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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Oct 30. 2022

그래도 시골에 내려오길 잘했다.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이제 올해로 문경에 내려온 지 3년이 채워지고 있다.


계절이 언제쯤 바뀌는지, 바뀌는 계절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더 빨리 추워지고 봄은 좀 늦게 오고, 지천에 나무와 숲으로 둘러 쌓인 동네는 봄부터 가을까지 매일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아직도 문경에서 제대로 자리는 잡지 못했다.

당당하게 농사를 짓는다고 말 수 없는 상태이고, 책방도 올해는 오히려 손님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바쁘고, 하는 일도 많아졌다.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서 삶이 조금은 불안할 때도 있다. 그래서 누가 일을 하겠냐고 하면 우선 한다고 이야기하고, 기회가 될 만한 것들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책방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외부로 수업을 나가고, 아주 조금 농사를 짓는다. 남편은 남편대로 누가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돈을 받고 일을 하러 가고, 집에서 하는 사과 농사일을 돕고 나와 함께 농사도 책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아랫집 할머님은 우리 부부를 아주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고 알고 계셔서 만날 때마다 기특하다, 알뜰하다 칭찬을 많이 해 주신다. 먹고 살려니 바빠서 집에 잘 안 붙어 있고, 할머님이 물으실 때마다 이것저것 하고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콩밭 옆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는 어르신은 우리를 세상 게으른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하고 계실게 분명하다. 콩만 심어 두고 콩밭에 잘 가지도 않았고, 심는 것부터 엉망으로 심어서 콩 상태도 좋지 않았다. 풀도 무성한데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밭이 정말 우습게 생겼다. 그래서 콩밭에 갈 때마다 뭔가 죄를 짓는 기분으로 가곤 했는데, 우리의 이런 마음을 어르신도 모르실 리 없었다. 남편과 둘이 배밭을 밭아서 농사를 지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내가 배밭 할아버지라면 이런 젊은이들한테는 절대 배밭을 임대 주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삼 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겁도 없이 귀농을 하겠다고 내려와서 이것저것 하느냐고 누군가에게 '빌런'이 되기도 했고, 또 많은 '빌런'을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손절을 당하기도 하고 내가 손절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기도 나쁜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게 처음에는 많이 신경 쓰였다. 오해가 생기면 어떻게든 풀고 싶었지만 그게 더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조금 그러려니 하게 된 것 같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돈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만하고, 불안하지만 도시에서 살 때의 불안감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은 시골생활을 하고 나서 더 안정되었다. 직장을 다닐 때 보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뀌었고, 더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적응이 더딘 아이였다. 그래서 새 학기도 싫어헀고, 새 학년이 되면 성적도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조금 천천히 적응하고 나면 친구도 잘 사귀었고, 성적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다시 올라갔다. (그러다 중학교 가면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면 떨어지고를 반복했다. 맙소사!) 직장을 다닐 때에도 새로 만나는 반 아이들과 급하게 친해지지 않으려고 했고, 그게 아이들에게는 더 잘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면 또 일 년을 잘 지냈다.


그래서 지금도 내 속도로 시골에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자리를 잡고, 남편과 함께 우리의 것들을 조금씩 꾸려 나가면서 살아가는 지금의 속도가 맞다.


문경에서의 세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다. 동지가 가까워지면 4시만 되어도 해가 산 뒤로 사라지고,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그래서 문경의 겨울은 조금 더 길게 느껴진다. 올 겨울이 지나면 4번째 맞는 계절들이 또 기다리고 있다. 긴 겨울을 보내고 나면 내년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내년에 지을 콩밭과 호두는 어떻게 잘 키워야 하는지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금 기대가 된다.


아직도 새로운 문경 사투리들에 적응 중이고,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 리가 싸우시는  같아  번을 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매번 싸들고 나가는 쓰레기가 익숙해지는  불편하지만  매일 보는 풍경에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그래도 시골에 내려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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