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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Aug 07. 2024

글을 썼을 뿐인데, 연결되었다

사람들과 연결되는 글쓰기에 대해여

퇴사한 후 미뤄두었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년 10월, 퇴사를 했다. 원하지 않았던 퇴사였다.

직장을 다니기 전에도 했었던 프리랜서 강사를 다시 시작했다. 출퇴근하지 않으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더 늦기 전에 미뤄뒀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블로그 글쓰기였다.

2015, 16년부터 연초마다 투 두 리스트에 적어두었으나 실제로는 해보지 못했던 블로그 글쓰기였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참에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쓰는데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다른 분주한 일들을 만들지 않게 된다.

원래 집순이인 데다가 극내향인 나는, 가족 외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1달에 1번 정도 약속이 있을 뿐.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감정 소모도 없었고, 편안하다.

글을 쓰는 것이 최우선으로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니 삶이 단조로워졌다. 글쓰기와 책 읽기, 필사, 운동, 몇 가지 취미생활, 그리고 살림, 홈스쿨링하는 아이들 케어만 해도 하루가 바빴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이유


외롭지 않냐고?

전혀 아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디에서?

온라인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이웃들이 생긴다. 처음에 글을 썼을 때 누가 내 글을 읽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나 둘, 내 글을 읽고 공감 버튼을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나도 이웃의 글에 공감, 지지, 격려하는 댓글을 달아준다. 백지 모니터 화면 위에 글을 썼는데, 사람들과 연결이 된 것이다.

블로그 이웃들과 댓글을 나누면서, 때로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충고보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이의 고심 어린 댓글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각종 온라인 모임에도 가입했다. 극내향인 나는 온라인 모임 가입도 망설였다. 하지만 온라인 모임 속 사람들은 서로가 누구인지 몰라도 되는 관계다. 사람들과 얽히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와도 된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하나씩 가입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단톡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필사, 글쓰기, 문장 수집 관련 단톡방에 가입하니, 신기하게도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적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글을 나누고, 정보를 나눈다. 꾸준한 활동을 칭찬하면서 선물도 쏘고 너도 할 수 있을 거라면서 격려한다.  

그다음은 글쓰기 모임. 공저를 쓰는 모임에서 연결되어 가입했다. 온라인으로 같이 공부하고 글을 쓰고 나눈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점점 더 글쓰기 속으로 깊게 들어가고 있다.

온라인 모임에서 상처받는 경험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다.

몇 백개씩 쌓여있는 톡 때문에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읽고 싶을 때 읽으면 되니 이 또한 괜찮다.   



출처 : Unsplash의 Shane Rounce



글을 썼는데 '연결'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연결'을 전제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공감해 주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니까 말이다. 그것이 한 명일지라도.

게다가 지금은 누구나 편안하게 온라인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숲 속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내 글을 읽을 사람들을 막연하게 떠올리며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정지우)>를 읽으면서 이런 나의 마음과 비슷한 문장들을 만났다.


글쓰기에 사람을 살려내는 성분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성분은 아마도 '연결'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는 나를 그 무언가와 연결해 준다. 특히, 철저히 혼자인 어느 시절에도 글쓰기에는 나를 어느 타인과, 어느 생명 있는 존재와, 어느 생명의 숨결과 연결해 주는 기능이 있었다. 하루 방문객이 한두 명 밖에 되지 않는 블로그든, 아니면 그조차도 없는 나의 일기장이든, 백지에 문자를 새겨나가면 이상하게도 그 무언가와 연결되는 듯한 마음을 얻고 그 마음에 힘입어 살아갈 수 있었다.
(중략)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결코 혼자서는 살 수가 없어서, 결국 어떤 식으로든 그 누군가와 닿아야만 하는데, 글쓰기란 바로 이런 점에서 생명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근래에는 글쓰기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일이 되면서, 실제로도 즉각 타인과 닿게 하는 방식이 매우 보편적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도 글쓰기의 어떤 근본적인 속성 혹인 인간의 속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때 나는 글쓰기의 그런 '닿음'을 부정하고, 그것은 어딘지 불순한 글쓰기이며 진정한 글이나 예술이 아니라고 믿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대로 그것이야말로 본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p225~226,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그러니, 온라인 속에서 마음껏 글을 쓰자.

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단 한 명을 생각하며 정성껏 글을 쓰자.

이렇게 글을 쓰면서 연결되는 삶을 살아보련다.





표지사진 : Unsplash의 Toa Heft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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