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미없어도.. 사랑은 하시죠?

아무튼 영화는 영화

by 이븐도


자 이제 누구 잘못이지?


쥬라기월드 : 새로운 시작. 2025


1. 이것저것 할인 13000원 / 아언제끝나아
2. 재관람 의향 : X
3. 추천 : X
4. 동행 : 없으면 중간에 탈주 각
5. 이 돈이면 씨



.. 그리고 누가 공룡 보러 애들랑 가요.

가도 되긴 한데. 음.


근데 어른도 안 와도 될 것 같아.

재미가 없기 때문이야.

그러므로 누가 죽는지 스포한다.








1. 네 시간 자고 나서 데이근무 후 약속을 잡은 내 잘못.

2. 울면에 탕수육을 때려넣고 영화관으로 들어간 내 잘못.

3. 드래곤 길들이기와 씨너스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잘못.

4. 에어컨 빵빵하고 좌석 편했던 롯데시네마 잘못.

5. 대사의 80프로를 잘라내도 내용 이해에 지장이 없을 대본을 쓴 각본가 잘못.

6. 초반 30분에서 1시간을 숙면했으나 모든 내용을 이해한, 너무 똑똑한 내 잘못.

7. 닭만하다는 공룡을 닮은 자세로 상영관을 들락거린 흰 티 입은 사람들 잘못.

8. 아, 쓸 말 없다. 아무튼 내 잘못.

9.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기도 쉽지 않다, 고 샤우팅하듯 말하며 나간 남고딩인지 중딩인지 알 수 없는 관객 잘못.

10. 모든 배우가 너무 핫하고 또 핫하고 몸매가 대단한.. 아무튼 그 잘못.






상반기에 영화관에 쓴 돈을 합해 보니 웬만한 내한공연 한 번은 가고 남을 비용이 나왔다.

영화 한 편 볼 값으로 한 달간 OTT에서 세상 모든 영화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시대. 이 정도면 나는 꽤 현실적인 범주 내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아닌가? 아니지. 영화관을 사랑하는 건가? 어쨌든.


이런 내게도 재미없는 영화들이 있다. 재미없다는 게 어떤 거지? 그런데 꼭 돌아보면 재미가 없지만도 않았어. 왜 갑자기 이런 걸 떠올리게 됐나면. .






재미없는 영화에는 대체로 두 종류가 있다.

세 종류인가?

네 종류로 한다.


당신들 얼굴에는 죄가 없소이다


하나.

그러니까 아무튼 도무지 재미가 없고 내용 연출도 촌스러울 정도로 작위적이라 절대로 남에게 추천을 하지 못하나, 그 얼굴들만은 훌륭한 영화들. 내게는 잘생기거나 예쁜 배우를 보기 위해 특정인의 출연작만을 골라 본 시절들이 있다. 그 때의 영화들을 상당수 여기로 분류한다.


좀 미안한, 사실 안 미안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일본 청춘 배우가 출연한 로맨스 영화들. 또, 다수의 영미권 배우들이 무명 시절 찍었던, 영상미만큼은 런던 파리 등등의 지역색으로 아름답고 고요하고 정갈해 심신에 충분한 안정감을 주지만, 내용만은 이게 뭔 환장하는 소리일까 싶은 내용일 로맨스 또는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까지.



홀리하다


늘 OTT 서비스를 두 개 이상 구독 중이었는데 대체 왜 이리 기억에 남는 게 없는지 어느 순간 궁금했다. 그게 다 이것들 때문이었다. 예시는 너무 많아 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런 영화들의 영상미를 사랑했다. 한다. 아니, 얼굴 이쁘고 잘생긴 것도 영상미잖아. 유치해 보이는 그 누렇거나 뿌연 필터도, 인천 앞바다 같지만 그들이 등장하니 순간 둘만의 십대 시절 추억이 담긴 바닷가가 되어 버리는 그런 것도. 그것도 재미라고.

이런 영화가 아니면 그런 달콤한 거짓말 속으로 들어가기는 힘들다. 재미가 없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아니 사실 이건 재밌었나?


.

상술한 것과 비슷하나 결이 다르다. 사실은 뭐, 감상을 남겼던 해피 엔드도 이 계열에 들 수 있으나 그래도 그 때만은 감명이 깊었기에 보류한다. 작년에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딱 이렇게 더울 때였다. 애초에 잔잔한 영화라 자버리기도 짜증났다. 가끔 그런 영화들의 열받는 점은 혼자서만 신이 난 것 같다는 점이다.

