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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L Jul 07. 2023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찬란함 속에서 느끼는 불안함

다음 날 조금의 미소와 여유를 되찾고 출근했다.

Vihn 아저씨가 뭐라고 하든말든 나는 잘하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하루뿐인 휴일>


우중충하면 빨래 잘 안 마르는데..

주 6일 일하고 일요일 하루만 쉬게 되면서, 하루뿐인 휴일을 정말 잘 즐기고 싶었다.

일요일은 재빨리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빨래를 돌린 뒤 청소기로 탁자에 있는 먼지를 빨아들이며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고요한 주말 아침이 시끄럽다 보니 P양이 잠에서 덜 깬 채 터덜터덜 나와 핀잔을 주기도 했다.


"청소를 할 거면 하기 전에 미리 얘기라도 좀 해줘"


쓰레기봉지의 바스락 소리,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들이 괜히 청소를 같이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을 줘서 미안하다. 혼자 재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데 다음에는 얘기를 해줘야겠다. 아침에 돌린 세탁물 섬유유연제 향기를 맡는 게 취미인데 섬유유연제는 같이 향을 맡아보고 골라서 다행이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고요한 독일마을에 있다는 것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조용하면 조용함이 내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었지만 오늘은 바쁘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기 때문인데 독일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각 도시마다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린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마켓을 가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Weimar의 크리스마스마켓도 예쁘지만, 옆 동네의 Erfurt의 마켓도 가볼 예정이다. 





<Weimar Weihnachtsmarkt>

- 바이마르 크리스마스 마켓


풍차..?

크리스마스 시즌이 오면 특유의 따스한 분위기가 있다. 추운 겨울이지만 거리를 걸으면 캐롤이 들리고,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이 보기 좋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조차도 따뜻함으로 바뀌는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은 독일에서도 똑같다. 춥지만 나와서 글루바인(따뜻한 와인)이나 그 지역의 수제맥주를 먹으면서 친구, 가족, 연인들이 웃음을 머금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오두막에 들어가 글루바인을 마시기로 했다. 글루바인이라는 와인을 파는데 몹시 추운 독일에서 원기 회복제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종류도 굉장히 다양한데 평소 뱅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양하게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글루바인은 안 맞아 P양에게 넘겨주고 커리부어스트와 맥주를 주문해서 먹었다. 마치 추운 겨울날 먹는 라면과 소주의 조합이랑 비슷한 느낌일까?

크..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하면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이 1달 정도로 아주 길다. 즉, 11월 말부터 이렇게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소상공인들이 가게를 열 수 있도록 시청에서 사전등록도 받는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독일 사람들의 광기를 링크에 걸어두겠다. 지금 글 쓰고 있는 날짜는 무더운 6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할지 게시해 놓은 독일 웹사이트 링크를 걸어둬야겠다.

재미 삼아 한번 훑어보기 Weimar 크리스마스마켓 홈페이지


2022년(종료)
https://www.weimar.de/kultur/veranstaltungen/maerkte-und-feste/weimarer-weihnacht/

2023년(예정)
https://www.weimar-weihnachtsmarkt.de/




<Erfurt Weihnachtsmarkt>

- 에어푸르트 크리스마스 마켓


트렘이 지나가는 에어푸르트 거리


소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조금 큰 옆동네에 놀러 가고 싶었다. 편도에 6유로인 티켓을 사고, 15분 정도를 가면 도착하는 에어푸르트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조용한 동네에서만 지내다 보니 사람이 많아서 조금 긴장되었다. 트렘까지 지나다니니까 혹시나 철로에 발이 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거리를 횡단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춥지만 골목 어디선가 들려오는 캐롤 소리가 들렸고 거리마다 예쁜 조명들이 아름다웠다. 


 에어푸르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관람차까지 설치하는 걸 보면.. 정말 진심이다. 신나는 축제분위기와, 맛있는 음식들, 화려한 관람차를 보면서 나는 축제를 온전히 잘 즐겼을까.


사실 마냥 즐기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여행이주는 신기함과 새로움은 무뎌졌고, 내일이면 출근이라는 중압감과 시급 12유로로 알바나 하고 있는 신세니, 이곳까지 오는 차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기간 동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이건 꼭 먹어봐야 된다고 말해주는 P양에게 고맙지만 복잡한 감정들이 올라온다. 조금이라도 아껴야 되는 나와는 비교되는 느낌, P양은 독일에서 졸업, 취업 등 가능성이 많은 것과 비교되는 느낌. 이런 솔직한 생각들이 밑천에서 올라오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 이런 찌질한 모습의 대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경멸.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선택했다는 것.



P양은 잘 못 한 게 없다. 단지 모든 걸 두고 해외로 오면서 나의 자존감이 너무 낮아졌고, 불안하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들이다. 하지만 그땐 이런 감정들을 잘 읽지 못해서 P양에게 화살이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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