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참으라고 X발
전지적 독자 시점. 2025
1. 15000원 / 2시간
2. 재관람 : 한 번도 힘들었다.
3. 그래픽과 배우 감상을 원한다면 추천
4. 동행 : X
5. 내가 찐따라 그래.
그러니까 찐따는 어쩔 수 없다고.
찐따에 진지충이기까지 한 나?
절레절레, 스스로에게 고개를 저어 주는 것밖에는.
내가 뭘 본 거지. 3호선? 3호선 보긴 봤지.
3호선. 노는 날마다 지나가는 그 똑같은 옥수-금호 구간.
사람들이 다 들러붙어 서로를 패죽이는 와중에 주인공이 개미를 죽여 에너지를 얻고 통상 영웅이 하는 멋있는 일들을 한다. 그러고, 다리가 무너지고 괴물이 나오고 찐주인공이지만 찐주인공이 아닌 인물이 나오고 설명충이 나오고 또 설명충이 나온다. 이어 또 괴물이 나오고 띠꺼운 인간들이 한 움큼 나온다. 어찌저찌 모여든 인물들은, 이름도 기억 안 나고 할 필요도 없는 아이템이며 무기를 들고 인물들이 뛰고 뛰고 마찬가지로 하나도 기억 안 나는 퀘스트를 깨면서 이긴다.
이기나? 이기는 건가? 어쨌든 끝난다. 이어, 멋있는 말 날려주고. 끝. 진짜 끝이다.
뭐가 나오나 보자 하며 버텼던 내 마음도. Tlqkf.
주인공? 주인공만 주인공이다. 이 영화의 가장 X 같은 점이다. 그래, 너 다 해 드세요. 니가 제일 멋있다, 임마.
근데 그건 주인공 잘못은 아니고, 누구 잘못이지? 뭐, 누군가의 잘못이기는 하겠지. 그리고, 중요한 건 아닌데,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은 죽고 살 것 같은 사람들은 산다.
그럼 뭐가 가장 중요하지. 가장 중요한 점?
그냥 예매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
근데, 호기심에 어쩔 수 없었다니까? 하지만 어떡해.
나같은 진지충한테 이 초흥행대작은 너무 어려운걸.
17년인가 18년인가, 2학기가 끝을 향해 가던 때. 의도치 않게 학과 동기와 같이 하교하게 됐다. 별로 안 친한 애라 할 말이 없어 버스 내내 뭔 말을 해야 하나 해야 고민했는데 그녀가 주제를 던졌다. 나 인생 망했어, 아니. 인생 망했어, 가 아닌가? 요즘이면 현생 불가. 라고 할 법한 표현. 그 땐 그 단어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녀가 얘기한 거였다.
웹소설이 미쳤어. 웹소? 인소? 아니, 인소랑은 좀 다른데.. 그게 뭔데? 개존잼이야. 진짜 진짜 재밌어. 너도 한 번만 봐봐. 제발. 진짜 재밌어. 한 번만 먹어봐, 잡솨봐, 제발.
아니, 그래.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먹기는, 야. 영업해봐, 그럼. 그렇게 그녀는 사실 6호선 저편에서 나와 빠이빠이했어야 했던 운명을 접고, 1호선 석계역까지 나와 함께하며 그 컨텐츠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광고라 해야 하나, 이걸. 받은 것도 없을 텐데. 인생과 학점 등등 갖다 바친 건 있어도.
개미. 개미만 생각났다. 그 설정을 가지고 겨우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그렇게 권한을 다 가져서 한다는 게 결국 게임 깨는 거야? 아니. 게임이 아니라, 시나리오야. 그게 버전이 어쩌고.. 하면서 아이템도 그 각각의 기능까지 설명했던 것 같다. 나는 좋았다. 그녀가 그렇게 열을 올리며 설명하는 걸 보는 게 즐거웠고 나름 흥미롭기도 했다.
내가 타야 하는 양주행 열차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끝없이 그 소설이 얼마나 자신의 현재 삶을 저당잡아놓고 있는지 내게 알렸다. 전독시. 김독자. 이름이 독자야? 아. 근데 진짜 독자야. 아하. 그 독자가 진짜 세상에 나왔다.
채영아, 잘 지내니? 영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나는 안 봤거든. 그래서 심히 후회 중이야. 뭘?
니 말 따라 원작 안 본 걸? 아니. 이걸 본 걸.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안 팔리는 것? 도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열등생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우등생을 분석하는 게 낫잖아. 내용이, 메시지가, 영상미가, 표지가 얼마나 어떻게 구리고 외설적이고 시류에 어긋나 있고 깊이가 없는지와는 상관없다. 그조차도 우러르게 된다. 사람 지갑 열게 하고 시간 쓰게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은 아니잖아?