메시지, 음악, 대사, 배경 다 감독 취향으로 잔뜩 떡칠을 해 놓고는 아닌 척한다. 왜 관객인 나한테 왜 이런 것에 공감하지 못하냐고 은은히 을러댄다. 가끔 그 연출이나 배우 선정에서 관객을 기만하는 듯한 느낌도 들어 짜증이 난다.


이런 영화는 내게 컵에 부어놓은 액체 같아서 당시의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따라 꿀잼이 되기도 하고 그냥 돈낭비에 열받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연출해 놓은 그대로 감상을 할 수 있기도 하고, 꼬인 심정에 그 모든 것을 다 세팅하고 만들어냈을 그 설정 자체가 역겹기도 하고. 그러니까 정말 개인적인 감상이 남을 수 있는 영화들이다. 관람 당시의 내 컨디션을 많이 탄다는 뜻이지.


가끔은 그런 게 땡길 때가 있고 그 자체로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쉽사리 남에게 추천할 수는 없다. 스스로에게도 재미를 보장하지는 못 하니까. 많은 인디 영화 또는 독립영화들이 여기에 속한다.



아냐 현실 아니다


배우들의 외모도, 촬영지도 어쩌면 조금은 현실과 더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런 거 있잖아. 아예 똑같으면 모르겠는데 열 개 중에 여덟 개가 비슷하고 두 개가 다를 때 그 차이는 괴리가 되어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거. 이런 영화들에는 그런 작지 않은 이물감이 있다. 그런 게 불편하지 않을 때는 좋고, 아닐 때는 못 견디게 싫다. 싫어도, 사랑하나? 글쎄. 그럴 수 있지. 이런 모순 같은 특성이 내게 그런 작품들이 주는 매력일 수도 있다. 요새 날씨 같다.



에어컨 켠 실내에서 볼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은데,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 그 온습도 차에 아차, 하게 되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짙게 떠올리게 되는 거지, 아. 그 때 그거. 재밌었나? 별로였는데, 다시 볼까? 하면서. 여름이 지나 긴긴 겨울이 오면 이때의 미친 햇빛과 열기를 슬쩍 조금은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왜, 진짜 손톱만큼은 그렇다고.


아. 언제 본 거더라. 한국영화 마스터도 여기 속했다.

그건 상업영화지만.




지금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셋.

인생 영화로 다수 언급되거나, 될 예정인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너무 재미가 없거나 짜증만 났던 영화들. 그런데 이 분류에 드는 영화들은 남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씩 추천을 받아 볼만하다. 대표적으로는 라라랜드, 인사이드아웃. 또 뭐가 있지? 많은데.


하여간 이건 영양제 같은 것들이다. 귀찮지만 먹긴 해야 한다. 안 먹어도 큰일은 안 나는데.. 한번씩 대화 등에서 삐끗하게 되는 수가 있다. 알아 둬서 나쁠 게 없는 것들이다. 술한 두 가지의 짬뽕 같은 것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함부로 말을 얹기도 힘들다. 왜냐고? 앞선 두 가지는 애초에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거나, 어차피 누군가의 취향을 강렬하게 저격하는 영화는 아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지. 그들이 떡만두국이라면 이건 ..까눌레 같다고 해야 하나?


근데 정말 대단한 얼굴들이야


누군가의 입맛에나 그저 그럴 수 있는 것과 특정인에게는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게 만드는 대상일 수 있는 것. 비유가 틀려먹었다면 어쩔 수 없만 당장은 그런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입맛의 허들이 낮은 사람이라 그 둘 다 그저 그런 정도로 좋다. 주면 다 먹는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잘 구별도 못 하고 어쨌든 배고프면 다 맛있다. 재미없다더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럴 수 있지. 난 그래도 밥이랑 돈까스랑 위트빅스가 제일 좋은 사람이니까.


사실은 그냥 맨밥에 김치만 있어도 다고.




그래도 애는 착하잖아


넷.

쥬라기 월드는 바로 여기 속한다. 상반기의 미키 17이 생각났다. 어떡하냐, 미키 17. 어쩌다 이렇게 됐지? 감상이 똑같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것들로 이 정도를?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떡해.. 정말. 진짜 개판이다. 공룡 보러 갔는데 그냥 말 안 듣는 인간들 모인 난장판 패키지 여행을 한 기분이다. 주 테마가 열대우림에서의 서바이벌쯤 되는.


