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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공백

by 이븐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25 / 1998


1. 16000원 / 집에 갈래.. 언제 끝나..
2. 재관람 의향 : X
3. 추천 : O
4. 아빠랑 볼 걸.
5. 영화관 아니었으면 끝까지 못 봤다.



집에 가고 싶었고 배고팠다.

지금도 배고프다.


괜히 본 건 아닌데, 좀 괜히 봤다. 톰 행크스가 너무 젊어서 당황스러웠다. 맷 데이먼은 나이가 드나 안 드나 잘생겼다.

아빠랑 볼걸. 배우들이 다 아빠 나이였다.



재밌었나? 재밌었다.

이걸 재미라고 해도 되나.

배고프다.







1. 해변


토마토. 그렇게 큰 물이 벌겋게 물든 걸 본 건 토마토축제 때뿐이었다. 바닷가가 다 주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모래사장이었던 것에는 내장이 쏟겨 나오고, 자기 팔인지 다리를 찾아 들고 걸어가는 병사가 있다. 뭐가 더 있었지. 정말 많은 게 있었는데 어차피 담을 수 없으니 안 쓴다.


총탄이 날아드는? 아수라장? 살면서 너무 많이 보고 썼을 표현들의 제자리가 거기 있었다. 그래서 구태여 쓰기도 그렇다. 토마토축제. 그 때도 비가 왔고 뭐.. 비린내가 좀 났다. 개판이었다. 동일한 점은 색깔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아마도 그렇게 변한 물 색을 볼 일은 없어서 생각이 났나 봐.




2. 편지


아드님의 어떤 헌신과 어쩌고.. 말이 너무 길다. 언어 진실을 덮고 때로는 아무 힘도 없는 것 같다. 꽤 자주. 다짐이나 욕망을 말하는 게 어려워지는 이유다. 중요한 건 뭘 어떻게 하느냐인걸. 말이 긴 사람치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 말만큼이나 뭔가를 감추고 있거나 본인이 뭘 말하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거나. 조커가 싫었던 이유기도 하지.


부드럽고 단단한 단어들이 전사를 알리는 종이에 쓰여 있다. 거짓말이다. 그 깨끗하고 얌전한 종이들만큼이나. 아들들은 용맹하지도 의기투합한 채 전장에 서 있지도 않았다. 총알을 장전하기도 전에 그냥 머리에, 다리에, 복부에 총탄을 맞고 불에 활활 타며 죽었다. 죽었다고 해야 하나, 이걸.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다행이다. 애매하게 포탄에 맞고 몸이 찢긴 채 그 더러운 곳에 누워 있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며칠을 썩어 갔을 것이다. 그런 누군가의 최후를 기록한 게 남아 있을까?없겠지. 그 자리에 다른 이가 있었다면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거나 다시 전투에 참여시켰을 테니까.


앞으로도 알 일 없기를 바란다. 전장의, 전쟁 중의 죽음은 사실 그런 건가? 기억되는 것은 너무 적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은 그 현장보다 더 잔인하게 길다.


전보로 가족들에게 전해지는 사실은 짧고 가볍다. 아버지에게 전하려던 편지는 피투성이가 된다. 죽은 그의 편지를 다른 병사는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새 종이에 옮겨 적는다. 편지. 사실은 얘가 범인이었습니다, 이제야 알겠죠? 하는 얕은 수를 마지막에야 공개하는 싸구려 이야기처럼, 죽은 후에 전달되는 편지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미 죽었는걸.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하든 이미 죽었는걸. 이미 너무 비극이라 눈물이 나지 않는다. 사실 삶은 그런 거 아닐까. 눈물도, 서사도, 사연도 없는 것. 말이 길수록 볼품 없어지는 것.




3. 이름과 명령


라이언은, 나를 데리러 오는 길에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 이름을 두 명 댄다. 그게 왜 궁금하지? 나였으면 개머리판으로 한 대 쳤다. 알면, 니가 뭘 어쩌게.


