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먹어야 되는데.
잊고 있던 게 있었는데, 그게 뭐더라?
보통 만화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질문과 함께 주인공이 눈을 딱 뜨는데. 그리고 흥미로운 일이 시작되는 거지.
그리고 나한테는 없다. 흥미로운 일. 퇴근하다가 울고 달리다가 신호 기다리면서 울고 뭐 또 뭐 하다가 울고 그러는 게 생리 전 증후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어떡해. 어떡하긴, 그냥 사는 거지.
근래에 가장 놀란 사실은 고구마츄가 당류 22g에 탄수 44g이라는 것. 세상에, 그러느니 밥을 먹지. 그리고 스타벅스 망고 패션 후르츠 블렌디드의 당류가 프렌치 바닐라 어쩌고 라떼보다 당류가 두 배 더 높은 것. 속은 기분이다. 이제껏 외면했는데. 좋아하는 거라 무시해 왔는데. 이런. 하지만 새벽에 초코 다이제를 먹었다. 맛있었고 울적했다.
출근이 두렵다. 너무 바쁘고 분위기가 험악하다. 느끼기에 그렇다. 전공의들이 돌아왔고, 여전히 어린애들을 안 받아주는 병원은 널리고 널린 탓에 일은 더 많아졌다. 찾아내서 말해야 빠진 처방을 주고 노티해도 답도 없으며 조치는 빨리 취해지지 않고 그에 화난 보호자들은 나에게 컴플레인한다.
나는 그 컴플레인을 인턴이나 레지던트에게 전달하고 그들은 펠로우에게 전달하고 중환자실에서는 애들이 지겹게도 내려올 각을 보고 있으며 또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가.. 뭐 그렇지. 어떡해? 어떡하냐고. 또 어떡하긴. 잔뜩 갈린 후에 버스에서 우는 거야.
지하 휴게실에서 분명 전산을 들여다보고 있을 게 분명한 신규가 병동에 평소보다 늦게 올라오는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가 응사한다 해도 놀랍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도 힘든데 걔한테는 아닐 리가 없어서. 일을 코로 하는지 입으로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 같다. 해놓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투약 사고가 나기 딱 좋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녀와 내가 몸담은 팀은 중증도가 높다. 안 그런 팀이 없다지만 병실 특성상 아기들이 많아 일이 많다. 정말 많다. 신규는 진짜 죽을 맛일 거고 정말 일하던 그녀가 도중에 유니폼을 벗고 사복을 입은 채 병동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병동은 한 마디로 개판이니까.
아빠는 내게 이런저런 안전사고 썰을 들을 때마다 병원 가기 무섭다고 했다. 그건 무려 4년 전이었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지. 당장 내가 응급사직을 할 건 아니지만 정말 퇴사를 생각하게 된다. 시작은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흔해빠진 모닝이나 마티즈 한 대처럼, 부드럽게 스치는 생각. 집에 가고 싶다. 광교 어디쯤의 내 자취방 말고 대전 어딘가로.
나는 입사 동기들을 보면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이라이트 덕질 말고, 내한 공연 말고, 친구와의 추억이 생긴 서울 어딘가의 장소들 등등등 말고. 그들 역시 그만두지 않고 멀쩡히 다니고 있기에 나 역시 그만두지 않는 것. 그런데 그들은 나만큼이나 다른 세계에 몰입하지 않았다. 차이라면 차이였다. 아닐지도 몰랐지만 일단은 그래 보였다. 알지, 원래 사람은 제각기 다 다르고 또 다르고 또또 다르고.. 그런데 우리는 같고도 정말 너무 달라서, 내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 정말 her head was up in space - 라던 노래 가사처럼, 별종이 된 기분이었다.
돼지책. 고릴라책. 주인공이 릴리였나 소피였나 하는 여자애 그림책. 또 고릴라. 그림 속의 그림들을 그리는 사람. 내가 떠올리기에 그랬던 작가. 책을 펼치면 양 페이지 가득 눈에 들어오는 그림의 인물, 사물, 배경 모두에 또 그림이 있던 흥미로운 책의 작가. 할인하길래 티켓을 싸게 사 뒀는데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일, 그런데 난 출근해야 돼. 그러니 오늘이 정말 마지막. 나는 두 시가 되도록 이불에서 나오지 않았다. 설거지에 쓰레기 버리기에 청소기 돌리기까지 다 해놓고도 나가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나한테는 시간이 없는걸. 항상 비슷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그 말도 안 되는 일도 하는데, 귀찮다고 안 갈 거야? 라고 생각하기. 출근에는 핑계가 없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모든 일에는 다채로운 핑계가 붙었다. 나는 혀가 길어서 정말 말이 되는 갖가지 핑계를 댈 줄 알았으므로. 우울했다. 우울. 발음조차도 울적한 이 표현. 안 돼.
