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블루나잇

온통 까맣던 바다에 몸을 담그니 비로소 하늘의 색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어. 철썩이는 포말들이 서로를 잘게 부수고.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그곳을 보며. 가라앉았고. 가라앉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도 깊어지는 일은 폭우의 샘물이라고 곱씹으면서.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었던 건데도 나는 널 걱정하고 지금이 마지막일 것처럼 울어댔잖아. 나는 네가 있던 계절을 기억하지 못해. 비어있던 곳은 단 한 번도 채워진 적 없었으니까. 너무 잦게 훑고 오래 앓아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어.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오로지 너를 덜 희석시키는 방법뿐이었는데 굳은 결심은 좀처럼 마음 같이 섞이지 않았지. 물줄기를 막는다고 해도 구멍 난 시멘트 벽은 계속해서 잠겼을 거야. 너무 많이 떠내려갔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기도 해. 모른다고 말하면 영영 모르게 될까 봐 모든 걸 아는 척한다고. 네가 자주 그랬던가. 그 바다는 겉과 속이 달랐지. 추울 것 같았는데 여전히 추웠고 외로울 것 같았는데 여전히 까끌거렸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되뇌면서 가슴을 겨눈 총알 한쪽을 닮은 설움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날씨를 추억하지 못하는 깡통으로 살게 된 지는 꽤 되었어. 아무리 거슬러도 배경은 떠오르지 않았고 동이 트는 선박에는 이름 모를 깃발들만 나부끼고 있었거든. 네가 나타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어. 이제는 그리워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의미 없는 글씨 한 톨 적어 보낼 편지의 수신자도 불분명해졌지.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리도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감정이 휘발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마다 나는 도움을 받아야만 했는데. 그 누구도 네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였는지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으며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자주 가던 음식점과 흩날리던 노래 가사가 어떤 냄새였는지 모르는 것 같았어. 이제 너는 없고.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기억하려 애쓰는 나만 남았어. 더 이상 네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나는. 만약 네가 이런 나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유년처럼. 떠오르는 햇살을 바라보며 웃음을 주억거리고 한 떨기 프리지아 같은 사랑을 품에 감싸며 평범과 익숙한 오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와중에 내 곁에 반드시 있을 누군가는 네가 아니겠지만. 버렸다고 생각했던 건 전부 오만이며 착각이었어. 스쳐 지나간 바람을 가두었다 오해했던 건 그 바람을 사랑했기 때문일 거야. 사람들은 늘 그렇잖니. 해가 저물고. 느지막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버틸 수 없을 만큼 연약하고. 목숨이 쉽다. 쉬워진다. 내가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숨 쉬는 법을 잊을 만큼.

우리는 뛰어들었던가.

아무런 힘없는 생각으로 나는 오늘을 살아내었고.

화마는 매일 다른 모습을 입은 채로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런 당신을 기다리는 일. 계속해서 기대하는 일.


내가 살려줄게. 어떻게든 꺼내줄게. 내가 알던 당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을게. 돌아오고 싶다면, 주저 말고 연락 한 통 넣어 줘. 유약한 숨결의 농도만 달라져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랬으니까. 부디 나를 찾아 줘.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이 존재하는 한. 나는 너의 너고 나는 당신의 당신이야. 기억해 줘. 모르는 사랑도 사랑이었다는 것을. 워졌음으로 인해 비워진 것은 비워진 것이 아니라고 했지. 그 흔적으로 상처로 평생을 살겠다고. 나는 어쩌면 아직도. 이미 비워진 것으로 비워짐을 채우는 그런 당신을 사랑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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