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진료를 마치고 오늘 검사한 결과기록(의무기록지)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10년간 꾸준히 모아 온 기록은 관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모든 수치를 이해할 수 없지만 딸에게 중요한 수치는 참고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집에 돌아온 딸과 나는 가벼움과 무거운 마음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약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딸 마음은 편했을까. 처음 약을 끊고 교수님께 말씀드리려 했다. 하지만 예민한 문제여서 쉽게 말씀드리지 못했다.
2019년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딸은 처방된 약을 먹지 않기로 유명했던 환자였다. 아니 먹고 싶어도 목구멍에서 막아버리고 넘길 생각이 없어 애를 먹었다. 약을 삼키다가 구토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다.
무의식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까지 지배하며 약을 밀어냈던 이유는 어떻게든 부작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이토록 약을 밀어내야만 했던 딸을 교수님이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진료 후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딸은 교수님께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이제야 말씀드린 점 죄송하다고. 부작용으로 생긴 합병증이 더 많고 힘들었다고, 명색이 ‘약’인데 왜 나는 더 병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타인이 부작용을 대신 책임져 주지 않고, 오직 자신이 감당해야 되고, 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 몸은 너무 다른 반응을 보였고. 부작용에서 벗어난다는 건 정말 행복이었다고.
사람인지라 한 번씩 삐끗할 때도 있겠지만, 걱정하시지 않게 병 이겨 낼 수 있도록 열심히 관리하겠으니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달라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저는 건강하게 죽어가고 싶어요.
약 부작용 때문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프고 우울하게 죽어가고 싶지는 않아요.’
딸이 적은 이 글은 나를 오열하게 만들었다. 건강하게 죽어가고 싶다는 그 말을 왜 해야만 했는지 옆에서 지켜본 나라서.
답장은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딸을 이해해주시길 바라본다. 8년 전 지방에 거주하는 우리는 서울까지 통원치료하는 것이 몹시 고단해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선택했다. 그때 만난 분이 현재 교수님이다. 처음 진료받던 때가 떠오른다. 진료를 받고 나오려는데 쪽지에 교수님 휴대폰 번호를 적어 내게 건네주셨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순간 눈물이 고였다. 무섭고 두려웠던 시간을 살아내고 있었기에 그때 느꼈던 고마운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몇 번의 힘든 상황이 찾아와 연락을 드렸는데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환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염치없다.
언젠가 교수님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딸을 조금만 믿고 응원해 주시길. 딸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짐이 얼마인지 감히 가늠할 수 없으니 살고 싶은 그 마음 헤아려주시길 부탁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처방된 약은 무조건 모두 먹어야 한다는 슬픈 관습에서 벗어나 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직접 경험하고 실천하면서 증명하고 있다.
딸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딸을 존중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