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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가 과학고에 한번 가보겠습니다.

중등 편

by My Way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공교육만으로 과학고카이스트에 입학했던 제 아이의 육아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교육 정글을 무사히 통과한 승자의 기록입니다.

'우리 아이도 카이스트에 갈 수 있을까'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공계 성향의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학부모님들만을 위한 글은 아닙니다. 제 기록의 핵심은 자기주도학습입니다. 사교육을 받더라도, 사교육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아이로 키워보자는 것이 제 기록의 궁극적 지향점입니다.


기타 자세한 메인 프롤로그는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1 _ 영유아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중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 아이는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짙은 남색 상하의로 된 교복 차림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아이가 배정받은 학교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기에, 초등학교 때보다는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12월생이라 그런지, 또래보다 키도 크지 않아서, 교복에 큰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이 영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입학식 이후의 하루도 초등학생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찍 퇴근한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공부방에 들어가 숙제를 한 뒤,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는 루틴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변화는 분명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계가 뚜렷이 갈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 첫 번째 변화는 바로 '분리수면'의 시작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와 '분리수면'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 저도 압니다. 영유아기를 지나 초등학생 때까지, 실패를 거듭하던 그 분리수면이, 중학교 배정을 받은 그날, 갑자기 현실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부터는 제 방에서 혼자 잘게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정말 그날부터 혼자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속으로는 '설마'했습니다. 그래도, 쿨한 척 아이의 분리수면을 응원했습니다.


"네 방을 꾸밀 때 신경 썼던 하늘 무늬 천장 벽지와 별 스티커가 드디어 제 역할을 하겠네?"


그러면서도, 저는 그날 밤 아이가 무섭다고 다시 찾아올까 봐 선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정말 매일, 혼자 자기 시작했습니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지,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니 아이가 아니라 제가 아이와 분리수면이 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춘기 소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아이에게 꿈과 목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한 학기 초의 어느 날,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그렇지만, 식사 시간만큼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각을 주고받는 소중한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생활은 어떠냐는 아이 아빠의 질문에 아이는 숟가락을 살며시 놓더니 저희와 눈을 맞추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과학고에 한번 가보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이 아빠 역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되물었습니다.


"어딜 간다고?"

"과학고요."

"과학고? 엄마 아빠가 아는 그 과학고등학교를 말하는 거야?"

"예."


저녁 식사 자리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아이 아빠였습니다.


"그래, 열심히 한번 해봐."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와 고등학교 입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초등학교 때도 평범하고 행복하게 보냈으니, 중학교도 당연히 평범하게, 남들처럼 공부하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야 대학 입시에 대해 고민하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과학고등학교에 가겠다"는 선언이라니요.


초등학생 시절, 아이는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귀엽고 엉뚱한 아이였습니다. 가끔은 근자감인지 진짜 실력인지 헷갈리는 정도의 독특함이 있긴 했지만, '과학고'를 떠올릴 만큼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선언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이 아빠는 그저 아이가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응원의 말 한마디를 남기고 끝냈지만, 저는 문득 불안해졌습니다.


'과학고가 어떤 곳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정말 가고 싶은 거라면 내가 뭘 도와줘야 할까?'


그날 이후, 아이는 중학교 3년 내내 과학고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즉, 제 아이의 중학교 시절은 모든 것이 '과학고 입학을 위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과학고 입학을 위한 여정에는 사교육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중학교는 이미 사교육 정글이었고, 아이는 그런 친구들 틈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나가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에게는 좋은 선생님들이 곁에 계셨습니다.

운 좋게도 중학교 3년 내내 담임 선생님들이 모두 수학과 과학 선생님들이셔서 아이의 과학고 꿈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아이는 학교 수업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과학고 입시를 스스로 준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속에는 아이에게 '과학고'라는 목표가 생긴 이유와 그 결심 이후 3년 동안 중학교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갔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간 구체적인 과정을 다룰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지 특목고를 준비하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교육이라는 거센 흐름 속에서도,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다면, 스스로의 길을 찾아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떤 선택을 하든, 중학교 3년을 슬기롭고 주체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약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교육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세 번째 이야기, 중등 편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음 이야기] 정신 차려! 넌 중학생이고, 난 중학생 엄마야!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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