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관계는 마치 바다와 같다. 잔잔했다가도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너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와의 만남의 기간이 꽤 됐으니까.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해서
나는
너의 취향과 특성에 대해
내 나름대로는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연애는
늘 잔잔한 호수와도 같아서
겉으로 보기엔 제법 평화로웠다.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면
그 빛을 받아 윤슬이 반짝이듯
너와 나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평소보다
더욱
빛을 받는 것처럼 반짝였다.
그래서
그 누구도 명확히 단언할 수 없는 미래에도
나는
너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만했던 걸까.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완벽하게 정해진 건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잠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그냥 그 사실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 들었다.
지금 이대로
딱 좋았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너도 나와 함께 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내 안일함은
어느날
한 순간에
박살이
나
버
렸
다.
나는
너에 대해서
제대로 다 알지 못했고
네게는
아직 내게 다 보여주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우리 사이가
마치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폭풍우에 휩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넌 네 눈을 바라보면서
싱그럽게 웃어주었고
내가 하는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여주었건만.
갑작스레 돌변해버린
너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분노의 폭풍우에 흠뻑 젖어버렸다.
널 진정시킬 방법을 찾느라
아등바등하던 순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넌 나를 배려해서
그간
너의 본성을 숨죽이며
내게 맞춰줬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순간
내 온 몸을
시리도록 차가운 바닷물이
다시금 덮쳤다.
사랑을 한다면
이 정도의 시련쯤은
가뿐히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저 멀리서 밀려드는
격정의 파도를 바라보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과연
너를
감당할 수 있을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무척 친숙했던 너였건만.
오늘은
부쩍
내 곁의 네가
낯설다.
날 바라보는
네 눈동자가
전에는 속이 다 내비치는
투명한 에메랄드빛이었다면
지금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푸르름을 띠고 있다.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는
너의 바닷속
심해 밑바닥에는
과연 어떤 감정이 자리잡고 있을까.
그리고
과연
나는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을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나는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사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