우울하다고 출근을 안 했나? 우울하다고, 뭐 같아서 정말 카트를 버리고 병동을 뛰쳐나왔나? 아니야. 복층으로 청소기를 가져가다가 또다시 깨달았다. 안 돼. 우울하지 마.
전시장은 좋다. 일단 시원하고 대체로 조용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세상이라서. 전시회장은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확대해 현실에 구체화시킨 공간이었다. 엄마는 늘 기탄수학이나 구몬이나 세계명작이나 고전을 제외하고는 다 쓸데없는 거라는 스탠스를 취했다. 집에는 책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부족했다. 나는 그런 쓸데없는 것들을 더 원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당장 1,2년만 지나도 안 읽을 책들. 아이북랜드. 아직도 기억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 권 남짓의 책들이 집으로 왔다. 독특한 냄새가 났다. 그림책에 자주 쓰이는 맨들맨들하고 미끈한 두꺼운 종이의 냄새. 이 집 저 집을 돌아 나에게 도착한 그 책에 배어 있는 애들 냄새.
전시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냄새는 안 났다. 딱히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렇게나 재밌지도 않았다. 당연한 건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시절, 고릴라와 코끼리의 털 한 가닥까지 보이게끔 그려진 삽화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보던 그 때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어떤 그림책들은 볼 때마다 재밌었다. 디즈니 만화처럼 미끈하게 예쁘거나 잘생긴 캐릭터들과 그림들을 보는 것과는 다른 재미. 콧구멍, 피부의 주름, 머리카락, 튀어나온 살, 손가락의 털, 입에서 나온 침방울 그리고 접시의 소스 자국이나 부스러기처럼 안 예쁜 것들이 정성스럽게도 그려져 있어서. 앤서니 브라운 책은 아마 그런 쪽의 최고봉이었다.
애들도 어른들도 많았다. 사실 8월 중순인가에 작가 내한 사인회도 했었다. 갈까 하다가 안 갔다. 내가 그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공연과 전시와 뭐 다른 것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냥 살아갈 때는 모르다가, 내 방구석이나 사진첩이나 집에서는 못 느끼다가, 바깥으로 나오면 알게 된다는 것. 생각보다 나는 그것들을 많이 좋아했고 때때로 깊게 위로받았음을.
고릴라 소녀.. 아니. 그 고릴라 책의 주인공인 한나가 고릴라가 한밤중에 고릴라 커플들을 배경으로 왕큰 고릴라와 함께 춤을 추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울 뻔했는데 울진 않았다. 울 정도는 아니었나봐. 거기 내 또래 직원이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거울을 계속 쳐다보고 있던 탓에 좀 남사스러워 그랬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책은 주인공 한나가 무뚝뚝한 아빠 말고 선물받은 고릴라 인형의 확장 버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니까.
어릴 때의 나한테 아빠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엄마도 무뚝뚝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끔, 뭐. 좀, 많이 무서운 사람이라 그랬지. 딱히 공통점도 없건만 나는 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실은 진짜 꿈일 그 장면과 그 내용이 좋았다. 난 고릴라 안 좋아하는데. 그 때도 안 좋아했을 텐데.
헨리 카빌이 나온 맨 오브 스틸을 한 달째 보고 있다. 한 달 전 극장에서 본 슈퍼맨의 프리퀄쯤 된다. 12년 전 개봉작. 꼬인 심보에, 왜 둘이 사랑에 빠지는지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모 이외의 요인이 뭐가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에. 아니, 얼굴들이 너무 치트키잖아. 그런 존재들한테 어떻게 안 빠져들 수 있어. 그렇게 덩치 크고 몸 좋고 짙게 생긴 사람 멋있다고 생각 안 했는데 아무튼 그는 참 잘생겼다. 여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진도가 안 나갔다. 지하철 출퇴근길에서 볼 정도로 몰입도가 크지는 않았다. 집에서 밤에 불 다 끄고 태블릿으로 틀어야 했는데, 항상 너무 피곤했다. 졸려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아, 이거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안 보고 뭐 했지.
한 달 내내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종료일이 다가오는 앤서니 브라운 전시와 영영 끝을 볼 수 없는 히어로 시리즈. 전시회, 영화관, 공연장. 허구를 재현한 곳들. 그리고 나는 언제쯤 이런 동떨어진 것들에 대한 관심을 멈출까 하는 의구심.
