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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희 Feb 23. 2024

#5. [여름] 답답해진 내 속을 뻥 뚫리게 하는 사람

-깊이 침잠해 있던 날 세상 가운데로 끄집어내준 너.

연애를 시작한 뒤로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이렇게나 좋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전에는 사람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싫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마치 현란한 색깔과 지독한 냄새로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을 위협하는 동물들처럼

나도 

스스로를 내가 만든 벽에 가둔 채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던 것 같다.


나의 비좁고 폐쇄적인 태도때문에

나는 내게 다가왔던 좋은 인연들과 맞닿을 기회가 별로 없었고

홀로 서서히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해들어갔다.


원체도 사교성이나 사회적 스킬이 없었던 데다,

하는 일 자체도 사람을 계속해서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워낙에 인간관계로 인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높아져있는 탓이었다.


나 홀로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채로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을 때

네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아주 깊은 바다 밑일 지라도

그것을 통과하여 밑바닥까지 닿는 빛 한 줄기가 있듯이

내 단조롭고 폐쇄적인 일상에

의도치 않은 균열이 일어나면서

불쑥

네가 끼어들었다.


날 바라보는 너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호기심과 호감이

자꾸만 나를 

수면 위로 끄집어올렸다.


나는

싫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무도 자연스레

그가 이끄는 대로

바닷속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 동안 

내가 좋다며 기꺼이 머물렀던

깊은 심해를 뒤로 한 채

나를 설레게 하는 너의 손을 꼭 붙잡고

날 이끄는 너의 듬직한 등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수면 위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이윽고

수면 밖으로 나와

그간 참았던 호흡을 

내뱉는 순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저 밑에서 

나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구나.

사람과의 관계에

목말라 있었구나.


계속해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채

깊은 바닷속에서

짠내나는 외로움만

벌컥벌컥 

들이키던 나는

너 덕분에  

그제야

맑고 청량한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따스한 햇살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 수 있었다.


순간

내 폐부에 시원함이 

밀려들었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제어할 길 없는

짜릿하고도 상쾌한 감각이

내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꽉 막혀있던

답답한 내 가슴이

너로 인해

뚫렸다.


그리고

휑하게 비어버린

그 구멍을

너는

사랑으로

서서히 메워주었다.


너는

상실과 결핍을

채워주는

나만의 

너른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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