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했더라면?
슈퍼소닉. 2025
아 물론 오아시스 말고 나.
식샤를 합시다 2는 재밌게 봤는데 3은 안 봤다. 2에서 구대영과 해피엔딩을 맞은 여주인공이 시즌 3 1화 시작부터 사고로 죽기 때문이다. 딱히 논리적인 이유를 댈 수는 없었지만 괜한 억하심정에 보지 않았다.
내용만 안다. 30대 중반의 구대영이 다시 세종에서 서울로 돌아와 20대 초반의 추억을 상기하며 어쩌고.. 클립이라도 다 보려 했는데 잘 못 봤다. 한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여주인공은 대학병원 간호사로 나온다. 그것도 내과. 빡셀 것이다. 신경외과를 제외한다면 내과는 원래 외과보다 압도적으로 힘들다. 그녀는 근황을 이야기하다 마주앉아 있던 구대영에게 말한다. 나 나이트라서, 좀이따 가봐야 돼.
응? 나이트 전에 외출준비 다 한 모양새로 시간 내서 앉았다가 저렇게 상큼하고 가볍게 말한다고? 그거 아닌데. 아니잖아. 저건 좋아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행동 아닌가? 너 안 좋아했으면 애초에 안 나왔어. 대영아, 저거 그린라이트야. 사실 초록불도 아니고 신호등이 없는 수준인데.
그냥 빨리 다음 약속이나 던지라는 뜻일걸. 진짜로.
그리고 둘이 끝에 이어지는지는? 모른다.
데이, 이브, 나이트. 근무 후의 약속도 사랑이고 끝난 후의 약속도 사랑이다. 강도를 따지자면 후자의 압승.
퇴근 후의 약속? 할 수 있지. 근데 사랑까진 아닌가? 하지만 확실한 건 정말 엄청나게 졸리다는 것. 하이라이트 공연도 데이 끝나고 갔었다. 저녁 여섯 시 사람 빽빽한 지하철에서 반은 꿈을 꾸는 채로 대체 이게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표를 판다 쳐도 일단 공연장에서 팔아야 하니까 갔다. 가서는? 이렇게 일 년 반을 넘게 저당잡히고 있잖아.
하지만 출근 전이라. 쉽지 않다. 기억하기로 출근 전에 누군가를 만난 건 딱 두 번이다. 모두 다 같은 병원의 가까운 동기 또는 친구와 근무 전에 함께 출근하기 위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낸 정도였다. 어떤 의기투합이라고도 할 수 있지. 짜식, 너도 힘내라. 같이 뺑이치고 있다는 걸 기억하자구, 같은. 친교 목적의 인간관계이긴 하나 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입장이니 백 프로의 친목 도모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어떤 의미로는, 반절은 뇌를 뺀 채 떠들어도 되거든.
그리고 진짜 사랑? 근무 전에 하는 거? 달리기를 한다. 그도 아니면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10분이든, 30분이든 1시간이든 중요치 않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고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그런 거. 사랑이었다. 또는 덕질. 세상이 좋아져 덕질이라 부르고 연예인 등등에 돈 갖다바치는 그런 거. 촌스럽게 표현하자면 그런 건데 틀린 말도 아니다. 하여간 교류는 아닌데 교류인 그런 활동. 확실한 행복? 행복. 그런 게 행복이 아니면 뭐겠어.
오아시스 형제, 아니 갤러거 형제와 오아시스의 결성과 굴곡 등등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이들의 재결합을 맞아 재개봉했다. 대학 갈 때쯤에도 한 번 했던 것 같다. 딱 그 즈음 나는 그들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처음이었지. 그 땐 안 봤다. 몰랐고 관심이 없어서. 행복이나 즐거움 기쁨 같은 건 스스로 찾아내 쥐어야 한다는 내 인생의 분수를, 그제야 수능을 마친 나는 잘 몰랐다.