많은 이들의 이름이 나오지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그 대위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라이언의 이름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그것도 흔해빠진 제임스 라이언. 너무 흔해 꼭 중간 이름을 대야 하는 구성.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몇 명의 희생이 필요하냐고?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논리다. 라이언 일병이 아니고, 그냥 라이언 부인 구하기가 맞다. 홀로 남게 될, 아들을 모조리 전장에 보낸 그 엄마를 위한 마지막 품위 아닌 품위.


전쟁터에 선 이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고려할 사정, 이유 같은 게 없어진 방패이며 움직이는 총기다. 그것도 운이 좋다면 그런 거겠지. 가치와 명분은 진창과 다 무너져 활활 타는 폐허와 무섭게 뻥 뚫린 들꽃 핀 잔디밭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던 이들이 모두 병기가 되어 버린 탓이다. 인간만이 서사를 가지고 핑계를 대며 활동하던 이곳에서 모두, 본연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명령 아래 총을 든 동물들로.


명령이 나빴나? 총이 나쁜가? 모르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탓에 판단도 의미가 없다. 그 잣대조차 다 사라져 버려서.




4. 교회와 양초


무너지지 않은 집. 신을 섬기는 곳. 성전. 조용히 양초를 켠 채 사연을 말한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의 것. 어쨌든 일시적인 안전 속에 그들은 그제야 사람이 되었다. 협정, 조약. 그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그조차 무너뜨려 버리면 그만인걸. 어릴 때 하던 지옥탈출을 생각했다. 실눈을 조금만 뜨면 사실 너무 쉬워지는 그 놀이.


학교와 성전과 병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그 합의.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인간적인 연대인가, 믿음인가. 다 아니지. 그들은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다. 편지를 옮겨 쓰고 농담을 나누고, 고향이 뭐냐고 거듭해서 묻는 그 어두운 교회에서 그들은 운이 좋아 그냥 사람일 수 있었다. 바람 한 번이면 다 꺼질 그 양초 불빛이 거기서는 대화 내내 남아 있었다.




5. 에디트 피아프와 신


폐허 위의 축음기로 나오는 프랑스 여가수의 노래. 그 노래의 가사를 해석해서 들으며 적을 기다리는 시간. 여자 가슴 이야기. 못생긴 여자와의 잠자리. 입대 이전의 삶.


장전 한 번에 신을 그렇게나 찾던 명사수가 있던 탑은 포탄에 불타 무너진다. 신이 그를 버린 걸까 생각했다. 버린 적이 있나. 아니면, 애초에 데리고 있던 적이 있던가. 그는 스스로 그때까지 살아남았다. 매번 목걸이의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오차 없이 목표물을 겨눈 건, 그 총구를 본인에게 겨누지 않은 건 결국 스스로였다.


편지, 샹송, 고향에서의 추억, 신의 가호. 무엇이든 붙들지 않은 채로 총성이 멎은 곳에 서 있으면 그걸 스스로에게 갖다대는 일이 가장 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였으면 그랬을 것 같은데. 그들이라고 뭐 다를까. 잡아쥐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신념이든, 야한 농담이든, 분노든, 호기심이든, 신앙이든. 숨을 붙인 채 거기서 언제 터질지 모를 화염과 폭탄 사이로 뛰어야 한다면, 이유와 당위를 갖다대 사정을 가려내는 건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다. 살아남으려면 나를 지켜주는 것이든,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든 죽을 것처럼 쥐고 있어야 하는 거구나. 비난과 판단은 너무 유치한 것일지도 몰랐다.






씨너스를 코엑스에서 봤던 게 어지간히도 좋았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상영작이나 보려고 했다. 거기다 이건 유명한 영화잖아. 한 번은 언젠가 보려고 했는데 그 한 번이 안 생겼다.


