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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4화. 아이는 책을 고르며 세상을 배웁니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도서관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먼저 신발을 벗고 뛰고 싶어진다.
책보다는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책장보다는 친구가 더 먼저 반갑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책장 옆에 앉는다.

아이에게 "책 골라 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책장을 탐험하게’ 만든다.

어느 날 루아가 물었다.
“아빠, 왜 책이 다 다른 데 있어?”
그 말은 참 예리한 질문이었다.

책장은 세계관의 구역이다.
그림책은 상상과 감정의 세상,
자연 과학 코너는 호기심과 실험의 세계,
전래 동화는 지혜와 문화의 시작점.

도서관 책장의 배열은
그 자체로 세상의 지도를 닮아 있다.

나는 아이들과 도서관에 갈 때
항상 ‘책 고르는 시간’을 따로 둔다.
그 시간엔 조건이 없다.

표지 보고 골라도 되고,

제목이 웃기면 골라도 되고,

그냥 친구가 읽고 있던 책이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책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탐색’이고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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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리 아이가 책을 고르는 방식은 이렇다

표지 스캔 – 눈에 띄는 그림, 좋아하는 색감 찾기

한 장 넘겨 보기 – 재미없으면 과감히 내려놓기

같은 작가 찾기 – 한 권 재미있으면 그 작가 전작 탐색

형제가 고른 책 따라가기 – 서로 흥미 공유하기

아빠한테 "이 책 어때?" 묻기 – 추천과 확인 요청


책을 고르는 이 모든 과정은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라운이는 과학 코너로 잘 간다.
루아는 동물이나 요리, 마법이 나오는 그림책 코너를 좋아한다.

하루는 라운이가 공룡 책만 고르길래,
“오늘은 공룡 말고 다른 것도 한번 골라볼까?”라고 했더니,
“왜? 오늘은 공룡만 보고 싶은 날이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대답이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아는 아이,
그 마음을 존중받은 경험이
책을 더 좋아하게 만든다.

책은 읽는 것만으로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이미 배움은 시작된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아이는 자신의 ‘관심’을 발견하고,
자신의 ‘취향’을 만나고,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기 시작한다.

도서관은 거대한 세계다.
그 안에서
아이는 책장을 옮겨 다니며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오늘은 공룡,
다음 주는 우주,
어느 날엔 아프리카 동화,
또 어떤 날엔 마법사 이야기.

그 세상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의 세계를 넓히고,
생각의 입체감을 만든다.

“아빠, 이 책은 왜 여기에 있어?”
“왜 이건 다른 줄에 있지?”

그런 질문이 나올 때,
나는 책장 위에 있는 분류 스티커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이건 동물책, 이건 자연, 이건 이야기책이야.”
그러면 아이는
지식과 상상이 구분된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어느 날, 루아가
요리책 코너에서 빵 만드는 법을 보고
집에 와서 작은 메모장을 꺼냈다.
“이건 내가 쓸 요리책이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책을 고르는 행위는
새로운 나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독서 공간이 아니라,
‘질문과 발견의 놀이터’다.
아이에게 책장을 고르게 하는 일은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일이다.

지금도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고르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고르는 시간이
가족 모두에게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간이다.


✒️ 작가의 말

책을 고르는 아이는
세상을 고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읽느냐보다
무엇을 스스로 선택하느냐가
아이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됩니다.

도서관에 가거든,
책을 읽기 전에
조금 더 오래 서가 앞에 서보세요.
그 시간 속에서
아이와 함께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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