아니면 태생이 그렇지만 평생 뭔가에 과몰입하지 않은 적이 없는 스스로의 자아를 일 년쯤 밀쳐 두고 있느라 좀 잊고 있었던 건가? 클라리스 빈, 해리포터, 재클린 윌슨의 소설들, 나니아 연대기, 윔피 키드, 게리 슈미츠의 소설, 원디렉션 등을 앞세운 팝송들, 아. 그리고 빅뱅까지. 나는 항상 내 인생 바깥의 무언가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선을 그어놓은 그 구역에 그것들을 들이고, 무조건적인 관심과 호감과 시간을 쏟았다. 그래서 생각하는 거지.
음. 그 시간에 공부를 했더라면?
이브닝 근무를 앞두고 코엑스를 찾았다. 사운드가 개쩔기를 기대하면서. 정말 너무너무나 피곤해서 그 날 아침에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고민했고 지하철을 탄 상태에서도 고민했다. 그냥 잠이나 잘 것이지, 인종차별 발언이나 하는 구시대 아저씨들 젊은 날 이야기를 굳이 보러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는 새에 도착했다.
애초에 사람 자체가 별로 없는 아홉 시의 메가박스. 연하늘색 맨시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비공식 굿즈 티셔츠 같은 걸 입은 사람들, 오아시스 키링을 단 사람. 어디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팬임을 숨기지 않은 그들.
여전하군, 허허, 하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아, 잘 왔다. 싶던데? 왜인지는 모른다.
그들의 내한공연에 대한 기대는 바닥을 뚫고 마이너스를 찍었다. 칭총이 어떻고 욱일기가 뭐 어째? 별로 안 알고 싶었는데 알게 되는 것들. 해외 밴드 음악을 듣다 보면 항상 있는 일이었다. 원리퍼블릭도 그랬고 콜드플레이도 그랬고 일본 밴드들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사실 조금 유명세가 있다 싶으면 그런 논란을 안 마주치는 게 더 어려웠다. 짜증나고 귀찮았다. 애초에 행보가 멋져 노래를 들은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지.
그렇게나 쌓아놓은 게 많고 가진 게 많아도 인생은 지루해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나. 엄청난 수의 인간들이 표를 사준 공연들을 앞두고도 저런다니. 실망은 실망인데 더 큰 문제는 안 멋있다는 거였다. 안 멋있는데 왜 보러 가. 어차피 노래는 음원이 더 깨끗한데.
하지만 인생은 더 피곤했다. 출근은 싫어도 아파도 한다. 더 싫어도 죽을 것처럼 아파도 한다. 그런데 이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것들을 멀리한다고? 그럼 내 삶엔 뭐가 남아? 병동 이야기? 월급 받고 뭐 사는 걸로 다 잊어야 하는 그런 기억들? 안 될 일이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갔다. 해줄 때 즐기자, 하는 마음으로. 오기였다. 그 뭣 같은 출근도 하는데 잠 좀 온다고, 좀 짜친다고 과거의 내가 그렇게 바랐던 것들을 지나쳐 보낸다고? 안 돼, 싫어. 가야 해.
나는 조조로 영화관을 찾았고, 형록이는 나이트가 끝난 후에 간다고 했다. 좁은 내 인간관계에서 그는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면 이상한 위안을 받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위키 전체가 통째로 들어있나 싶을 정도로 오아시스와 블러의 모든 것에 대해 통달해 있었기 때문에. 굿즈 등에 적지 않은 돈을 쓰는 건 물론이었고. 내가 쟤보다는 낫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않았고 연락을 하는 건 오아시스나 그와 비슷한 밴드들의 내한 소식이 있을 때뿐이었다. 오아시스는 정말 우주 바깥에서도 유명할 밴드였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내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낮았다. 늘 그랬다. 노엘 갤러거 콘서트에 간다고 하느니 하이라이트 공연에 간다고 하는 게 더 편했다. 설명을 덜 해도 됐으니까. 그렇게나 유명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내 입으로 설명하고 있으면 나는 내가 이상한 컨셉 같은 걸 잡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싫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떤 설명부터 해야 하는 것. 취향이 같다는 건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편한 거였다. 사실은 교류가 많지도,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아니었지만 연락이 이어지는 이유는 그런 거였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과 동시에, 툴툴거리는 것 같은 노엘의 목소리가 나왔고 나는 모든 것을 잊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참았다. 대체 왜 그렇게 좋은지를 알 수 없었다. 영화? 다큐멘터리? 그 두 시간이 어땠는지는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좋아하는 대상의 목소리나 영상을 두 시간 내내 틀어줘서 좋았던 건데 어떻게 객관적인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겠어.
