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V. 수중사진과 테크니컬 다이빙 • 삼광색과 수중오로라
The ocean never speaks, yet it never fails to carry on a silent conversation with those who dare to listen. It stands the test of time, offering moments of awe and lessons that sink in deep, shaping those who embrace its quiet wisdom.
수중사진은 분명히 '찰나(刹那)'의 싸움이지만 테크니컬 다이빙은 그 순간(瞬間)을 조금이라도 더 '지속(持續)'시켜준다. 바다라는 시공간의 크기로만 보면 다이버를 포함한 모든 수중생물이 '티끌'이고 '한때'에 불과하다. 다만 순간이라도, 그 잠깐, 잠깐이 이어져 한 순간(一瞬)이라도 감동이 된다면, 찰나는 기억과 추억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순간에서 영원(永遠)으로 가는 길이다.
순간에서 영원으로-찰나의 연속성
수면 아래에서 잠시라도 시공간을 멈추고 싶어 테크니컬 다이빙을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들이 연속된 것처럼 느껴지는 그곳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가 한없이 깊고 넓게 다가온다. 물속 한순간의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장비와 기기들 도움으로 넘나드는 경험을 짧게나마 즐겼다. 동굴 속 어둠과 난파선 잔해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마치 바다가 시간을 품은 채 변하지 않는 거대한 서사시임을 깨닫는다. 모두 작은 티끌 같은 존재들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이 바다의 일부로서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느닷없이 장엄해진다. 그 순간, 스스로 무수한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 있는 한 조각임을 또 느낀다.
테크니컬 다이빙 교육을 받던 어느 날, '우리가 숨을 몰아쉬는 이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결국 긴 여정(旅程)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한 번의 다이빙 경험은 그때 끝나지만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매번 장비를 점검하고, 깊은 수심 속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의 모습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더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닮아 있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결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그 근원에는 변하지 않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 잠시 재호흡기의 숨을 멈추고 그 공간을 뷰파인더를 통해 살짝 들여다보면서, 그 모든 순간들의 다양성과 연속성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의미로 다가온다. 다이빙 중에 만난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가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갈 때, 그 눈빛 속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비밀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순간, 그 물고기의 눈동자에 담긴 무수한 시간을 곱씹어본다.
바다는 '말'이 없다! 다만 '대화'할 뿐이다
테크니컬 다이빙이 주는 ‘지속성’은 단순히 한 순간을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바다와 하나가 되는 깊은 연결감을 선사한다. 다이빙을 통해 경험하는 그 ‘연장된 순간’은, 삶의 짧은 찰나를 넘어, 영원처럼 느껴지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가끔 다이빙 후에 마주한 고요한 해수면을 바라보며, 그 물결 위에 스며드는 햇살과 함께 내 안의 감정들이 서서히 정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바다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과 감정 또한 시간이 흘러도 그 본질은 변치 않는다. 테크니컬 다이빙을 통해 느낀 ‘순간의 지속성*’은, 삶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그 기억들은 언제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아, 수많은 찰나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바다는 늘 말이 없지만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감동과 교훈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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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般若心経)의 핵심 문구로, '형상(색, 色)'이 본질적으로 '공(空)'임과 동시에, '공'이 다시 '형상'으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즉 모든 물질적 형상은 본질적으로 공(空)하며, 이 공이 바로 우리가 인식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형상과 공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며, 만물이 무상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 Oxymoron(역설어)은 의미가 서로 모순되거나 반대되는 단어를 결합하여 독특한 의미를 만드는 표현 기법이다. 문학, 시, 연설 등에서 강한 인상을 주거나 아이러니를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bittersweet(씁쓸하면서도 달콤한), deafening silence(귀를 멍하게 하는 침묵), act naturally(자연스럽게 행동하다) 같은 표현 등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