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눈동자

by 블루나잇

너는 갈색 눈동자를 가졌다. 예쁘게 웃는다. 그런 너를 나는 바라본다. 꿈에서의 이야기다. 네가 있는 곳이 현실인지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인지, 구분선이 명확하지 않아 정신이 아득해진다. 나는 혼자서 걷다가 왕왕 너를 떠올리다가 이윽고 다신 없을 우리를 상상한다. 그렇게 흐릿해졌을 때, 비로소 내가 약해졌을 때. 너는 먼 미지의 세계로 나를 힘껏 굴린다. 나는 내가 굴려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네 손길이 따뜻하다. 사랑스럽다. 제발 죽여 달라고 그렇게 울부짖는다. 그러나 내가 죽었던 일은 공교롭게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토록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당신은 본 적 있는가. 그 안에 담긴 세상의 온갖 상념들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평행의 문. 오직 그만이, 그리하여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족쇄의 포도주. 목적 없이 돌아가는 안온한 수레바퀴. 살리고 죽이고 손안에 담긴 희망을 표출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그는. 남쪽 해안선의 붉은 태양처럼 나를 감싸 안는다. 나는 그이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영겁의 시간을 망각한다. 살아가는 평생을 아파하면서, 퍽퍽한 시간 속 한 번의 마주침을 고대하면서.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여생을 모두 소모한다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보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 살려달라는 말.

아파하고 있다는 절망의 눈짓. 내비치지 않았을 뿐인 타락의 치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느 날은 평범한 이들처럼 눈을 뜨고 감으면서도, 어느 날은 작은 지푸라기 하나 견디지 못하도록 온몸이 따갑습니다. 불쏘시개로 구석구석을 지지고 쑤시는 것처럼 심장이 저려옵니다. 살아있는 것이 꼭 죄악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은 나를 남들보다 조금 더 아프게 낳으셨습니까. 그리할 거면서 당신을 미워할 수도 없도록 나를 그렇게 빚어내셨단 말입니까.


한 여름에도 찬바람이 분다. 매서운 겨울의 입김. 홀로 다른 계절을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 웃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웃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들. 이따금 두려운 눈빛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히고 죽으라고 내몰며 사지를 엉망으로 꼬아 놓는다. 동족인 그것들의 눈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핏빛 울음으로 번질 때. 내려놓는다. 내가 문제였구나. 우리가 아픈 이유는. 긴 시간을 어두운 구멍에 틀어박혀있었던 것은.


상태가 온전치 않은 가로등 아래로

익숙하고도 슬픈 너의 모습을 보았고.


너는 사라졌고.

그 뒤로 보이는 모습은 너였다가.

네가 아니었다가.


생천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너는 사람이 맞았던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노쇠한 빨랫줄에 맺혀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숙명이 나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하니 애처로웠다. 이 땅에 비가 내린 적은 없었다. 거품이 투명하게 얼룩진 하얀 무지 티셔츠에 흙으로 배인 크고도 작은 생채기는 도통 지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내가 텁텁한 옥상 냄새에 가둬져 삶에 무너진 채 힘겨움으로 몸부림칠 때마다 당신은 나를 조용히 그리고 거룩하게 바라보았다. 우는 모습을 가만히 음미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만 알고 있는 무언의 언어를 읊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당신이 건네는 위로 방식은 꽤 효과가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적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건 꿈이었나.


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 알아듣는 척했다. 살기 위하여 멋대로 곱씹었다. 무형의 형체는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다시 자신의 터로 돌아가는 듯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당신은, 자꾸만 나를 일으키고 살려냈다. 마치 그 역할만을 위해 태어난 무엇처럼.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신비하고 미련한 수호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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