그러다가도, 그런 식으로 다른 세상을 찾지 않을 수는 없다는 걸 느꼈다. 그게 토마토 안 먹는다는 한 소녀에 대한 그림책이든, 인형과 함께 놀러다니는 어린애 스토리든, 실제로는 지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박쥐맨과 빨간 빤스 입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든,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등 일면식도 없을 밴드들의 음악이나 공연에 대한 것이든. 이유는 딱 알 수 없었으나 그냥 그게 나를 지탱했다. 쓸데없고 남들에게 자랑할 것도 성과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 없으면 안 되는 것.
의미가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영국인 작가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살았고 어떤 동물을 왜 좋아하고 전직이 뭐였고 하는 게 사실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남의 집 애의 어떤 사연에 착안해 뭘 그렸고 구상했다는 이야기가 정말 나와 무슨 상관인가. 정말 그랬다. 나는 멀쩡히 일을 다니는 동기들이 신기하고 가끔 존경스럽기도 했다.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찾아다니고 붙잡지 않아도 안 징징대고 잘 사는 것 같은 그들이 정말 신기했고 부럽다. 지금도 그렇다. 내일의 출근이 아직도 좀 두려운 만큼.
그런데 나한테는 그게 필요했다. 오늘 알았다. 정말 단 한 가지 어린 시절에서 지우고 싶은 건,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 말했던 엄마의 잔소리들. 쓸데없든, 있든 지금의 나에게는 중요했다. 어떻게든 일을 안 그만둘 나에게는 몹시도 중요했다. 어차피 이럴 거면 스스로 비난이라도 안 해야 하잖아. 출근해 퇴근하기까지 일주일에 못 해도 40시간 이상은 썼다. 뇌가 마를 것처럼 일하고 집중하고 그것 때문에 울기도 하는걸. 그런 게 내 세상의 전부라면 나는 매일 마음이 저려야 했다. 그 상태로 퇴근하면 잠만 자야 했다. 하지만
스물여덟 먹은 지금도 이십 몇 년전에나 봤을 그림책 전시회를 찾아서 울음을 좀 참았는걸.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냥.
달리기는 게으른 나를 위한 즐거운 활동이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나는 이제 힘을 덜 들이고 대충 잘 뛰는 사람이 되었다. 말했듯 기록은 몹시 후지지만. 그러니까 지하철역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딱히 세상을 싫어하지 않고 뛸 정도는 됐다. 입장은 여섯 시 십 분까지였으나 나는 여섯 시에 역에서 나왔기 때문에. 1km. 그 정도는 안 지치고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았다. 재밌었다.
티니핑 철분 젤리의 끔찍한 맛은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그나마 아르기닌 젤리가 낫긴 한데, 자두맛이라고 쓰여 있는 이 젤리에서는 사실 상한 콜라 맛이 난다. 콜라가 상하면 어떤 맛이 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런 맛이겠지. 칼슘 젤리는 생긴 것부터 좀 구역질이 난다. 하얀색의 안 투명한 형태가 꼭 몸 어딘가에서 실제로 추출해낸 뭔가 같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셋을 먹는다고 해서 나의 피로가 줄거나 근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15000원 쓴 사람이 되겠지. 튼튼한 어른이 아니라.
그래도 기분이 좋거든. 뭘 먹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하나를 빼서 챙기면 그 유치한 요정들이 나를 지켜줄 것 같아서. 근무가 끝나 다시 캐비닛 안의 가방을 열면 들어 있을 그 젤리에 웃을 수 있잖아. 어이가 없어서라도.
나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삶으로 들여와 시간과 돈을 섭섭지 않게 쓰는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라고. 약 먹어서 치료할 것도 아니고. 뭐, 인생이 조금 더 망하면 관심을 끊겠지. 그제야 다른 쓸모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지. 멋진 어른처럼.
감상 아닌 감상글을 주기적으로 올린 것의 단 한 가지 성과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
싫어하지 말고 지내야 한다는 것. 이런 게 내 재미라는 것. 그걸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재밌는 거 하려고. 계속 잘 지내고 싶으니까. 하던 대로. 잊었으면 다시 떠올리면 되지.
다시 찾으면 되지.
못할 거 뭐 있어.
이 말도 안 되는 출퇴근도 한다고.
했다고. 앞으로도 할 거라고.
무적이야, 난.
*
전시를 보니 바나나가 먹고 싶어졌다.
냄새가 싫어 죄다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 그 바나나.
사 온 윌리 인형과 한밤의 다과회나 해야겠다. 아직 종결 못한 헨리 카빌과 에이미 존예 아담스의 러브스토리를 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