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에서 이해할 수 없던 활동은 일회성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은행원으로서 요구하는 자질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채용 공고에는 분명 ‘미래 금융을 선도하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인재’라고 은행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쓰여있었지만, 은행에서 말하는 ‘창의’와 ‘열정’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의미와 달랐다.
허울뿐인 인재상은 접어두고 은행원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꼼꼼하고 정확한 계산
두 번째. 친절한 고객 응대
십원 하나 틀리지 않으려면 기계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어려서부터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잃어버려야지 마음먹고 잃어버린 적은 없다. 잘 챙기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깜빡 잊고 놓고 왔고,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찾지 못했다. 때로는 잃어버린 한참 후에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은행원은 금고에서 시재통(개인용 소형 금고)을 꺼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서랍에 권종별로 돈을 분류해서 넣고, 하루 동안 고객을 응대하며 돈을 넣고 뺀다. 마감할 때, 전산 상의 시재와 서랍 안의 금액이 같으면 다시 시재통에 돈을 넣고 결재를 받은 후 금고에 넣는다.
신입 시절 나의 시재는 자주 틀렸고, 그럴 때면 나로 인해 직원들의 퇴근이 늦어졌다. 하루 동안 돈이 들고나간 기록을 검토하고 CCTV를 확인해서 더 준 고객에게 전화해 다시 갖다 달라고 사정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시재를 맞출 때마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마감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시재가 틀릴 때에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나로 인해 퇴근을 늦추고 어디 갔을지 모르는 돈을 함께 찾는 직원들에게는 몹시 미안했고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은행원이라면 십원 한 전 틀리면 안 되지.”
‘십원 하나 안 틀리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 매정하잖아요.’
어떤 면에서든 하나 둘 틀리는 맛이 있어야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십원 한 전 틀리면 안 된다’는 말은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직원에게 정확하기를 강요하기보다는 틀리지 않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 은행에서 업무를 보면 창구 직원 앞 기계에서 거스름돈이 나왔다. 창구에서 공과금 등을 계산하고 지폐를 지불하면 직원은 그것을 컴퓨터에 기록했고, 고객으로 향한 구멍에서 거스름돈이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그런 시스템이 IT강국 21세기 대한민국 은행에는 왜 없는 것일까.
하루 온종일 돈이 들고나간 것을 노트에 시간별로 기록했다. 오만 원권을 오천 원권으로 잘못 보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손으로 세어보고 계수기로 한 번 더 세었다. 각고의 노력에도 틀리는 시재 앞에서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보 같은 나와 바보 같은 시스템을 번갈아 탓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계수기에 기록이 남고 CCTV의 화질도 보다 선명해져서 시재를 틀리는 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간과 쓸개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않나요?
은행원은 반드시 친절해야 한다. 친절은 상대에게 정겹게 대하는 것으로 갖추면 좋을 태도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상황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 줄이나 알아!!”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요.’
웃으며, “고객님 죄송해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사은품이 이게 뭐예요! 더 좋은 걸로 주세요!”
‘돈 주고 사시지요.’
웃으며, “고객님 죄송해요, 이번에 사은품이 이게 나왔네요. 기록해 놓았다가 다음번에 좋은 거 나오면 꼭 드릴게요.”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거야!”
‘저는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습니다.’
웃으며, “고객님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제가 빨리 해드릴게요.”
이런 사례들은 차고 넘쳐서 몇 차례 겪다 보면, ‘죄송하진 않지만’ “죄송합니다.”, ‘감사하진 않지만’ “감사합니다.”가 자동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악성 고객의 지속적인 괴롭힘은 친절한 은행원을 모멸감에 잠식시키고 인간성을 상실한 사이보그로 만든다.
“간이랑 쓸개는 집에다 두고 나와.”
어디까지 친절해야 하는지 묻는 신입에게 상사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런데 간이랑 쓸개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않나. 은행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적 존엄조차 내려놓아야 하는 일인 걸까.
