이스크림 쿠폰이다.

이구~자기 쓸 돈도 모자랄 텐데 이런 걸 왜 보내냐며 문자로도 잔소리를 한다.

애들이 좋아하니 또 사주라는 말에 그 마음을 거절할 수는 없고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 쿠폰이다.

받으면 제일 난감한 쿠폰에

사랑하는 조카가 기특한 생각을 담아 주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면 거진 다 버릴 것이 분명하고 녹여서 버리긴 너무 아까운 조카의 마음이 들어있으므로 두고도 조금씩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바꾸어 산다.

아빠는 녹차맛, 첫째는 민트초코, 둘째는 엄마는 외계인, 나는 피스타치오 아몬드.

고민 없이 바로 고를 수 있는 거의 몇 안되는 것중에 하나. 확고한 우리 가족 아이스크림 취향.

받으면 별로 달갑지 않은 선물이던 아이스크림케이크가 우리 가족의 저녁을 행복하게 해 준다.

달달한 마음을 꺼내 속을 달달하게 채웠으니 오늘은 달달한 꿈을 꾸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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