한 때는 서점을 뒤덮었던 보노보노와 디즈니 캐릭터 표지의 에세이들을 잔뜩 무시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넌 그럼 그렇게 팔리는 뭔가를 만들 수 있어? 만들어본 적 있어? 없다. 사람들이 구입한 게 그 책의 텍스트든, 대나무 코믹스와 디즈니가 몇십 년에 걸쳐 갈고 닦아놓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주는 위로든, 내용이 아무리 허접해 보일지라도 그걸 대형서점의 목 좋은 곳에 진열해 놓게 만든 무언의 자본력이든.
그런 게 있냐고, 할 수 있냐고. 못 하거든. 그래서 무시할 수 없다. 결과로 증명할 일이다. 너는 누구에게 그렇게 열린 지갑일 수 있느냐 하면 예스라고 대답 못 하니까.
그 친구의 열띤 영업을 들었을 때도 나는 스토리를 비웃었다. 그 황당한 내용. 설정은 흥미로우나 그 대단한 능력으로 한다는 게 겨우 게임의 확장판이나 다름없는 소설 속 세계 쳐부수기인 줄거리. 나는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근데 뭐 나한테만이니까. 걔한테는 재밌나보다, 했다.
몇 년이 지나 네이버 컨텐츠 웹툰 창에 그 제목이 깔쌈한 일러스트와 함께 게재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지하철에서도 그 광고가 보였다. 그 때 그게 저거라고? 그 내용을, 저렇게 광고까지 걸려면 몇 명의 확인을 거쳐야 하는 거야. 일러스트레이터, 외주 회사, 또 외주 회사, 원작자,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어딘가. 일단 그 사람들한테는 그게 저렇게까지 인정받았다는 거잖아. 뭐, 지하철 광고야 거의 뭐 그들만의 리그나 다름없는 배우와 아이돌 생일 홍보가 대부분일 때도 있으니, 또 역시 그런가보다 했다.
그리고 올해의 출퇴근길. 역시나 열받는 지하철의 전광판. 어디인지나 알려줄 것이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광고며 영상들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요샌 뭐 강아지가 어디 세탁기통 같은 곳 안에서 뛰노는 것 같은 홀로그램과 섬유유연제 홍보마냥 꽃이 가득한 애니메이션을 계속 내보내던데. 그거보다는 재밌었다. 뭐가? 이 영화 티저가. 그렇게나 홍보를 하더라고. 그래서 봤다. 보고, 인정하고, 박수쳐야 할 거 아니야. 이 미친 언더독의 성장세. 나한테만 언더독인가, 지금도?
박수는 나한테 쳤다. 도중에 안 나온 나한테.
정말 나오고 싶었다. 영화 감상을 쓸 때마다 이 문장을 좀 다른 의미로 자주 쓰게 되는데, 정말 나오고 싶었다. 어떻게 나오고 싶었지? 넓디 넓은 스크린으로 나오는 본새나는 그래픽들이 아니었으면, 초반에 주인공이 뿌려놓은, 본인은 이 소설의 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떡밥이 아니었다면 정말 나왔다. 만 오천원을 주고 기억할 만한 거?
이 화면 속의 한국인들은 분노와 혐오로 떡칠된 지하도의 사람들이구나. 저열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하라는 대로 생각도 주관도 어떤 판단도 없이 따르며, X도 없으면서 세상을 씹고 비웃으며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 여기는 멍청하고 나약하기까지 한 족속들로. 뭐, 그게 아니었다면 할 말은 없다. 근데 난 그렇게 읽었다. 왜, 나도 관객이라고.
오징어 게임이 싫었고, 영화 파과가 불쾌했던 이유와 맥락이 같다. 실제로 그 불행들을 위해 어느 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살육과 비인간성의 단면을 신나게 보여주는 꼴이 아니꼬워서 그렇다.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자기 혼자 아는 것처럼 떠드는 가여운, 좀 가여운 사회부적응자 같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은데, 뭐. 더 표현이 없네.
어떤 법도 윤리도 없이 살해하라고 한다. 그렇구나. 그 말에 버튼이 눌린 듯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짓이기고 때리고 메친다. 잔뜩 엉켜서. 그것에 지령을 내리는 건 우스꽝스러운 지방이 캐릭터와 닮은 뭐.. 중간 몹쯤 되나?
잘근히 밟아서 하수구에 처넣으면 오물에 쓸려 보이지도 않을 애가 떠드는 소리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그 난장판을 만든다. 알아서.
