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선명하게 들리는 하이힐 소리.
내 귀에서 들리지 않은지 8년째인가?
오랜 기간 햇빛을 보지 못하고 신발장 한편에 자리 잡은 내 하이힐들.
결혼 전 나와 거의 붙어 지내다시피 했는데…
임신과 동시에 관심을 받지 못했다.
외출하기 위해 신발장을 열어보면 운동화들이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익숙한 듯 운동화 중 하나를 골라 외출한다.
한때 내 신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하이힐들은 구석으로 밀려나있다.
눈에도 잘 띄지 않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까.
일 년에 한 번 신을까 말까 한 하이힐들을 나는 아직 버리지 못했다.
아직 신을 수 있을 정도의 새것이기도 하고, 언젠가 신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아있어서다.
내 젊음을 같이 했기에 섣불리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다.
그래도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그러다 20대 중반 친구가 구두도 좀 신어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불편해 보이는데 왜 저렇게 신고 다닐까?
처음엔 힘들었다. 구두는 적응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발뒤꿈치가 까져서 피가 났다.
나는 아무나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듯 구는 것이 새침데기 같았다.
밴드를 붙이고 스타킹을 신고 꾸준히 일주일은 신어야 그제야 괜찮아졌다.
내 발도 하이힐도 서로 잘 지내보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하이힐을 신고 바라본 세상은 왠지 모르게 달라보였다.
내가 매번 바라보던 시선이 아니라, 구두 굽에 따라 달라지는 위 공기가 신기했다.
똑같은 공기일 수 있는데, 다르게 느끼고 싶었나보다.
하이힐로 인해 키가 자란 만큼 허리도 쭉 펴졌고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고작 몇 센티 차이인데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당시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높지 않았는데, 자존심은 셌던 것 같다.
그 자존심을 하이힐이 조금 더 세워준 것이다.
하이힐을 신으면서 치마도 입게 되었고, 걸음걸이와 행동도 조금은 조신해졌다.
하이힐은 어디에나 잘 어울렸다. 청바지를 입어도 이뻐 보였으니까.
하이힐을 신고 몇 시간을 걸어도 끄떡없었다.
다리에 무리가 갈 법도 한데, 당시 나는 하이힐과 함께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내 몸의 일부라도 되는 양 항상 같이 다녔다.
지금은 운동화, 단화 위주로 신는다.
두 아들과 다니다 보면 그게 편하다.
구두를 잠깐만 신어봐도 다리에 피로가 쉬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조금은 서글퍼진다.
가끔 두 아들이 내 하이힐을 신어본다.
“엄마, 엄마 신발 높다. 신기해.”
이러면서 또각또각 조금 걸어본다.
아, 난 저 구두에서 나는 또각또각 소리도 좋아했구나 깨닫는다.
가끔은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살금살금 다녀야 하기도 했지만,
그 또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았기에…
가끔 무슨 일이 있어서 차려입어야 할 때는 구두를 찾게 된다.
운동화와 단화가 그렇게 많은데 이상하게 그런 자리에는 구두가 어울리는 것 같다.
구두굽만큼 나라는 사람도 조금은 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여전히 하이힐을 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