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비가 많이 오는 날, 동네의 좋아하는 감자탕 집에 다녀왔다. 작은 가게를 확장하여 인근으로 옮긴 후 처음 방문한 것이다. 원래 식당은 테이블 6개 정도의 작은 곳이어서 요령껏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많이 기다리거나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특히 한겨울에는 김이 가득한 창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사장님은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살피고, 식탁에 부족해 보이는 반찬 접시를 보면 필요한 것을 챙겨주셨고 종종 서비스 깻잎도 수북하게 등장했다. 특히 그 집의 콩나물 무침은 주문과 동시에 무쳐지므로 추가할 때도 새로 만들어주셨다. 언젠가 엿들은 바에 의하면 굵은소금을 볶고 빻아서 쓰신 다고 했던 것 같다. 새로운 공간은 테이블 수가 4배는 되어 보이고 매니저에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새것인 반짝반짝한 매끈함이 낯설고 셀프코너의 추가반찬 통에 담긴 콩나물무침도 그랬지만, 그중 가장 어색한 것은 각자의 업무 분담이 확실해진 가게이니만큼 주방 안에서만 분주하게 일하시는 사장님을 보는 일이었다. 계산하러 나가는 길에 주방에 들러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계산은 이쪽이라며 직원이 나를 카운터로 안내했다. 눈이 마주친 사장님께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시간이어서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감을 어쩌겠는가, 사장님께서 건강상 이유로 가게를 닫지 않으신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잘 살려 옮기고 다듬는 세심한 일은 쉽게 되는 일은 아니고, 새것의 모습을 한 의미 없는 것들이 채워진다면,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게 된다.
오랜 가게가 보이지 않게 만들어온 안정된 운영방법은 공간이 바뀌면서, 다시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거리들, 도구들, 순서들 그리고 사람들, 그 안에서 생기는 많은 사건들이 다시 차곡차곡 정리되면 비로소. 공간의 크기와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편안해진 시스템의 작동, 너와 나의 거리. (이건 사실, 당장 우리가 이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맴도는 우리 집에 대한 생각의 연장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주에는 시내에 또 다른 (리모델링을 마친) 칼국수 집에도 다녀오게 되었다. 칸이 나뉜 방에 올라가 방석을 깔고 먹던 집이었는데, 벽들을 터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다. 무겁고 뜨거운 사기그릇을 쟁반 위에 들고 복도와 방을 오르내리며 옮겨주시는 모습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이긴 해서 무언가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지하로 내려가는 난간의 높이가 낮은 것도 위험해 보이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그것들이 정리되었다. 그런데 벽이 트인 장면은 시선도 그렇고 큰 공간의 걸러지지 않는 소리들이 맛을 어수선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에 대한 집중을 흐트러트린다고나 할까.
이것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두 번의 식사시간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면 적정공간이라는 것을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소리가 많아진다. 쓰다 보니 당연한 것들이긴 하지만, 테이블이 많아지고 사람이 많아지고, 할 일이 많아지고 움직임과 부딪힘이 많아지고, 모든 것이 많아진 상태에서 소리들은 증폭되고 걸러지지 않는다. 한 식당에서의 섞이며 진해지는 음식의 냄새와는 다르게 뒤섞인 소리들은 부서지며 흩어진다.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더 큰 소리를 낸다. 그것의 어수선함이 어떨 때는 분위기가 되고 어떨 때는 빨리 떠나고 싶은 불편함이 되는 그 지점은 어디에 있을까? 그 미묘함은?
옛 기억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작은 것에 관대해지지만, 그것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새것 같은 마음에는 연결의 끈이 없고, 그것은 평가가 더욱 냉정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리를 잡고 이어질지 응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