막상 보니 이렇게 영화관을 찾지 않았으면 영영 못 봤겠다 싶다. 이걸 방에서 혼자 어떻게 봐. 무서워서 못 보고, 무거워서 못 본다. 같이 볼 수 있는 건 아빠 정도다. 이런 걸 지겨워하거나 너무 무거워하지 않을, 안 피곤한 사람.



영화를 본 게 아닌 것 같다


원래는 아침 7시 걸 보려고 했다. 일어나니 아홉 시 반.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아침에, 내 옆자리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기 때문이다. 예매를 하고 보니 세 시간짜리였다. 세 시간이나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워치를 끈 줄 알았는데 안 껐다. 자꾸 시간을 확인했다. 뭐, 믿거나 말거나 스크린은 겁나 크고 내 워치 화면은 엄청 어두워서 딱히 관크는.. 아니었다, 고 믿는다. 관크지, 그래.

그런데, 30분, 1시간, 1시간 반. 너무 시간이 안 갔다. 집에 가고 싶었다. 영화 속 병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유치하게 집에 가고 싶었다. 정말 언제 끝나나 생각했다.






메가박스 리클라이너 관에는 베개가 있다. 씨너스 때는 걸리적거려서 그걸 옆의 빈 좌석에 치워놓고 봤다. 이번엔 일부러 낀 자리를 예매한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다행이었다. 후반으로 가서, 아빠 말마따나 '도시 전투' 장면에서는 내가 내내 그 쿠션을 눈앞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껴안고 있다가 결국은 그렇게 됐다.


왼쪽에 앉은 여자는 시작도 전에 팝콘을 다 털어먹었고 오른쪽 할아버지는 중간에.. 자는 것 같았다. 잤다. 어떻게 잘 수가 있지. 이미 한 번 보셨나. 하여튼 그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근데 이쪽 장면 화면이 다 .. 예뻤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 가장 사람이 많았다. 나올 때 보니 저녁 7시 건 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화장실에서, 사람들은 드래곤 길들이기 이야기를 했다. 볼 게 많구만. 그게 다 영화였다는 게 다행이었다. 영화긴 하지. 영화관에서 봤으니까. 아빠한테 내내 묻고 싶었다. 어린애처럼. 아빠, 이거 진짜야? 정말? 그런데 아빠도 모르지. 아빠는 군인이긴 했지만 저 현장에 서 있지는 않았으니까. 다행이었다. 뭐든.


아는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2차 세계 대전이나 이 영화에 대해 많이 몰라서 다행이었다. 아는 게 많으면 그걸 가지고 또 똑똑한 척을 하느라 제대로 못 보지 않았을까.

아는 거라곤, 그 스필버그 감독이 찍었고, 엄청나게 유명한 영화고, 맷 데이먼이 나온다는 거. 그리고 배우들이 라이언 병사에게 적개심 비슷한 걸 갖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맷 데이먼은 몇 주간의 훈련인지 트레이닝에서 빼줬다는 것 뿐. 근데 애초에 떤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을 알아야 따라갈 수 있거나, 더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 안 중요했다, 피아식별은.



얘가 라이언? 얘도 라이언.


나였으면 제임스 라이언 일병 데리고 와라, 라는 명령 들었을 때부터, 그 새끼 찾으면 손이라도 한 번 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리는 좀 그렇고, 손은 뭐.. 아무튼. 그런데 앉아있다 보니 그조차도 지쳤다.


그게 누군데요. 그래. 우리는 엄마가 없냐? 여기 엄마 없는 사람? 그 말이 딱이다. 걔는 뭐가 그렇게 다른데요 생각했다. 열이 받았으나 점점 그럴 여력조차 없어졌다. 톰 행크스가 대위로 나왔다. 대위가 하급 장교라는 것만은 안다.