밴드와 멤버 구성과 그들의 업다운은 사실 다 아는 내용과 흐름이어서 신기할 게 없었다. 내가 잘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늘 스스로가 팬이 맞나 생각했으니까. 공연 소식이 떠서 가고 싶어할 때마다, 사실은 그 날 아침에 졸려죽겠는 상태로 지하철에 서 있으면서도, 내가 이 정도로 이들을 좋아하나 진지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다.
젊음이 좋았다. 프레드페리 피케 티셔츠를 입은 측면의 리암 갤러거 사진이 꽤 자주 나왔는데 그가 참 잘생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잘생긴 거야 알았지. 그런데 원래 잘생기고 예쁜 건 시각적인 걸 넘어서 마음 속 뭔가를 건드리게 되어 있다고. 나한테 그는 그렇지는 않았다. 그냥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맨체스터 최강미남 맞았구나. 그렇군. 그게 다였다.
잘생겼었고, 젊었고, 그리고 또 젊었다. 볼수록 알 수 없었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물파손과 폭언과 기행을 일삼는 그 밴드를 나는 왜 좋아하는가. 좋아하는 게 맞나? 글쎄. 그런데 근무 전에 그렇게 찾아간 거 보면 좋아하는 게 맞지.
무언가에 열광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내게 팬이 된다는 건 0에 수렴하던 관심에 대한 버튼을 눌러 100으로 그 수치를 올리는 거였다. 그 선을 그어 놓은 구역 안에서 나는 무조건 열광하게 되어 있었다. 영화관이 어두워 내 표정을 아무도 -어차피 다 스크린을 쳐다보느라 누구도 관심없겠지만- 보지 못한 게 너무 다행이었다. 왜일까 고민했다.
작년에, 그들의 일대기 비슷한 걸 다룬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정말 내가 '이래서 좋아하지' 하는 요소들을 많이는 찾지 못했다. 좋아하기로 해서 좋아한 건지 아니면 이조차도 관성이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있었다. 한동안 안 듣다 들으면 너무 좋은 것. 그 때는 알았다. 아, 이래서 좋아했지. 하는 것. 그리고 다시 반복. 이것저것 듣고 혼자 너무너무 행복해하고, 또 좀 지겹다가, 잊고 있다가, 다시 마주치면 이런저런 이유들을 알게 되는 것.
신기한 일이다. 공연을 보러 가고 앨범을 사고 굿즈를 사는 것. 콜드플레이 콘서트에서 크리스 마틴은 정말 고맙다고 했다. 정말 줄줄줄줄 길게도 말해주었다. 티켓팅하느라 고생해 주어서 감사하고, 그 티켓을 살 돈을 버느라 고생했고, 여기까지 오는 뭣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고생했고 등등.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공연은 늘 소비재였다.
티켓만 딱 산다고 되는 게 아니었고 가는 것도 오는 것도 내 몫이었으며 그걸 위해서는 다른 일정도 조정해야 했다. 무슨 알현 같은 게 아닌데 해야 하는 짓만 놓고 보면 그랬다. 내 돈 내고 내가 고생하러 가는 것. 그 사람들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일이었겠지만 나는 아닌걸. 고마워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럼 궁금한 거지, 나는 왜 가는가. 왜 듣는가. 내가 내어준 것은 이만큼인데 내게 돌아오는 건 무엇인가.