그리고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할머니를 구하고, 되바라진 애를 구하고, 동료를 구하고. 퀘스트에 퀘스트를 거듭해 다음 장소에 도착한 후에는, 돈과 실리와 본인들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듯한 얄팍하고 지저분하고 안 잘생기고 안 예쁜 인물들 앞에서, 또 선의와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한다. 씨. 이렇게 재미없을 데가. 관객이 바보야?
나는 내가 지나치게 외국의 것을, 그게 뭐 영미권이든 일본이든 통상 한국 것이 아닌데 소비되는 많은 컨텐츠들의 출신지들일 그들 국가의 것들이면 옹호하고 보는 버릇이 있나 자주 의심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다른 것들을 떠올려 봤다.
뭐 봤더라, 이런 거? 좀비랜드? 언제 봤지? 그거 2까지인가 3까지인가 나온 거 다 봤는데. 아니면, 서브스턴스? 좀비랜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서브스턴스는 기분이 나빴다. 그 땐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시간이 지나 보니 뭐 나한테는 폐기물 급이다.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이니까.
뇌가 없는 것처럼 여기저기로 총을 쏘고 인간이 아니라 단백질 덩어리 동물인 것처럼 사람을 등장시키는 건 좀비랜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건 심히 기분이 나쁘잖아. 뭐, 외국 거라서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 화면 바깥에서는 나는 이방인일 수 있었거든. 그 백인들과 나와의 공통점은 인간이라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나도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말을 썼고, 같은 지하철역을 다녔고, 비슷한 차림새와 외양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냈거든. 긁혀서 화난 거냐고? 맞겠지. 너도 사실 이렇게 생각하잖아? 이렇게 패죽이고 싶잖아? 이렇게 너만 살아남고 싶잖아? 저런 모양새로 더럽고 추잡하게 처먹으면서 살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원래 사는 게 좀 그렇지. 말끔하고, 깔끔하고, 향기롭고 그런 것만 있진 않지. 너무 잘 알지. 어떻게 몰라, 나 병원에서 일해.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딱 그 3호선 타고 놀러다니고. 맞는 말이지. 그런 면에서 현실적인 설정들인 건 맞잖아. 우악스러운 사람들, 몰려들어 아우성치는 순간, 땀에 절은 얼굴, 삶에 쩌들어 외형을 신경 쓸 여유가 부족한 모습들. 하지만 그것만 했으면 될 일이다. 내내 생각했다, 아. 당신이 본 한국 사회는 그렇군요. 이건 뭐, 조커도 아니고.
걔는 그래도 지 힘으로 활개치고 다녔는데. 내용 끝까지 알고 사람들을 속으로 아닌 척 비웃으면서 선민의식에 쩔어 퀘스트 깨러 다니는 게 아니라.
아. 내가 그 영화를 선녀라고 생각할 날도 오네.
돈깨나 쓴 것 같은 그래픽과 실제 배우들이 등장하는 화면을 쩌는 파괴력과 더 쩌는 음향으로 섞어 보여주다가, 스크린 밖의 관객까지 끌어들여 학교 폭력과 성희롱과 빈부와 물질주의와 이기심과 부채감을 욱여넣는다. 주인공만 주인공이다. 김독자, 그리고 그 무리를 빼면 모두는 남 또는 조금의 앞날을 생각하기는커녕 바로 몇 분 앞의 현실만에 눈이 벌게져 난투극을 벌이는 추한 사람들로 그려지니까.
그럼 나는 어느 쪽이어야 해? 김독자? 에이. 난 쟤한테 이입 못 해. 어떻게 그래. 저렇게 판 깔아준다고 거기 이입해야 해? 왜? 내가 주인공이야?
기분이 나쁜 이유다. 고작 그 시나리오 부수는 걸 보여주려고 저 염병을 떨며 다수를 짐승으로 만든 점. 그런 와중에 인간은 원래 본성이 어쩌고.. 하는 식으로 분위기 잡은 채 가르치는 것까지 빼놓지 않는다. 그러는 너는, 사람 아니고 뭔뎅?
어디 개폼 잡으면서 진부한 멘트로 사람 열받게 만들어.
물론 영화의 메인 스토리라인은 그게 아니다. 하지만, 스토리로만 말하는 게 영화라면 굳이 만들 필요 없다고. 러닝타임 약 2시간 중 1시간 30분은 다 잘라내도 내용 이해에 전혀 지장이 없다. 영화에는 소리와 얼굴과 표정과 조명과 로케이션이 있지. 짜치게 한글 표지판으로 다 써놨으면서 나보고 뭘 더 읽으라는 거야? 문자로 다 떠먹여주는 내용 머리에 입력시켰으면, 스크린에 그 좀비 같은 일반인들이 잡히는 걸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당연히 내 몫이잖아.
