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침잠해 있던 날 세상 가운데로 끄집어내준 너.
연애를 시작한 뒤로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이렇게나 좋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전에는 사람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싫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마치 현란한 색깔과 지독한 냄새로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을 위협하는 동물들처럼
나도
스스로를 내가 만든 벽에 가둔 채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던 것 같다.
나의 비좁고 폐쇄적인 태도때문에
나는 내게 다가왔던 좋은 인연들과 맞닿을 기회가 별로 없었고
홀로 서서히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해들어갔다.
원체도 사교성이나 사회적 스킬이 없었던 데다,
하는 일 자체도 사람을 계속해서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워낙에 인간관계로 인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높아져있는 탓이었다.
나 홀로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채로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을 때
네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아주 깊은 바다 밑일 지라도
그것을 통과하여 밑바닥까지 닿는 빛 한 줄기가 있듯이
내 단조롭고 폐쇄적인 일상에
의도치 않은 균열이 일어나면서
불쑥
네가 끼어들었다.
날 바라보는 너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호기심과 호감이
자꾸만 나를
수면 위로 끄집어올렸다.
나는
싫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무도 자연스레
그가 이끄는 대로
바닷속 위로
위로
위
로
계
속
해
서
올라갔다.
그 동안
내가 좋다며 기꺼이 머물렀던
깊은 심해를 뒤로 한 채
나를 설레게 하는 너의 손을 꼭 붙잡고
날 이끄는 너의 듬직한 등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수면 위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윽고
수면 밖으로 나와
그간 참았던 호흡을
툭
내뱉는 순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저 밑에서
나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구나.
사람과의 관계에
목말라 있었구나.
계속해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채
깊은 바닷속에서
짠내나는 외로움만
벌컥벌컥
들이키던 나는
너 덕분에
그제야
맑고 청량한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따스한 햇살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 수 있었다.
순간
내 폐부에 시원함이
확
밀려들었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제어할 길 없는
짜릿하고도 상쾌한 감각이
내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꽉 막혀있던
답답한 내 가슴이
너로 인해
뻥
뚫렸다.
그리고
휑하게 비어버린
그 구멍을
너는
사랑으로
서서히 메워주었다.
너는
내 상실과 결핍을
채워주는
나만의
너른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