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먹는다.
아침 루틴을 시작한 것이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무작정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었다. 지금은 눈뜨자마자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며 기도를 하고 잠시 멍 때리다가 108배를 하고 모닝페이지를 쓴 다음, 브런치에 108배 일기를 쓴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려면 2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너무 애쓰지 말자, 생각에 아침 루틴만 해도 하루를 잘 산 것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아침 루틴에 애를 너무 쓰고 있다. 아침 루틴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또 그걸 하지 않으면 하루의 시작이 되지 않으니 루틴을 위한 하루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홍상수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되었다.
오늘은 아침 7시 넘어 자서 12시쯤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108배를 하고 샤워를 했다. 오늘은 후배가 브런치를 먹고 진관사 산책을 하자기에 11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어제저녁 일찍 잠이 들지 못해 고생했는데, 새벽에 후배가 아프다며 약속을 취소했다. 아침 약속을 위해 자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일어나 자료 정리를 마쳤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약 400여 명의 별자리를 한 파일로 모았고, 이제 그것을 다시 확인하며 책에 쓸 예를 정리할 생각이다.
미리 정해진 약속이 취소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해왔다. 약속이 취소되면 글 쓸 시간이 생겼다 생각하자고. 그런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하다 토요일> 모임이 있는 날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줌으로 한다. 책도 읽었고 줌인데 참여를 안하기도 그렇고 결국 참여했다.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것은 재미있다. 오늘도 좋았다. 그런데 눈을 뜬 지 5시간이 넘은 지금까지 아침 루틴을 끝내지 못해 마음이 불편하다.
오늘 함께 읽은 책은 한정현의 <줄리아나 도쿄>다. 처음 읽었을 때는 선택과 운명, 책임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나는 생이란 내가 선택해 사는 것이라 생각해 선택도 운명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오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소설은 오해와 이해, 그리고 환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독증에 걸린 듯 이해하기 힘들었던 소설의 행간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에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오해에 대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읽을 때 데이트 폭력과 육체노동자의 클래식 취향에 대해 껄끄러웠다. 왜 사랑한다면서 폭력을 행사하는가도 이해가 되지 않고 폭력을 참으면서 사랑이란 것이 가능한가도 이해가 안 됐다. 사랑을 선택했다고 데이트 폭력을 참는 것이 그 사랑을 책임지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한 사람을 내게 온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가 내게 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내 이해의 바탕은 나에게서 출발하니 상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내가 나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하기 이전에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그래도 인간이 인간과 서로 어우러져 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책임지게 하는 데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죽지 않고 버티기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삶에, 일에 너무 애쓰지 않도록 도와주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루틴에 너무 애를 쓰고 있고, 그것에 에너지를 소진해 하루를 사는 게 버겁다. 그럼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틀린 게 아닐까?
오늘로 108배 시즌2 102일이다. 108일까지만 쓰고 그만 써야겠다. 처음엔 브런치를 쓰기 위해서 108배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브런치를 쓰지 않아도 108배가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으니 토사구팽(兎死狗烹)하자.
나는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 아직 모른다. 리차드 파워스의 말처럼 과거는 미래에 더 명확해진다. 하지만 습관을 고치려는 생각만으로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한다. 삶의 선택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고 그것에 상처받고 치유하고 변화하는 것 역시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지금부터 해보자, 또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시작해 보고 시간을 보내봐야 안다.
108배 시즌1 102일 차 _ 2020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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