그래. 영화를 보러 갔으면 주인공이 뭘 하는지를 봐야 한다. 그런데 별로 관심이 안 간다고. 그 큰 화면에서 어디를 어떻게 볼지도 내 마음이잖아. 어쩌면 마음보다 더 크지. 눈이 가고 시선이 향하는 걸 어떡해. 어떻게 하든 사실은 몰살시키기 힘들 것 같은 괴물들, 전개되는 꼴을 보니 애초에 개연성은 없는 내용이라 내가 긴장하면서 볼 이유가 없던데.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렇게 의식이 흐르는걸?
그런데 그 의식을 붙들어줄 장치는 없다. 나한테는 안 보였어. 어떤 인물도, 그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식에도 이입할 수 없어 보는 내내 마음을 붙일 곳이 없었다. 하긴. 이건 이런 식으로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그럴지도.
판타지에 몰입을 못 한다기엔 나는 온갖 유치한 컨텐츠들을 사랑했다. 그 돈 주고 그렇게 영화관을 드나는 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그래서 이 영화도 보러 온 거라고. 이미 말 안 되는 내용인 걸 알고 보고 왔는데도 이렇게 집중을 못 시킨 건 뭐.. 그래. 내가 너무 방구석 진지충인 탓이다. 나도 알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정말로. 그런데 보인 걸 어떡해.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말마따나 나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니까.
그린 존. 모두가 서로에게 발을 걸고 밀어뜨리려 하고 끌어내려 엉덩이를 밀어넣으려 하는, 그조차도 습기 찬 지하철역의 타일 하나짜리인 그 구역. 앉아 있어도, 몸을 붙이고 있어도 안전할 수가 없는 그 그린 존.
나는, 장르 분류대로 판타지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이면을 극대화시켜 내게 알아들으라고 종용하는 이 비싼 싸구려 영화에서 그린 존만을 남긴다. 사실 레드 존인가? 이 영화가 나한테 개지랄 떨어준 대로, 너는 과연 그 지하철의 할머니를 죽어라 패던 학생처럼 폭력을 가한 적이 없는가, 하고.
그게 이 영화가 내게 던진 또다른 그린 존이다. 그린이지만, 멈춰서 생각하라고. 거기 앉아서 떠올려 보라고. 이런 개판 오분 전인 한국에서 넌 그런 존재가 아니었냐고 이 화면 속 번쩍거리는 그래픽과 엄청난 개런티를 받았을 배우들 사이의 배경에서, 너는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를 죽어라 패고, 끌어내리고, 혐오하고, 분노에 린치한 적이 없느냐고 말이지. 어차피 다, 영화에서 그려준 것처럼 더러운 지하에서 구르는 입장이니까. 스크린 안과 바깥 모두에서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 영화가 내게 맘에 들었을지는?
나도 모른다. 인정했잖아. 내게는 이런 자본을, 원작을, 캐스팅을 불러들일 파워가 없다고. 그렇다고 이걸 공익광고처럼 만들었을 수도 없을 일이고. 그런데 아쉽긴 하다는 거지. 아쉬운 걸 넘어서 기분이 나쁘다는 거야. 뭔 결말을 다시 쓰는데? 결국은 그냥 어쩌다 붙은 사람들이랑 니 하고 싶은 대로 정해진 일들 해낸 게 다잖아? 그래놓고, 함께했다?
이건, 뭐. 다 짜여진 판에서 구른 거 인정해서 겸손하게라도 굴면 어이가 없지나 않지.
진짜 끝난 게 맞나 싶어서 엔딩 크레딧 끝까지 올라가는 거 다 봤다. 리스펙하는 시간이 됐다. 아, 그래도 이 많은 사람들이 이걸 만드는 데 기여했구나. 일자리 창출이 됐고 경제적 순환이 됐구나, 하는 진짜 리스펙. 돈을 벌어들인 거대 원작, 그렇게 또 수익을 창출해낼 영상화된 컨텐츠. 그럼 된 거잖아? 내가 영화를 영화로 못 보고 이런 식으로 혼자 해석해 대는 찐따인 건 이쯤 해 두면 될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재미가 있었겠지. 그리고, 재미가 있겠지.
근데, 난 참느라 힘들었다. 이 모든 생각들을 참고, 재미있어보려 노력하느라 심히 힘들었다.
그러니까 뭐 다시 말하자면.. 3호선역 모험하느라, 힘들었다고. 긁히고 힘없는 한국인으로, 그런 여정까지 함께하느라 힘들었다 이 말이다. 거기다 말했듯, 난 방구석 진지충이기까지 하잖아? 찐따인 내 잘못이지, 어쩔 수 없어. 그치?
그리고, 원작도 안 봐서, 몰라서 그래.
그래서 이게 내 한계다. 최선이고.
+
그리고.
출근하기 싫다.
아. 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