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했던 한 해를 보내며
괜시리 분주하고 마음이 달뜨곤 하는 12월.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과의 반가운 만남, 복작거리는 시끌벅적한 시간에 휩쓸리다보면
금세 새해가 와버리곤 한다.
나의 한 해를 돌아볼 시간은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주위의 분위기에 흔들리기보다는 계절의 흐름이 어느정도 익숙해져 제법 중심을 잡고 서있을 수 있게 된 지금은, 시끌시끌한 여느때의 연말보다는 조금은 차분하게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쉽게 끓어오르지 않되, 끓고나면 오랫동안 그 온도를 유지하는 것.
아마도 이것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얻게 되는 자그마한 선물같은 일일테다.
이 맘 때면 늘 꺼내 입는 두툼한 옷들과 따스한 모자.
내겐 겨울의 전령 같은 친구들을 한 겹 한 겹 겹쳐 입고 나면, 그제야 정말 겨울이 왔구나 실감한다.
- 책 <숲의 하루> 중에서
올해는 조용한 연말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훌쩍 떠나온 캠핑.
때마침 내려준 소복한 눈은 미처 내려놓지 못하고 온 도시의 달뜬 마음을 살풋 내려놓게 했다.
뽀드득 뽀드득,
아무도 밟지않은 새하얀 눈밭에 사뿐사뿐 나의 발자욱도 남겨보았다.
흰 눈 앞에선 누구나 아이로 돌아가게 되는 법.
다섯살때나, 지금이나, 눈 앞에선 개구진 아이처럼 장난기가 샘솟곤 한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겨울의 풍경, 그리고 늘 새삼스레 기뻐하는 우리.
여전히 소소한 것들에 설레고 있음에 감사하며-
올해 마지막 캠핑을 위해 소박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야곰야곰 준비해왔다.
불멍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가 한아름 챙겨온 장작,
텐트 안 따뜻한 시간을 선사해주는 우리의 자그마한 난로.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겐 겨울날 누리는 최고의 사치이기에.
그저 모닥불 곁에 앉아있는 것뿐이지만, 늘 조용한 위로를 받는 시간.
가만가만 지난 일년을 뒤돌아본다.
언제나와 같은 캠핑의 일과, 그 여전함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드는 오늘.
'올해도 수고했어'
따스한 저녁식사를 함께 나누며 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나지막히 속삭여보았다.
내년에도 안녕한 나날들이 우리 앞에 가득하기를.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아내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