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띵동, 독서모임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by 여름의푸른색


소녀의 미소를 머금은 yj님의 사진♡


평범한 월요일 오후, 휴대폰이 울린다.

어?

카톡을 열어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제주에 계신 작가님이었다. 메시지에는 5년 차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새 멤버가 되어주면 어떻겠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독서모임이라니! 너무 좋잖아!

그렇게 독서모임에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글쓰기 모임에서 가끔 글로 인사를 나누던 작가님이었다. 다른 접점은 없었지만 제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7월의 어느 날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당장 내일 얼굴을 볼 수 있다니 나에게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단아하고 단정한 느낌의 작가님은 누구나 좋아하는 러블리한 작가님이다. 그 단아한 느낌이 글에도 담겨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 작가님의 초대라니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새로운 만남의 설렘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독서모임 첫날의 아침이 밝았다.

제주에 와서 정말 자연인처럼 선크림만 바르고 지냈는데 오늘은 곱게 단장을 하고 립스틱도 발랐다. 처음이니깐 더 예의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를 향하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쳐갔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고 줌으로 얼굴은 봤지만 제주에 오면서 이렇게 직접 만나는 날이 오다니. 그것도 이렇게 빨리 오다니.

사람의 인연이란 소중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작가님과 미리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만난 거 맞나?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편안했다. 자리에 앉아 차례로 인사를 나누고 자기소개를 했다.

가만,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소개한 게 언제였더라?

누구 엄마로 불리는 빈도수가 훨씬 많았던 나는 이름을 말하는 동시에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이름인데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니.

얼마나 나를 지우고 살았었는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나의 목표는 잘 듣고 돌아오기였다. 경청. 이것이 오늘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어제 받은 발제문을 읽어 보고는 왔지만 분위기만 잘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앉아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술술 풀리는 실타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이야기 실을 풀어내고 있었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 속에 오늘이 처음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른의 대화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솔직함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서인지 가깝고 친근한 느낌이 말투와 표정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많이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슷한 성향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고 비슷한 고민들도 함께 나누었다.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멋진 모습에는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사실 엄마의 역할만으로도 버거운 날들이 많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나 되물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좀 쉬어도 되는데, 충분히 나의 역할을 해냈는데 나의 노력은 무형이라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나조차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12시에 시작했던 독서모임은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일어서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차를 타고 차례차례 골목을 벗어났다.



습한 공기가 가득한 제주의 독서모임은 끈적한 날씨보다 끈끈한 사람 냄새가 났다.


오늘, 오프라인 독서모임의 재미에 흠뻑 빠져버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000원짜리 꽃바지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