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과 명상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마시멜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미셸 박사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실험을 했다고 한다. 네 살 어린 어린아이에게 마시멜로를 보여주며 지금 먹으면 하나를 주겠다 하고 15분을 기다리면 상으로 두 개를 준다는 제안을 한다. 바로 하나를 먹는 아이보다 기다렸다 두 개를 먹는 아이가 두 배쯤 많았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 18살이 되었을 때, 기다릴 줄 아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알고 사회성이 뛰어난 청소년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가 싫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런 실험을 한다는 것,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올바르게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싫었다. 무엇보다 달기만 한 마시멜로가 뭐라고 그걸 그렇게까지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문화적 차이 때문일 것이다.
먼저 난 그 책을 읽을 때 박범준 장길연 부부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책과 함께 읽었다. 남편은 서울대, 아내는 카이스트 출신인데 도시를 버리고 무주 산골에 가서 사는 부부의 이야기는 인간극장에서 방송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귀농은 아니고 미래보다 현실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도시 생활보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시골에서 번역과 글쓰기 등으로 최소한의 돈벌이만 하면서 산다고 했다. 나는 그 부부를 KBS 아침방송에서 다운시프트족으로 소개했다. 현장에 가지는 못하고 전화 인터뷰만 했는데 여자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들이 무주에서 제주로 이사하고 도서관과 스테이를 운영한다고 했다. 제주에 가서 하루 묵으려 예약했다가 가지 못했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바람도서관과 스테이는 없어진 모양이다. 박범준 씨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대기를 기억의 책으로 펴내는 꿈틀 편집장이 되었구나)
<마시멜로 이야기>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두 책은 반대의 이야기를 했고 난 미래보다 현실의 행복에 손을 들어주었다.
얼마 전 캠핑에 가서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다. 캐나다에서 살다 온 언니가 오래간만의 캠핑이라 슈퍼와 마트를 3-4군데나 돌아다녀 겨우 사 왔다고 했다. 유난히 불멍을 좋아하고 캠핑도 좋아하지만 마시멜로를 구워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뭇가지에 끼워 불에 굽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너무 가까이 대면 불에 타버리고, 너무 멀면 속까지 익힐 수 없다. 불과 적당히 밀당하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마시멜로가 부풀어 오르는데 잘 익으면 나뭇가지에서 쏘옥 빠진다. 마시멜로를 굽는 재미는 불멍 이상의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있었다. 성공과 실패에 따른 희비, 그리고 주위 사람의 칭찬도 재미있지만 완전한 몰입의 순간이 좋다. 내게 명상이란 그렇게 한 순간 하나의 대상에 완전히 몰입해 모든 생각이 멈추는 것이다. 108배도 불멍도 마시멜로도 내게는 생각의 멈춤, 몰입 즉 명상이다.
결국 그 날 마시멜로 두 봉지를 거의 다 구웠다. (다이어트 때문에 난 굽기만 하고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다 먹였다!) 미국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캠핑을 하면서 마시멜로의 재미에 빠져든다고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달고나에 빠져들 듯이. 달콤한 설탕 덩어리가 맛있는 것보다 그것을 만드는 재미가 더 매력적인 것이다.
마시멜로의 매력에 빠져들었지만 지금도 내게는 마시멜로 실험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현실의 행복을 추구한다. 내가 그래서 스트레스 관리를 잘 못하는 것일까?
어제 갑자기 거푸집이 내려가 컴퓨터가 다운되고 원고를 날렸다. 두 번이나 연속되는 바람에 원고는 ASV 파일까지 날렸다. 하나의 원고 마감이 늦어지면서 두 번째 원고는 마감을 늦췄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바로 새로 시작할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 사전 미팅을 위해 양주까지 갔는데 한 시간을 기다렸다. 인터뷰도 제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고, 그는 내게 십 년 안에 시집을 못 간다고 했다. 하하.
저녁도 못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갑자기 마시멜로 생각이 났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캠핑을 가서 불멍 하며 마시멜로 굽고 싶다! 제주도에 가서 귤도 따야 하는데... 갑자기 새로운 일들을 잔뜩 시작해 하루 두세 개의 스케줄과 마감이 계속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가는 오늘의 행복은커녕 이 좋은 가을날의 행복도 못 누리겠다.
집에 와서 일부러 저녁을 만들어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 스트레스받을 때는 요리가 최고다. 그러나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컨디션도 안 좋다. 어제 못 쓴 원고를 쓰려고 새벽에 일어났는데 멍 때리다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108배를 했다. 유튜브 촬영 덕분에 요즘 호흡에 신경을 쓰고 있다. 절을 10번도 하지 않았는데 눈이 시원해진다. 그래 108배는 이 맛에 하는 거지. 바빠서 40분 혹은 한 시간씩 걸려 108배를 다 하지 못하더라도, 브런치를 쓰지 못하더라도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 108배를 해야겠다. 그나저나 이 기록을 남기려고 아직도 일을 못하고 있네. 이제 일하자!
108배 시즌1 57일 차 _ 2020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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