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당신을 만난다면

by 블루나잇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을 해 본 적 있니? 새끼손톱만 한 애정을 받고 싶어서 심장 전체를 꺼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우습고도 열렬한 사랑 말이야. 왕왕 혼자서만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둔. 나는 있잖아. 아주 가끔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을, 왜 안 될까에 대한 고민의 부표를 타고 심해 깊은 곳까지 떠밀려 가곤 했어. 왜 나만 안 될까. 왜 모두 왔다가 떠날까. 내가 놓으면 그대로 멀어지는 걸까. 안심하고 싶었고, 안겨지고 싶었지. 진짜라고 믿고 싶었으니까.


삐친 정수리 위로 외로움이 짙게 드리워져서 속이 울렁거릴 때가 있었어. 외로움 때문인데 그것만 빼고 모두 게워낼 수 있었어. 서투른 감정을 휘두르고 도망쳐 버린, 궁극의 가해자를 놓친 기분을 너는 아니. 아무리 물을 채우고 또 채워도 구멍 밖으로 퍼지는 물줄기들이 다시 나에게 쏟아져 내 머리칼을 적시고 몸체를 뒤덮는 끔찍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니. 꼭 한 번만 나만큼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정말 그뿐이었는데. 우리는 사랑이 뭔지 몰라서 대부분의 사랑을 사랑이 아닌 시간으로 메꾸곤 하였지. 그런 사랑은 헤어질 때 아프지 않아. 억울하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아. 그게 제일 아픈 거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어.


진심이었다던 많은 인연들의 진심이 내게 실제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나는 왜 그들의 얼굴을 어여쁘게 묘사하는 짓에 갈등을 느낄까. 상처는 우리들 중 누가 남긴 갈증이었을까. 초라한 기억들은 무슨 부류의 사위인지, 그건 한참이 지났음에도 유예된 부랑자처럼 홀로 슬퍼했다는 방증이기도 해. 지나간 마음은 재난이라며, 왜 나는 꾸역꾸역 외딴 형체로 살아남아 폐허가 된 조각들을 상기시켜야만 했는지. 나를 못살게 구는 덩어리들이 대체 뭔지 잘 모르겠어서. 매일 아무 생각이 안 났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어. 이제는 그냥, 이 모든 게 죄악처럼 느껴지기만 해. 세상은 언제나처럼 는 이에게만 잔인하고. 당신과의 만남에서 내가 배운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덜 허술하고 덜 허약하게 나를 지킬 수 있게 될까 싶기도 하고.


너무도 쉽게 폐기되는 진실에 비해, 거짓으로 웃고 울던 이야기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더라고. 하수구를 닮은 마음 한 편에 썩지 않은 채 끈질기게 도사리고 있더라고. 걔들은 끝끝내 어딘가에 살아남아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곧은 자세로 서있을 거야. 실은 내가 그들을 만들어냈지만 없애는 방법을 연마하지 못했거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시스템 오류 같은 그것들은 잊을만하면 내 안을 타고 들어오겠지. 무시무시한 존재감은 알겠으나, 끔찍한 기억을 행복한 추억으로 뒤바꾸는 파렴치한 행동만은 저지르지 않길 바라는 중이야. 언제 행복해봤니 내가. 우리가. 너는. 그리고 나는. 우리 앞에서 어쩌면 단 하루도 기뻤던 적 없었을 텐데.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나는 여전히 부러워해. 그런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사랑이 무언지 묻고 싶었어. 먼 미래엔 나보다 날 더 사랑해 줄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다고 생각해. 그이가 나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나 때문에 조금은 아파봤으면 좋겠어. 아주 조금만. 아침이 밝기 전에 떠나야 하는 건 아닐까 온몸 곳곳에 물든 걱정 따위는 집어던지고 싶어. 짐을 챙기는 꿈을 꾸다가 황급히 깨어나고 싶어. 당신의 고이 잠든 눈꺼풀을 끌어안으며 안도하고 싶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눈치 보지 않고 투정 부리고 싶어. 사랑하는 것 같을 때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참을 수 없겠다고 입 맞추고 싶어. 내 표현으로 당신을 잃을까 그만 겁먹고 싶어.


내가 밑바닥까지 보여준대도 당신은 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봐줬으면 좋겠어. 어쩌면 그리도 흔한 것들을 다시 태어나도 이루기 힘든 환상이라고 말하지. 단지 주어진 자만 받을 수 있는 특권이라고. 그럼에도, 허황된 꿈을 꿈에서라도 만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사람이 어떤 누구라도 사랑하게 될 거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어. 그 사람 때문에 슬퍼지고 싶을 것 같아. 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것 같아. 만약 진짜로, 내가 그런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또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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