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어렸을 때 살던 집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대추나무가 있었다. 그 집은 대추나무집으로 불리었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이 한 곳에 쌓여 있었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 해 집고 노는 것이 내 일이었다. 개량 한옥이었던 그 집은 겨울에 웃풍이 심했고, 그래서 방안에 커다란 난로를 따로 놓았는데, 그 위에서 은행을 뒹굴려 먹곤 했다.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은행나무는 내게 추억의 한편으로 친근한 것이고, 그래서 바닥에 뒹굴거리며 펑펑 터지는 열매들의 냄새와 불편에 둔감하였다.
은행 구이 : 팬에 기름을 두르고 은행들을 쏟아낸다. 소금을 뿌린다. 팬을 흔들며 은행들을 둥글린다. 속 껍질이 벗겨지고 안의 연초록 과육이 윤기 있게 투명해지면 불을 끈다. 나무꼬치를 하나 잡고 쿡쿡 은행을 하나씩 꾀어낸다. 그리고 남은 속 껍질을 다 정리한 후 접시에 담는다.
올해 가을이 시작될 때 거리를 걷다 보면 은행나무를 베어내는 곳이 있었다. 열매가 열리는 암 은행나무를 베는 것이라고 한다. 도로 옆 좁은 인도를 지날 때 발 디딜 곳 없이 은행이 떨어져 있는 길을 걷는 것은 곤혹스럽긴 하다. j와 r 은 힘껏 과장해서 요리조리 쇽쇽 피하며 우스꽝스럽게 길을 걷곤 한다. 이 그 이 그 하며 무던히 걷던 내가 퍽 소리를 내며 은행 밟은 것을 들키면 이 그 이 그 한다.
검색으로 찾은 내 사진 폴더의 '가을' 사진
작년인가 재작년 인가 베어진 은행나무 사진이다. 이미 올해가 아니어도 겪은 일이었다. 길가를 따라 심어졌던 은행나무들도 같이 베어졌다. 그다음 여름, 은행나무 그늘이 사라져서 햇빛 뜨거운 날에는 차도 반대편 길을 걷게 되었다. 가로수인 벚나무는 자라는 중이어서 충분한 그늘을 만들지 못했다. 주된 이유는 민원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고, 안내 현수막이 붙여졌었다. 필요한 이유였겠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에 아쉬움이 남은 것은 사실이다.
이곳은 대학에서 약초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특수한 임무를 가진 곳이어서 만들어진, 독특한 풍경이었다. 일정 간격으로 줄지어 늘어진 바닥의 지표들과 적당한 간격을 벌여 자란 나무들, 그 아래 환하게 펼쳐진 노란 은행잎들의 공간은 단순하게 ‘은행나무들’ 만으로 보기에는 아까운, 바라보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벚나무는 쑤욱 자라날 테고 몇 해가 지나면 다시 그 길에 풍성한 그늘을 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길을 가꿔 나갈 것이고, 은행길은 이 사진처럼 가끔 떠올리는 추억의 한 부분이 되고 익숙해진 일상은 생활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길에 익숙해졌고 나무 대신 이것저것 농작물이 심어진 모습에 거부감이 무뎌지던 최근, 이 곳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공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라보던 곳이 아니라 들어가 볼 수 있는,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쉼의 공간, 특정 기능을 가진 배움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공원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보아야겠다.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한다고 해도, 계절들이 바뀌어도, 같은 장소에서 이 사진 이 나에게 주는 따뜻하고 고요한 가을의 기억과 모습을 헤아려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사 올 때의 추억과 사진 한 장 남긴 것을 소중히 하며, 나는 아마도 새로운 시설로 그 공원을 대할 것이다. 공원은 공사 중이다. 남겨진 나무들은 한결같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받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아이들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곳이 되면 좋겠다. 오랜 시간으로 가꿔지길 바라며, 켜켜이 쌓이고 자란 층 들이 다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산책길에 보는 또 다른 풍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요즘, 이 사진을 유심히 보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면적 200㎡ 이상의 대지에 건축하는 건물은 일정 비율 이상으로 조경면적을 확보하도록 되어있다. 지자체에 따라, 규모와 용도에 따라 정해진 비율이 다르지만, 기준 연면적에 대해 대지면적의 5-15%를 조경 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녹지지역에 건축하거나, 공장 등 예외사항에 대한 항목을 제외하고, 조경면적의 최소 비율을 지정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경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잘 관리하며 어우러진 곳도 있고, 방치된 곳도 있다. 법적 조경 면적 말고, 하나의 건물 단위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조경은, 식물은 얼마만큼 인가.
도시에서 변화를 볼 수 있는 것들은 새싹을 내고, 자라고 푸르고 무르익다가 떨어진다. 건물 안의 상황은 조금 또 다르다. 공간 안으로 분명히 더 많은 식물들이 조용하고 푸르게 들어오고 있다. 어떻게든 자연과 가까워지려는 관성이 작용하는 것일까. 자연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실내의 식물들은 한결같다. 오늘따라 늘 푸릇푸릇한 실내의 식물들이 조금은 연약하게 생각된다.
동네 단독주택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집 밖으로 나와 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담으신다. 나무에 주렁주렁 감이 달려 있고 담장 밖으로 잎 떨어진 나무 가지들이 삐쭉거린다. 내 부엌의 작은 창으로 앞 건물 벽돌벽과 담장 좁은 사이에 단풍나무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서서 바라보는 위치에 아름답게 색을 뽐내며 흔들거리던 단풍나무는 작년에 가지가 모두 베어졌다. 그걸 눈높이에서 온전히 즐기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만 아는 우울한 사건의 관찰자가 되었다. 우리 건물과 담장 사이에 떨어지는 낙엽에 대한 민원이었던지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지, 지금은 벽만 남았다. 어릴 적 그 집은 나에게 놀이터이자 지금까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곳이지만, 그 집의 관리본부장에겐 고단한 일상이었다. 드러나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도시 곳곳에 보이는 것들은,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