전통적인 시중은행은 역사만큼 복잡하고 귀찮은 업무가 많다. 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업무 중 ‘법원 문서, 채권추심’ 업무가 가장 싫었다. 기피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은행에 어느 정도 적응한 계장, 대리에게 주어지는 업무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돈이 나가지 않도록 계좌를 지급정지시키거나, 정지된 계좌의 잔액을 추심해서 선수위 채권자에게 지급하는 일이다. 법적 분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업무 순서에 따라 실수 없이 처리해야 한다. 특히 추심의 경우는 고객의 돈을 계좌에서 빼야 하는 것이기에 본부 부서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객에게 안내하고 녹취·기록해야 한다.
법원에서 어떤 고객의 계좌에 대하여 추심 명령이 떨어졌다. 일주일간 고객에게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 고객은 이미 법원에서 추심 명령문을 받아본 상태였다. 담당 부서에 문의하고 기록하고 팀장에게 결재를 받아 추심 처리했다.
며칠 후 말끔하게 차려입은 30대 남성이 나를 찾아왔다. (현실 세계에서 빌런은 선한 이웃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는 내가 추심한 것으로 인해 통신료가 빠져나가지 않아 연체되었다고 했다. 돈이 빠져나가서 콜센터에 민원을 넣었더니 이 지점의 추심 담당자가 처리했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은행은 악성 민원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지 않기에, 직원들은 서로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다.) 죄송하지만 이미 연락을 드렸고, 계좌가 지급 정지된지는 오래인 데다 추심 명령문도 받으셨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외국에 나가 있어 모르고 있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하고 법원으로부터 추심명령을 받아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잠깐 외국에 나가 있어 모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끝없는 전화와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아가씨, 아가씨 말고 상사 바꿔!" 뻔뻔하고 무례한 태도. “금감원에 신고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협박과 욕설. 나는 인간 말종에게 제대로 걸렸다.
“금감원에 신고하라고 해! 법적 절차에 따라 해야 하는 일 했는데 어디서 행패야! 업무방해로 경찰에 신고해 버릴 테니까!”
팀장님은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2층 지점장실을 향해 올라갔다. 몇 분 후 계단을 내려오는 팀장님의 얼굴은 올라갈 때와 같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참 욕설을 퍼붓던 그는 “금감원 민원 들어가면 지점 KPI가 깎이니까 덮으라고 했다.”며 "반달씨와 내가 반반씩 해서 물어주자."라고 했다.
상황과 까닭과 관계없이 금감원 민원이 접수되면 해당 지점 KPI(핵심성과지표) 점수가 깎인다. KPI 점수에 따라 지점 성과급이 달라진다. 은행은 악성 민원인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금전적 요구에 내몰린 직원을 보호하기보다 총알받이가 되어 조직을 보호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날 빌런은 말끔한 차림으로 다시 지점을 찾았다. 팀장님과 나는 그가 빌렸으며 당연히 그가 갚았어야 할 추심 금액뿐 아니라 통신요금과 연체료까지 물어주었다. 팀장님은 그날 간과 쓸개를 꺼내 집에 고이 두고 출근하셨다. 전화로 협박하던 악성 민원인에게 맞서 화를 내던 팀장님은 환한 얼굴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를 달랬다.
“사장님, 불편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자 이렇게 하면 해결이 되겠죠."
"안녕히 가십시오.”
인간 말종을 문 앞까지 배웅하던 팀장님의 머리 뒤로 후광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득도한 성인 내지는 감정 변화가 없는 사이보그라고 할까. 간과 쓸개를 두고 다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목격한 나는 실로 팀장님이 존경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없는 미천한 인간임을 알기에 실제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조금은 틀릴 수 있고, 무례하지 않은 상대에게만 친절해도 되는 인간 세계로 도망가고 싶어졌다.
나의 첫 직장은 가족같은 조직을 만들겠다며, 주말마다 등산이며 봉사활동에 직원을 총동원했다. 위험할 때 자기부터 살겠다고 구성원을 총알받이로 쓰는 가족이라면 당장 떠나야 하지 않을까. 계속 견디다가는 정말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