두 가지에 놀랐다. 그의 문학적인 성정과 계급. 그게 낮은 건가? 근데 이렇게 인간 방패가 되어야 할 정도로 낮다고? 언젠가 북한이랑 전쟁이 나느니 마느니 했던 때 (사실 너무 많았네?) 누군가 아는 척을 하며 '아버지 정도면 그런 거 걱정 안 해도 돼. 병사들이나 위험하지'라고 했던 게 은근히 짜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근데, 저 정도 계급이면 저렇게 투입이 돼서 뛰어다녀야 한다고? 아빠는 아니고? 그러나 보다 보니 뭐 준장인지 하는 사람도 그냥 시체가 되어 있었다. 계급. 어쨌든 군인으로서 계급이다 이거지.



사연이 많다. 각자 전장으로 들어오기 전의 사연도, 와서 생긴 사연도, 서사도. 길게 언급되지 않는다. 되긴 되는데.. 말이 길지 않다. 길게 말하지 않아 더 무거웠다. 그런데 그런 게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어머니가 어떻고 형제 몇 명이 어떻고.. 그런데 어쩌라고. 탄약이 고 저 쪽으로 한 발 더 간 쟤는 총에 맞았는지 폭탄을 밟았는지 아무튼 무사하지 못했는데. 곧 나도 그럴 텐데. 토막난 개인사가, 어떤 추상적인 말도 미사여구도 없는 평범한 일화들이 가만히 앉았다. 잠깐의 그 불안한 고요 속에.




울지 마 눈물 아까워


어떻게 형들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지. 너무 뜬금없는 고백이며 안 믿기는 표현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라이언에게 대위는 문맥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했던 일화를, 맥락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전쟁터에서 그들은 맥락과 사연을 접어둔 고깃덩이였다. 라이언은, 형들과의 이야기를 떠올린 후에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해냈을까. 추억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러워진 거기 서서.




언제 죽나 참 조마조마했다


시끄럽고, 무너지고, 코너를 돌면, 또는 돌지 않아도 뒤에서 누가 나를 쏠지 모르고, 내가 내딛는 다음 발걸음에서 지뢰가 터질지 모르고, 총알 수백 개를 가진 내 앞으로 장갑차가 오는 그 현장. 어떤 문장과 단어도 위로나 회복력을 갖지 못하는 그 장면들을 보며 나는 왜 문학 같은 것이 저기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꼈을까.






그게 사실 뭔지도 모르는데. 문학적인 거, 서정적인 거. 그게 뭐냐고 물으면 대답할 줄 모르는데. 진짜 모르는데.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문학적인 느낌인 건가, 아련한 눈으로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그게 문학적인 게 되나.


아닌데. 톰 행크스는 정말 냉철하게 병사들을 지휘하고 판단하며 뛰어다니며 총을 쐈는데. 영어 교사였다는 게 딱히 티나는 장면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는데. 온통 혼란뿐인 이런 걸 보면서 왜 그걸 느꼈을까.



이제 보니 다 배우들이라 잘생겼다


재밌는 일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죽고, 죽고, 또 죽는데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두 번 눈물이 고였는데 흐르지는 않았다. 한 번은 그 라이언 형제의 엄마가 빨간 옷을 입고 문간에서 주저앉는 그 뒷모습을 비춰 주는 장면, 두 번째는 업헴인가 하는 그 독일어 하는 통역병이 닥치라고 말하며 이전에 살려 주었던 독일인을 쏘는 장면. 왜 거기서 울음이 날 뻔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솔직히 그 사람 좀 짜증났는데.


그런데 정말로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정말로 누군가를 못 쏠 수도 있고 그 현장을 뚫고 달리지 못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냥 나는 바로 나부터 쐈을 것이다. 그것도 못 하겠다면 동료를 조르고 상관을 졸랐겠지. 나 좀 쏴 달라고, 제발.



어떻게 살았을까, 그 이후에.


정말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건데 그만큼 무서운 게 어디 있어. 거기 있었다. 그러니까 난 그냥 자살했을 거야.

