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소도시에서 헬스 하기
P양은 잘 못 한 게 없다. 단지 나의 자존감이 너무 낮고, 불안하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들이다. 하지만 그땐 이런 감정들을 잘 읽지 못해서 P양에게 화살이 향한다.
P양에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으며,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식비와 교통비를 아껴야 되는 생활은 대학생 때 지겹도록 해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고, 한국에서 다시 취업해서 이런 걱정 안 하고 살고 싶다고.
이런 하소연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겁을 주는 걸로 밖에 안 느껴진다. 내가 한국에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왔는데 해외생활이 힘드니까 위로 좀 해달라고 이기를 부렸다.
독일행을 결정했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해진 내 모습을 너무 방치해 뒀다.
운동을 해야 한다.
체육 ( 體 育 ) 인간의 신체적 활동을 통하여 근육을 단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완성된 인격을 만들려는 교육. 신체운동. 인간의 신체적 활동을 통하여 근육을 단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완성된 인격을 만들려는 교육.
빠르면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교육기관에서는 체육을 알려준다. 사전적 의미와 같이 단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완성된 인격을 위해서. 나는 꽤나 운동을 잘했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축구, 농구를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땐 그냥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국, 영, 수, 사, 과 주요 과목 사이에 가끔 껴있는 체육시간. 지금 내 삶의 비중에선 반대다. 체육은 주요과목이다. 시간표에 체육은 반드시 들어가고, 하루라도 안하고 쉬면 나에게 뒤쳐지는 느낌이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운동은 평탄하지 않은 내 삶의 기복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독일에서 러닝과 웨이트를 꾸준히 하고 있다.
독일 헬스장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2가지 정도가 있다.
1. 역시나 부지런하다. / 샤워
내가 다니는 헬스장의 오픈 시간은 6시부터 오전 12시까지 꽤 긴 시간 운영한다. 아침, 점심, 저녁 모든 시간에 가 보았지만 항상 사람들이 있었고, 남녀노소 자주 보는 얼굴들이 출석도장을 찍는다는 것이다. 작은 동네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운동이라는 게 꾸준히 하는 게 정말 어렵다. 내가 운동을 빠진 날은 모르지만 가보면 항상 그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다. 특히 새벽에 샤워장을 혼자 쓰고 싶어서 일찍 가면 정장차림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는 것이다! 리스펙!
그래서 혼자 샤워하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왜 혼자 샤워하고 싶냐고? 아직 조금 부끄럽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좀 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시선이 옷을 벗고 있을 땐 더욱더 느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Germany를 발음대로 읽어보면 게르마니. 샤워실에서 게르만족의 파워를 느낄 수 있다. 독일 형님들 사이에서 작은 비엔나소시지로 있고 싶지 않다.
2.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게 느껴진다.
한국 헬스장은 마케팅에 힘을 많이 쏟아야 한다. 깔끔한 운동기구, 예쁜 조명, 샤워시설, 직원의 친절함 등
독일도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만 조금 결이 다르다. 운동기구가 낡거나 투박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들 운동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신성할 헬스장에서는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거나 플러팅을 할 수 없다. 헬스장에서 이성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본인의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멋이라고 생각하는 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즉, 헬스장에서는 쇠질만 해야된다는 경향이 있다. 직원들도 기본적으로 친절하지만 서비스하는 사람보단 일 하면서 운동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는 게 보인다. 또한 어린 나이에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근육 형님들이 잘 도와주고 알려준다. 웨이트 존이 메인이지만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존에도 많은 기구들이 있고, 유산소를 할 수 있는 머신들이 굉장히 많다. 마실 수 있는 물도 5종류 넘게 있고, 탄산도 마실 수 있다. 피부를 태우고 싶다면 태닝룸에서 태닝도 할 수 있다!
독일 소도시의 헬스장이 궁금하다면 사이트를 한번 들어가 보면 된다!
https://www.clever-fit.com/de/fitnessstudio-in-der-naehe/weimar/
한국에서는 김창옥 교수님은 할 때는 좋은데 하고 나면 안 좋은 것과, 할 때는 힘들지만 하고 나면 좋은 것들을 비교했다. 예를 들면 야식은 먹을 땐 좋은데 먹고 나면 살이 찌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좋지 않다. 반대로 청소는 할 때는 귀찮고 힘들지만 하고 나면 개운하고 정리된 기분이 좋다. 그래서 하고 나면 좋은 것들을 하라고 한다. 그중 하나가 운동이다. 할 때는 힘들지만(Leg day는 지옥이다.) 하고 나면 뿌듯하다. 심지어 더 할 수 있는데 헬스장에서 나온 게 후회될 때도 있다.
나에게는 단계별 동기부여 방식이 존재한다
운동 가기 전 - 운동 중 - 운동 후
헬스장에 가기 싫은 날에는 옷부터 입는다. 옷을 입는 순간 뇌가 이 놈이 운동을 가긴 가려나 보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나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을 땐 그냥 냅다 헬스장 옷을 입어버려야 한다.
1~2개 더 할 수 있는데 인식하지 않으면 안 해버리고 만다. 근육이 성장하려면 여기서 1~2개를 더 해줘야 하는데 생각 없이 쇠질만하면 많이 놓친다. 나는 이럴 때 박승현 보디빌더가 말하는 하나 더를 생각한다. 그것도 힘들면 배경화면으로 해놓은 코너 맥그리거를 본다. 그의 눈빛에 광기를 보면 몇 개를 더 할 수 있다. 그것도 안되면 옆에서 운동하는 멋진 사람들을 본다.
먹는 게 귀찮아질 때도 있는데 나는 살이 빠지는 체질이어서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운동을 하는 목표도 증량을 위해서다. 그럴 땐 체중계에 올라가거나 거울을 보면서 펌핑된 몸을 본다. 그럼 계란도 꾸역꾸역 넘길 수 있다.
이렇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이유도 몸이 서서히 변화하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운동은 가장 효율적인 투자가 아닌가 싶다. 대학은 4년이나 투자했지만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해야 될지 더 헷갈렸다. 취업도 1년이라는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불확실함에 컸다. 하지만 운동은 1~2시간만 운동하면 몸의 변화가 보이고 꾸준히만 한다면 성장할 거라는 확실함이 있다. 쉽지않은 해외생활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지 않도록 일단 운동복부터 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