영상미, 캐스팅, 음악, 스케일 다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괜히 내가 다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데.. 어디서나 돈을 엄청 쓴 티가 나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구태여 내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어떤 장면애서도 부내가 난다. 깔끔하고, 웅장하고, 크고, 선명하고, 탄탄하고. 근데.. 근데?

근데 재미가 없어.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정말 큰 문제.


물론 재미가 없어도 재미는 있다. 마치 백화점이나 마트를 구경하는 게 좋은 것처럼. 살 생각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그 비싼 것들을 보는 건 재미가 있을 수 있잖아? 그런 거다, 그런데 정말 재미가 없다.



그래 니가 너무 불쌍했다구 ㅠ


이런 식으로 재미없는 영화를 볼 때는 꽤 피곤해지기도 하는데, 나 혼자 구심점을 찾으면서 관람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멋지게 깔려 있는데, 내가 집중할 대상은 없다. 미키17은 그래도 주인공이 착해서 괜찮았다. 조금은. 엾기라도 했다고.


이건 .. 음. 그래, 이것도 그렇긴 한데. 그래요.






다시 봐도 잘생겼다


영화관을 자주 가면 자주 가게 된다. 거기서 영업당한다는 뜻이다. 그 크고 쨍한 화면으로 예고편을 보고 또 보다 보면 어느새 '와 저건 꼭 다시 이 자리에서 봐야만 한다'는 강렬한 생각이 든다. 최근에 영화관을 좀 자주 갔다. 그러니까 이건 근래에 본 영화들 탓이다. 너네 아니었으면 이거 보러 안 왔어.


드래곤 길들이기 보러 가서였나, 아. 7월엔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동기랑 같이 갔다. 그녀의 할인에 힘입어 우리는 평일 저녁 인당 만삼천원의 모험을 끝냈다. 나는 거기 리클라이너와 에어컨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관을 그렇게 다녀놓고 처음으로 비용 생각을 했다. 생각이 드는 걸 어떻게 멈춰. 드는 건데. 엄청 많은 걸 봤는데 뭘 봤는지 기억이 안 나는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방구석에 앉아서는, 음. 이 돈으로 빙수를 사 먹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헤어질 때 동기에게 야 다음엔 빙수 먹자, 했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2시간 10분 동안 그냥 그 스크린에 아무것도 안 나오는 상태로 잠을 잤더라면 그 숙면 값으로 13000원은 괜찮았을까도 생각했다. 그건 내가 정말 피곤해서였나?


하여간 나는 이걸 재밌게 볼 만한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렇게 기대 아닌 기대를 했으 언젠가는 보긴 봤겠지. 영화관을 간다는 건 이제 내게는 그냥 그 경험의 값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재미만을 원한다면 그냥 집에서 본 거 또 보는 게 을지도. 허허.




4DX로 안 봐서 그런가?


절벽, 협곡, 옥수수밭인지 거대한 잔디밭인지 모르겠는 수풀, 반파당하는 헬리콥터, 뭘 입고 있든 엄청난 모든 배우의 육체미와 그을린 피부, 공룡, 또 공룡, 거대한 악어인지 도마뱀인지 모르겠는 아무튼 그 파충류, 파란 바다, 바다, 하늘. 동굴. 거기다 뉴욕. 지구상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온갖 멋진 것들은 다 갖다 썼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재미가 없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말라는 것 좀 하지 말라고


색감이, 뭐지. 탑건-매버릭을 연상시켰다. 스케일 크고 멋진 바다. 아마 유니버설 스튜디오 때깔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해. 왜 그게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햇빛이 내리쬐는 스크린 속 시퍼런 바다 위 일가족을 보는 대신, 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미국 서부 그 놀이공원의 쥬라기 월드 테마파크는 더 확장이 될까, 참 재밌겠군. 하는 딴생각을 열심히 했다.


재미가 없다는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마허샬라 알리가 갑자기 인생에 대해 진지한 코멘트를 하며 먼산, 아니 먼 바다를 바라보는 그 장면에서부터, 정말 안 그러려다가 달콤하게 졸다가 깬 그 후부터 쭉.