앞열의 여자 둘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니 제대로 울고 있었다. 그들은 왜 울었을까.






아빠는 퇴역군인이다. 원랜 본가에 가려 했었다.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안 간다고 했다. 혼자 좀 쉬고 싶었다. 똑같았다. 카페에 앉아 있다가 달리기를 했다. 코엑스 생각이 났다. 일병 구하고 올게, 라고 단톡에 말했다. 아빠가 감동적인 영화라고 했다.


감동? 감동은 씨, 그냥 도중에 나오고 싶었어. 무서워서. 도입부가 무섭긴 하지. 아냐, 아빠. 그게 무서운 게 아니야. 내가 몇 초 후에 어떻게 죽을지, 반만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게 정말 무서운 거야.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은 초반에 끝났다. 나는 그 이후가 더 무서웠다. 사실 그 이후 내내.




아빠가 왜 그리 꼰대가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원래 그런 성향일 수도 있었겠지만. 현충일에, 아빤 뭐하는데 하고 문자를 보냈었다. 현충원 동기들에게 다녀왔다고 했다. 아빠의 사관학교 동기들. 더 묻지는 않았다.


아주 어릴 땐가 그냥 어릴 땐가 그런 얘길 했었다. 아빠가 거기 갔을 수도 있다고? 갈 수 있었지. 너랑 성준이 아주 쪼끄말 때. 헐, 갔으면 어떡해? 앞으로도 가라면 가야 해? 가야지, 그럼. 우린 어떡해, 엄마랑? 잘 살면 되지. 이건 왜 두 개야? 하나는 입에 물고 하나는 가지고 있는 거야. 왜? 죽으면 누가 누군지 알아야 하니까. 아. 진짜로? 그럼, 진짜지.

다행히도, 아빠가 군복을 대충 벗을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그냥 그런 현장에 있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은 건 그냥 운 때문일 테니까. 군인은 그런 거고 전쟁은 그런 거였다. 아마도.



시체 밭이 된다.


아빤 보고 어땠는데, 하니까 아빠는 지휘관의 입장에서 봤다고 했다. 저렇게 부하들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나 어쩌고.. 그렇구나. 나는 그 단톡에도 다행이라는 말을 두 번은 더 했다.

실제로 저런 현장에 서 있던 적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병사나 아랫사람을 설득할 일이 없었어서. 다행, 다행.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말인가. 그런데 다행히도 아빠는 정말로 이제는 전역을 한다. 또다시 다행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아빠는 책을 많이 읽었다. 코스모스, 사피엔스 시리즈, 총균쇠, 인간의 어쩌고.. 하여간 말이 길어질 수 있는 그런 소양을 늘 착실히 쌓았다. 아빠가 읽었던 책에는 밑줄도 많았고 포스트잇도 많았다. 그런 아빠는 결정적인 질문들에는 짧게 답했다. 모순 같았다. 나는 커가며 아빠를 꼰대로 정의내렸다.


그렇다고 아빠를 갑자기 이해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어쩔 수 없잖아. 아빠인걸. 가장 가까웠던 사람인데. 어떻게 다르게 안 보일 수가 있어. 꼰대긴 하지, 꼰대인데. 음.






비가 많이 온다. 그게, 그 스크린 안에서는 영화였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션의 마크 와트니가 한 때 이상형이었다. 마션 개봉한 지도 십 년이 됐다. 그 때 아빠랑 같이 가서 봤었다. 아빠를 떠올려서가 아니고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맷 데이먼이 거기서 아주 멋있고 귀엽게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개봉해 주면 좋겠다. 지금도 이상형 같은데.


배가 고팠는데 다 쓰고 나니 안 고프다.

배가 고픈 임계점을 지나버린 모양이다.

달리기 해야 하는데 비가 꽤 온다.


그래도 다행이지. 비가 올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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