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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Oct 08. 2024

세비야 대성당에서

두 죽음을 기리는 이율배반적 태도

세비야 대성당은 통째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건물의 얼굴을 의미하는 '파사드'는 정문, 옆문, 후문 등의 출입문을 일컫는다. 르네상스와 고딕, 로코코 양식이 잘 어우러진 세비야 대성당에는 총 15개의 문이 있다고 한다. 그중 서쪽 파사드에 있는 '주문'의 성모마리아가 승천하는 모습과, 테라코타 장식이 남아있는 북쪽 파사드의 '용서의 문'이 인상 깊었다.


콜럼버스의 관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la Sede)의 단연 으뜸은 콜럼버스의 관이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은 절대 밟지 않겠다'라는 유언대로, 그의 관은 4명의 왕에 의해 지상으로 받들어져 있다.


콜럼버스의 관(콜럼버스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땅속에 묻히지 않고 공중에 높이 올려져 있는 관의 모습이 생소했다. 그것이 미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관이라는 것과, 관을 받들고 있는 네 왕의 청동상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해서 더욱 놀라웠다.


누군가 '큐!' 사인이라도 울려주면 그대로 앞으로 차고 나올 것만 같은 섬세한 조각에 연신 감탄한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다는 앞 쪽의 두 왕은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서있는 반면, 반대했다는 두 왕은 뒤편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


이것을 보려고 세계 각처에서 매일 사람들이 몰려들고, 항상 많은 인파가 관의 주위를 에워싸며 사진을 찍고 다녀간 것을 기념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의 석관

성당 안을 거닐다가 한쪽 어두운 구석에서 테레사 수녀의 작고 초라한 석관을 봤다.

네 명의 왕이 떠받들고 있는 콜럼버스의 청동관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주변은 어두웠고 관을 보고 있는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테레사 수녀의 석관


이것이 평생 약자를 옹호하고 가난한 생명을 돌보느라 목숨을 바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관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테레사 수녀의 정식 관은 인도 캘커타 마더 하우스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일생을 바쳤는데 저렇게 놔둬도 되는 것일까?

혹시 테레사 수녀에게도 어떤 특별한 유언이 있었던 걸까?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고, 유럽과 아시아에 감자를 전파하여 기아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훌륭한 업적이 있다지만, 한편으로 수많은 원주민을 고문하고 학살한 살인범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가져온 금은보화를 세비야 대성당에 쏟아부어 성당 설립에 공헌을 했다는데, 혹시 그래서일까?


그러나 성당이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이익집단이 아닐 텐데 부귀와 권세욕을 펼치며 살았던 콜럼버스의 청동관만큼은 아니어도, 인류박애를 실천한 가난한 성녀를 성당 외진 구석에 초라하게 안치했다는 것이 내 소견으로는 가히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무엇으로 사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추앙을 받는가?

살아서 시끌벅적했던 사람은 사후에도 요란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성당을 나와 알카자르(성)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일찍 잠이 깼다. 세비야를 떠나 카디즈로 가는 날이다.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아침식사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고 구수한 밥냄새가 새어 나온다. 하나 둘 식탁에 모인 여행객들은 모두 한국사람이다. 저마다 워킹 홀리데이, 또는 휴가 중이거나 이직하며 생긴 틈을 이용하여 여행하고 있단다. 어제 한국에서 도착한 사람도 있고, 여행을 끝내며 아쉬움을 안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 나이에 달랑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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