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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 Feb 09. 2024

새날의 일기

새날의 일기


새날의 일기


임현숙

 
 

어제는

등 뒤로 저문 것들이 더부룩해  

되새김질하곤 했기에

오늘 만나는 새날 앞에

맑은국 한 사발 정화수처럼 내어놓습니다

 
제야의 종소리 한울림마다 빌고 빌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숱한 바람들은

그 문장조차 희미해지고

빈손엔 미련만이 돌아앉아 있습니다

 
생의 여름은 저물어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가을 빈 벌판에서

허옇게 서리 내린 머리 조아리며

작은 바람 뭉치 하나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새날에는

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텃밭에 미운 가라지가 싹 트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

제야의 종소리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소 짓게 하소서

 
낡은 나무 계단처럼 삐그덕거리는 사연을

제야의 종소리에 둥 두웅 실어 보내며  

첫사랑 같은 새날을

맨발로 마중합니다.

 
-림(20241231)/2024.01.05 밴쿠버 중앙일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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