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깊어질 때면, 사람은 타인을 헤아릴 여유를 잃는다. 학창시절의 나와 엄마의 관계가 그랬다. 불안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내 관점과 두려움 속에 가둔 채 판단하곤 했다. 가족과 학교가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그 어디에서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온전히 서 있을 수도, 나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고, 어렵게 말을 건넸다 해도 돌아오는 답은 ‘의무’의 말뿐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 조금씩 조여드는 느낌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엄마는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닿았다. 어린 마음에는 그 생각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일기장 한쪽에는 엄마를 ‘마녀’, ‘마귀할멈’이라고 적어 내려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나는 꽤 키우기 까다로운 아이였다. 감정이 섬세했고, 질문이 많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찾으려는 성향이었다. 이런 나를 지키기 위해, 혹은 더 잘 이끌기 위해, 엄마는 규칙과 환경을 더 견고하게 세웠다. 그 안에서 나는 더 크게 흔들렸다.엄마는 늘 당당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를 냈고, 그 결과는 대개 최고였다. 주변에서 말하는 ‘완벽주의’란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본인의 노력만큼 아이들도 잘 자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큰아이는 갑작스레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작은아이는 점점 기가 죽어갔다. 불안은 엄마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마음만큼 더 자신의 관점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나를 보지 못했고, 나는 엄마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엄마와 나, 둘 다 저마다의 불안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모습은 서로를 더 힘들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