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 24일) 자기합리화는 또 지게 만든다

마감과 고쳐 쓰기

작가는 왜 항상 마감에 쫓길까? 한때는 그래도 마감 하루 이틀 전에 글을 마쳐 놓고 적어도 2-3시간 전에 끝내놓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부리다가 마감 30분 전에 원고를 보냈었다. 요즘은 그게 잘 안 된다. 무엇보다 책상 앞에 앉아 글에 집중하기까지 발동이 걸리는 데 오래 걸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에스프레소 한 잔 마셔야 정신을 차린다. 108배를 하고 모닝페이지도 써야 한다. 그렇게 두세 시간을 흘려보내야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어쨌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


오늘은 마감 플렉스(https://brunch.co.kr/@bluetwilight/181) 로 호텔이다. 조식 시간이 정해져 있어 눈뜨자마자 세수만 하고 조식을 먹었다. 아점으로 든든히 챙겨먹고 다시 글을 써야 한다. 그런데 또 발동이 바로 안 걸리니 108배를 해야겠다. 보통은 아침에 밥 먹기 전 속이 빈 상태로 108배를 하고 밥을 먹는다. 배가 든든하니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내 사랑 구름 매트도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난 브런치 글 제목이 “자기합리화는 또 지게 만든다”이다. 동시성인가?


아파트는 높은 곳이 싫은데 호텔은 높은 층을 선호한다. 디럭스룸이라 공간도 넓고 뷰도 좋아서 108배 하기 딱 좋다!


커피를 이미 마셨지만 또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베개도 깔고 108배를 한다. 내 방의 거울 대신 창밖 풍경을 보며 108배를 한다. 하늘이 푸르고 구름이 동동 그림 같다. 좋다. 이제 발동이 걸리겠지. 아침 루틴을 시작한 계기가 그랬다. 눈 뜨자마자 바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없으니 루틴을 만들어 자동으로 글쓰기에 돌입하는 시스템을 만들자. 매일 출근해 일하는 사람들은 출근하자마자 해야 할 일이 순차적으로 정해진다. 협업이 우선순위를 정해주기도 한다. 프리랜서 글쟁이는 출근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아침 루틴으로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려면 직장인처럼 하루 8시간은 글을 써야지.”


영화 <올드보이>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시나리오를 쓴 황조윤 작가님의 말이다. 쌤은 나의 시나리오 선생님이기도 한데, 술을 마시다가도 쓰다 만 글의 다음을 쓰고 싶어 일찍 들어가면서 작가가 되어야겠구나 했다고 한다. 시나리오 수업 첫 시간에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말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의 시나리오는 형편이 없었다. 다른 원고를 보여드리니 선생님이 말했다. “너 시나리오 안 쓰겠구나, 이쪽이 더 낫네.” 그래도 언젠가 소설과 시나리오에 도전해 볼 생각은 있다.)


덧붙여서, 요즘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왜 자기 글은 감성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가 하고. 완성된 글을 위해서는 한 문장을 열 번 백 번 들여다보고 고친다. 사실 글 수정은 끝이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조사 “은, 는, 이, 가, 만, 도”에 따라 느낌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고치고 또 고친다. 그래서 글은 완성하는 게 아니라 마감에 맞춰서 멈추는 것이다. 돌아보면 또 고치고 싶은 부분이 보인다. 마감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1년 넘게 브런치를 하면서 돌아보니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가볍게 올렸던 문장 중에 다큐멘터리 방송 원고나 다른 글에 쓴 문장들이 꽤 있다. 그만큼 오래 숙성하고 만지작거리고 다듬고 고쳐서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그 문장들 중에 열에 아홉은 아니 백에 아흔아홉은 버려졌다. 그러므로 “나는 원래 글을 못 써”라는 말은 틀렸다. 안 써서, 고쳐 쓰지 않아서, 노력하지 않아서다.


자기합리화로 후회하고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매트 대신 이불을 깔고 108배를 했듯

오늘 마감까지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의 글을 고쳐 써야지.


108배 시즌 1 23일 차 _ 2020년 2월 4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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