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모로코를 다녀온지 벌써 약 반 년이 지났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살다보면 어쩌다 작은 것 하나에도 속절없이 지나간 여행을 떠올리게 될 때가 있는데 모로코는 유난히 그런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특히 모로칸 민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여행의 기억들. 돌아와서 한동안은 사막앓이를 했다. 메르주가의 숙소에서 받았던 모래는 여전히 한국에 잘 모셔져 있다.
모로코 여행은 어땠냐 물으면 단박에 좋았다 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추천할 만하냐 물으면 쉽사리 그렇다 하기 어렵다. 여행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변수와 실수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모로코는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 어느 것도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 경우가 없었다. 물론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열악한 환경과 쉽사리 통하지 않는 언어를 고려하면 난이도가 쉬운 여행지는 아니었다. 단 한번도 런던이 청결하고 편리한 도시라 여긴 적이 없는데도 그 짧았던 모로코 여행 막바지에는 런던의 문명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런던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날이 오다니 별일이라고 헛웃음을 짓기도 하고 부르트고 건조해진 피부 때문에 여행 후 몇 주는 세수를 할 때마다 따가워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로코 여행의 진짜 후유증은 또 다른 모로코를 찾아 지도를 보고 있는 시간들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의 대가에다 과한 안전주의자인 내게 모로코 여행은 그 자체로 충동적이고 큰 도전이기도 했다. 꽤 여러 곳을 여행했고 마음을 울리는 곳도 많이 만났지만 아직 메르주가의 붉은 사막만큼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여전히 차가운 모래밭에 앉아 밤하늘 빼곡히 박힌 별을 보던 그 새벽을 생각하면 꿈만 같다. 짧고 강렬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으로 무엇을 잃고 얻었는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몸과 마음이 모두 새로움에 절여지는 경험을 하고 왔다.
최근 마라케시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지구 반대편 불특정 다수에게 일어난 재해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겪었던 그 생동감 넘치던 그 도시에 일어난 일이 되니 와 닿는 게 달라졌다. 사람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