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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May 28. 2024

우중캠핑

걷는 마음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함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날. 눈앞에 '캠핑'이라는 단어가 둥실 떠올랐다. 아이들은 가본 적도 없던 캠핑을 무척 가고 싶어 했다. 동화책에 등장하던 캠핑 장면이나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로망이 생긴 것 같았다. 내게 캠핑은 고등학교 때 단체로 떠났던 야영 경험이 전부이다. 낯선 숲 속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나서는 아침 식단으로 스팸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던. 지금의 내겐 낭만보다는 조금 싱거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캠핑은 어떨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 떠올렸을 때, 애틋한 장면으로 남을만한 추억 하나쯤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이 내 안에서 산들바람처럼  일었고 어딘지 모를, 아름답고 낯선 곳에서 나는 이미 캠핑을 하고 있었다.



예약한 장소는 강원도 춘천, 강가에 위치한 캠핑장이었다. 제대로 된 캠핑 장비 하나 없는 우리는 텐트와 이불, 식기류까지 세팅되어 있는 곳에 예약을 했다. 캠핑 맛보기라 해야 할까. 캠핑 분위기를 한 번 경험해보고 난 후 장비를 사도 늦지 않으니. 달리는 차 안에서 둘째 아이는 데시벨이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는 이 순간을 삼 년 동안 기다려왔어!"



아이가 말한 '이 순간'이란,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가는 일이었다. 아뿔싸.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잊고 있던 약속이 다시 생각났다. 삼 년 전, 중고 SUV로 차를 바꾸고서는 모두 들뜬 마음에 이제 차박도, 캠핑도 하러 다니자고 함께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 사이 정확히 삼 년이 지났고,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았으며, 아이는 무서우리만큼 그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캠핑장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날씨 어플에도 1박 2일간은 내내 '비' 표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 주 전부터 자기만의 배낭을 싸놓고 기다린 아이 때문에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었다. 텐트가 떠내려갈 정도는 아니겠지. 굵어지는 빗줄기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니. 어쩌면 아이들보다 내가 더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주변이 어둑해질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텐트와 나무 주변에 걸린 전구알들은 저마다 노랗고 푸른빛을 내고. 가족과 친구 단위로 이미 자리를 잡고서 능숙하게 캠핑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우리도 한껏 분위기를 내보았다. 바베큐 후, 남편은 남은 숯불 위로 장작을 쌓아 올리며 불을 피웠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우리는 포일에 싼 감자와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렸다. 빗 속에서 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질까 싶었는데. 꽤 넓고 튼튼했던 타프 덕분에 모닥불과 빗방울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다. 규격화된 도시의 집 안에서는 보고 들을 수 없었던 풍경과 소리들이 우리를 포근히 감쌌다.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자연의 품 안에 온전히 머무는 기쁨이 차올랐다. 이곳에서 오직 하룻밤만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서운할 만큼.



하지만 텐트 안에서의 하룻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잠자리가 바뀐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매너 타임이 있는 캠핑장은 밤이 깊어지니 작은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바로 잠들긴 아쉬웠기에 우리는 챙겨 온 노트북의 볼륨을 낮추고 해리포터 영화 한 편을 보다가 각자 자유롭게 잠을 청했다. 아이들이 가운데 눕고 남편은 왼쪽, 나는 오른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큰 아이가 먼저 잠들고 작은 아이와 남편까지 잠든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나는 자정을 지나 새벽 1시, 2시가 넘어가도록 잠들지 못했다. 저녁 내내 낭만적으로 느껴지던 비는 점점 거세지며 텐트를 뚫고 들어올 듯했다. 귀청을 때리는 빗소리에 슬쩍 잠이 들었다가도 금방 깨기를 반복했다. 빗물이 고였는지 묵직하게 쳐진 텐트 한쪽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아침이 멀게만 느껴졌다. 밤의 어둠이란 시시각각 변하며 짙었다 옅어지곤 하는데. 텐트 안의 어둠은 순도 백퍼센트라고 해야 할까. 창문이 없으니 희미한 빛 한 줄기도 들어올 틈이 없었다. 순간 답답함과 공포심이 엄습했다.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어 텐트 문을 열고 밖으로 달려 나오다시피 했다.



바깥 역시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텐트 안보다는 한결 나았다. 사방이 탁 트인 개방감에 절로 숨이 쉬어졌다.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멀리 강가 너머로 작은 불빛이 아롱거렸다. 몸서리쳐질 만큼 짙은 어둠이 천천히 묽어지며 마음도 평온해졌다. 그때서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었다. 개굴개굴, 솟쩍솟쩍...개굴개굴, 솟쩍솟쩍... 강 쪽에서는 개구리가, 캠핑장 근처 산속에서는 소쩍새 우는 소리가 났다. 새벽 세 시. 잠들지 못하고 혼자 걷던 내게 개구리와 소쩍새는 서로 번갈아가며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윽고 사방에선 곤히 잠든 이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고. 피식하고는 그만 웃음이 났다.



내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었나. 나 자신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후 캠핑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밖에 비가 오든 창문 없는 텐트이든 아랑곳 않고 무던하게 잠만 잘 자는 가족들이 부러웠다. 주말 내내 여러 일정들을 소화했으니 기절한 듯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나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또 캠핑을 갈 거냐고 묻는다면 "그럼요."라고 답할 것이다. 짧은 맛보기에 불과했지만 캠핑의 경험은 분명 특별한 순간들을 연출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날씨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음악이 있었다. 낭만과 기쁨뿐만 아니라 공포와 스릴까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이번 우중 캠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다채롭고도 유일한 음악은 어떤 장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일상을 떠나 산이나 바다, 숲 같은 자연 안에 머무는 일은 나를 만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생활 안에 머물 때보다는 한결 너그럽고 관대해진 마음으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캠핑을 온다면 그때는 쉽게 잠들 수 있을까. 나는 지금과는 조금 더 달라진 모습일까. 궁금하니 또 떠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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