공룡들이 끽끽거리거나 으르릉거리거나, 진흙감자가 된 얼굴로 사람들이 구르고, 몸이 공룡 이빨에 와그륵 와그륵 씹히는 와중에도, 조나단 베일리의 너무 잘생긴 얼굴이 계속 나오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재미없다는 건 과연 뭘까. 이건 언제 끝날까. 얼마나 지났을까. 이게 무슨 내용이었지? 아. 세 개 찾아야 하지. 찾아야 하는구나. 그렇구나. 음. 그래.




스틸컷이 제일 재밌는 영화 같기도 하고


신기한 일이다. 공룡이 다시 살아난 세상, 초미남 배우, 초미녀 배우, 누런 필터에 쨍한 색감을 씌워 더운 여름임을 강조한 화면, 대자연을 소재로 사용한 이 영화와, 인종, 노예제, 노래, 재즈, 블루스, 목화밭, 술집, 뱀파이어, 라는 소재를 쓴 다른 영화.


이렇게 대비하면 당연히 전자가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재미라는 표현이 너무 취향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단어라면.. 좀더 확실한 보상을 줄 것 같은 안정적인 소재들은 확실히 후자 아닌가? 머리도 안 아프고.







동기는 '뻔하다'는 평을 남겼다. 제약회사 사장인지 하는 인간이 완전히 반으로 갈라져 마지막 공룡에게 잡아먹히고, 하지말라는 건 또 골라서 하는 그 일가족을 살리려다 죽을 뻔한 마허샬라 알리가 돌아오면서 영화가 끝날 각을 보이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야 여길 나갈 수 있게 되어서.


뻔하다, 뻔하다? 망한 패키지 여행을 한 기분이다. 아니, 병원 같기도 하고? 하나 해결해 놓으면 저쪽에서 문제가 생기고, 저거 해결해 놓으면 이쪽에서 또 문제가 생기고. 하라는 대로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해서 문제가 끊임없이 생기는 세상살이 같던데.




근데? 와중에 리얼리티는 떨어지고 모든 건 내가 다 어디선가 본 방식대로 진행된다. 이래서 재미가 없나. 번잡하고 화려한데 마음이 안 가서, 집중이 안 돼서. 나는 그런 걸 보려고 간 게 아니었는데. 음. 나오라는 공룡은 안 나오고 엄한 사람들이 자꾸 사고를 치고 또 사고를 치고 애는 정말 '애 같은 짓'을 한다. 그러니까, 누가 저런 험한 데 어린애를 데리고 오냐구요. 물론 의도한 게 아니었겠지만. 근데 그것만 그런 게 아니었다.


거기다 그 모든 지겨움과 지루함에 내가 지쳐갈 때쯤 나오는 공룡들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그 리얼리티는 -공룡과 용에 리얼리티가 존재할 수 있다면- 드래곤 길들이기의 걔네들이랑 별 차이가 없었는데. 짜로.

짧게 말하면 꽤나 재미가 없었다. 길게 말해도.. 아, 그게 재미가 없는 것만은 또 아닌데.. 재미가 있다고 하기도 그렇고. 근데 또 볼래? 하면 대답 못 한다. 그럼 이건 어느 쪽이지?




걍 이걸 라이브스트림으로 보고 싶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

사실 그 언제도 존재하지 않았던 날개 달린 파충류를 길들이는 소년 이야기보다는, 박물관에 가면 뼈도 전시된 얘들이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가 더 와닿지 않나?


아니지. 꼭 와닿아야 하는 걸까? 이미 영화는 할 수 있는 걸 다 한 거 아닌가? 경관, 색감, 물, 하늘, 소리. 쓸 수 있는 건 다 쓴 것 같은데. 이만큼 깔아 줬으면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거잖아. 볼거리가 이렇게 많은데. 그런데, 이입도 안 되고 끝까지 영화를 봐야 할 이유도 없다. 나는 못 찾겠더라고.




하지말라는 거 하지 말라고....


미키 17은 그 주인공을 안타까워라도 하면서 볼 수 있었는데 이건 뭐, 그냥 스칼렛 요한슨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음. 딸의 명문대 입학을 축하하려 요트를 타고 대양을 횡단하는 일가족의 이야기에는 아무리 해도 관심이 안 생겼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에게서 혈청을 채취하고 그걸 또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쓰겠다는 그 모습은 너무 과한 것 같아 조금 짜증이 났다. 왜, 내가 너무 꼬였어? 응. 꼬였어. 미국인들 취향인가, 이게?


그게 뭔지는 모르는데, 참. 뭐랄까. 미국 같았다. 이러면 반미주의자 뭐 그런 건가? 아닌데. 나 절대 아니야, 그런 거.