내가 소비해온 것들을 떠올린다. 책, 책 속의 주인공들, 음악, 그 음악의 사람들. 나는 좋아하는 이유들을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나 같은 게 좋아하는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어서. 그런데 이 정도로 시간을 쓰고 돈을 쓴 건 좋아한 게 맞잖아? 그럼 이유 같은 게 있을 법도 하지. 뭐가 좋았지?
나는 이들의 변명하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질질 짜지 않아서 좋았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으려 들어서 좋았다.
원더월이 수록된 앨범에 대해 노엘 갤러거가 인터뷰한 영상이 좋았고, 사람들이 본인의 앨범을 듣고 뭘 느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영상이 좋았다. 가수는 곡으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걸. 나는 그 작품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건, 역으로 그 창작물에 본인이 말하려는 바를 잘 담지 못한 방증이라는 삐딱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터라 그런 그의 태도가 멋지게 느껴졌다.
원더월이 무슨 뜻이냐고? 멋있으면 그만이지, 라고? 맞는 말이잖아. 당장 그 자리에서 아무 말이나 꿰어 갖다 붙였어도 얼마든지 사람들은 꿈보다 해몽을 덧붙여 좋아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는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쓰고 싶어서 썼을 거고 사람들은 그냥 그게 좋아서 들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를 어떻게 담았든 그건 감상자가 알 바가 아니잖아. 알길 바랐으면 그걸 가사나 리듬으로 녹였어야지. 설명은 언제나 짧을수록 좋은 거였다.
나는 뭣도 없는 주제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웃긴 짤들이 마음에 남았던 것 같기도 하고. 간지나잖아. 난 내 X대로 썼다. 들을 거면 들어라. 공연장 와서 굿즈들 사고. 끝. 맞잖아? 주최자 입장에서 그거만한 게 더 어딨는데. 무슨 의미는 의미.
정말 인생은 언제나 X 같았다. 그러니까 오아시스 말고 내 거. 쥐어지는 것도 없는데 견뎌야 할 건 너무 많았고 중요한 일도 아닌데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타격은 컸다. 이걸 개같지 않다고 말할 방법이 있나?
변명하지 않고 맞선 건 사실 맨체스터의 그들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나 그들은 운이 억수로 좋게도 살아남았다.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해서 욕을 먹은 건 뭐 그들 사정이었고, 나는,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라는 그들의 말이, 울거면 혼자서 울으라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그래도 된다는 것 같아서. 아버지에게 잔뜩 맞고 큰 그들이 하는 말이었고, 정말 미치게 가난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는 그 말이 조금 인상 깊었다.
내 인생도 딱히 나아질 게 없는 점은 비슷하니까. 하기 싫으면 때려치워, 그 말은 누군가에게는 공감할 줄도 모르는 냉혈한의 코멘트일지 몰랐으나 내게는 위로 아닌 위로가 됐다.
나는 락스타가 될 수 있는 것도, 노래에 재능이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것도, 어쩌면 그들의 서사에 공감할 만한 사연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좋았다. 다른 것들이 좋았던 것처럼.
늘 생각한다. 이걸 해서, 보러 가서, 좋아해서 뭐가 나와? 없다. 하지만 없었다면 어쨌을지는 상상이 잘 안 간다. 말하잖아. 덕질과 운동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 퇴사했을 거라고. 그 선 안에서는 눈 딱 감고 잔뜩 열광하는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이게 사랑인가? 대상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이지. 다음에는 또 뭘 위해서 잠을 포기하고 원정을 나설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게 나를 살게 하는걸. 정말로. 지금까지도 사실 늘 그랬던 것처럼.
공부? 그 시간에? 나는 못 했을 사람이다. 늘 딴 생각 중이었거나, 딴 생각을 하게 할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딴 생각 안에서 자생했다.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돈과 시간을 주고 에너지를 샀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상한 관계. 그걸로 말미암아 잘 살고 있다. 그게 아니면, 정말 살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단 말이다. 이 뭣 같은 인생. 또 출근인걸?
동시대에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좋아한 모든 것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