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서리치게 쓰디쓴 약이 있다면서요 지금 살 수 있나요 먹기만 하면 24시간 고통이 유지되는 건 보장되는 사실인가요 제가 지금 급해서요 의지할 숨구멍이 없어서 그런데 구구절절 쓸데없는 이야기 듣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주시겠어요 급해서요 지금 급해서요 많이 급해서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게 슬플 일도 아닌데 슬퍼하는 내가 꼴 보기 싫어서요 저 곧 있으면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묻지 않는 곳으로 팔려간다는데 불쌍하지도 않으신가요 그러니까 약 좀 주세요 제발요
좋아하는 감정에 휘둘릴 때마다 내가 없어집니다
투명한 유리문이 열 바퀴 이상 돌아가는 동안
덩그러니 잘리다 만 흰 무처럼 모르고 서있는 그게 나예요
버려지는 게 낫다는 바람
자고 일어났을 때 눈앞에 풀잎이 춤추고 있으면 더 슬퍼져요
그래서 매일을 지하실이나 낡고 까만 천장 아래서 잠듭니다
증상은 이 정도면 됐나요 나는 누굴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
불행한 게 아닌데 불행한 게 아니란 뜻이 아니라 미치도록 불행한데
문단만 바꿔도 아무도 나를 모를 거예요
이것마저도 불행입니까
징징거려서 미안합니다 약만 빨리 주셨어도 번거로운 일 없었을 텐데
벌써 내가 또 마음을 열었군요 미안합니다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더 가까워지기 전에 버려주세요
거기 깨지고 찢어진 큰 글씨 약 봉투 말이에요
나는 내가 가는 길에 내다 버릴게요
혼자서도 잘하는 거
갈기갈기 아프면 아픈 대로
드러눕기
활개치기
미련갖기
마음주기
울기
후회
당신과의 새벽마다 빼앗긴 마음의 결
내심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것밖에 안 돼서 미안합니다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