정말 보는 내내 그런 딴생각이나 했다.






아저씨 산다. 안 죽음.


상영이 끝나고 찾아보니 이게 이 시리즈의 7번째 영화라고 하네? 그래. 7번째면 재미가 없을 만도 하다. 작을 봤어도 안 봤어도 똑같을 것 같다. 근데 원래 영화라면 그걸 봐도 재밌어야 하고 아니어도 재밌어야 하는 거잖아.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데 영화가 하나 더 생각났다. 하나였는지 두 개였는지 기억이 안 났는데 찾아보니 두 개가 맞다.



2016년의 신비한 동물사전, 그리고 2017년의 그린델왈드의 범죄. 둘 중 하나는 3D였나 4D로 본 것 같은데, 시작 때 8필쯤의 페가수스가 끄는 마차가 흐린 뉴욕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이 쩔었던 기억만 난다.


늘씬한 마법사들의 롱코트 패션과, 귀여운 척하고 싶어서 넣은 작은 생물, 그리고 배우들의 미모 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그 영화와 비슷하다. 얼마나 내용이 기억이 안 나면 두 개를 합해서 떠올리냐고. 이 영화도 그렇다. 영상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또 비슷한 점? 영화를 봤는데 안 본 느낌이다. 본 건지 안 본 건지 스스로도 헷갈린다니까? 하핫.





어떻게 보니 욕만 잔뜩 한 게 됐는데. 흠. 음.

근데 그러면, 1993년의 그 쥬라기 공원은 얼마나 쩔었다는 거지?그 오리지널 영화가 궁금해졌다. 만약 정녕 이게 궁금하다면, 그냥 그 시간에 에어컨 틀고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다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유는 없다. 그냥.. 시작 부분에 그 공룡덕후 박사가 박물관에서 망한 전시관을 정리하는 장면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그 부분이 제일 좋았다. 그나마 현실적인 부분이라 그랬나? 차라리 거기서 영화 전개를 더 확장했으면 집중이 더 잘 됐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공룡은 이걸 영화관에서 관람할 모든 사람들에게 아예 동떨어진 존재잖아. 뜬금없이 난파당한 미국인 가족 보여주는 것보다 거기서 서사를 이끌어 가는 게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악당 아저씨.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정말 우르르 나갔다. 보통은 쿠키 보려고 좀 앉아들 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애들이 많았다. 생활복에 교복 입은 학생들도 많았다. 어떤 애가, 아 이따위로 만들기도 힘들겠다 어쩌고 했다. 동기와 나는 그쪽을 힐끗 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웃었던 것 같다. 그 웃음으로 우리는 함께 확인했다. 그리고 둘 다 동의했다. 만삼천원 내고 보기에 딱이었고, 그보다 더 냈으면 아까웠을 거라고.


원랜 주말에 나 혼자 보려 했다. 4DX 2만 2천원이었는데 너무 비싼가 싶어 그냥 평일로 미룬 거였다.

나의 선택에 박수를.






양쪽 둘다 죽는다.



+

아주 어린 애들은 좋아할 것 같다. 이러면 걔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인가? 아닌데. 그런 뜻이 아니야.

병동 애기 하나가 떠올랐다. 걔 되게 똑똑한데. 이거 보면 뭐라고 이야기할까. 궁금한데, 알 길이 없겠지? 아쉬운 일이다. 똑똑한 공룡 박사들과 함께라면 그래도 돈이 좀 덜 아까울지도 모른다. 영화보다, 영화를 보고 잔뜩 신나서 아는 걸 떠들어댈 그들을 지켜보는 게 재밌을 테니까.


준수야, 얼른 집에 가자. 너는 보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 프랑스령 공룡땅은.. 노키즈존이긴 한데. 어른만 가기엔 너무 지겨워서 니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근데, 가서 멋대로 떠들진 말고.




피곤하고, 남는 거 없고. 근데 영화를 뭘 남기려고 보나?

그러니까, 누구 잘못이긴. 내 잘못이다. 영화관을 사랑하는, 그게 뭐 얼마나 노잼이고 뭐가 어떻게 별로였던 것이든 간에 앞으로도 영화관에 가서 돈을 쓰고 앉아 있을 내 업보.


재미가 좀 없으면 어때, 재밌었잖아?

재미없는데 재밌었다. 진짜다.


근데 진짜 재미없긴 했다.


하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