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시골 카페라서
편한 줄 아셨습니까?
따뜻한 인정이 있는 곳이라
거저 돈 버는 줄 아셨습니까?
시골에서 운영하는 카페는 대부분 1인 노동력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사장 1인의 인건비다.
물론 카페 창업이 소일거리인 사장들에게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매출과 상관없는 카페를 운영할 수도 있겠다. 노후 종잣돈은 두둑이 챙겨 놓았는데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서 산속에 들어가 움막 같은 카페를 손수 짓거나 은퇴 후에 부부의 한적한 시간과 여유를 느끼고 싶어 5촌 2도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경제활동의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갑작스레 어려움이 더해진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특히나 열심히 노후를 준비해야만 하는 이 시대의 낀 세대, 베이비 붐 시대를 등에 업고 태어난 50대 초반의 여성이니 한가롭게 '자연인' 운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벌고 또 벌어야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접근성이 좋아 시작한 창업이었는데 생각보다 노동 강도는 약하지 않다. 행여 쉽다고 덜컥 덤벼드는 이들이 있을까 봐 우려가 앞선다. 궤변 같지만 그래도 할 만은 하다고 말한다면 작은 위로가 될까. 어떤 일을 하든 이 정도는 해내야 하니까. 왜? 1인 창업은 기본 노동량이 있으니까.
나의 시골 카페 옆은 음식점이 세 군데 몰려있다(추후에 설명을 곁들이겠지만 이 카페가 제법 쏠쏠한 수익을 안겨 준 데에는 '터'가 한몫을 했다). 제법 맛집이라고 소문 나 있는 '어죽집'과 '해물 칼국수 집'의 부부는 새벽부터 썰고 다듬고 무치기 바쁘다. 그렇게 힘겨운 정성이 그릇, 그릇에 담기는 것에 비하면 내가 만들어 내는 커피는 원두 홀빈을 그라운드에 갈아 커피 배전기로 뽑아내면 되니 순하디 순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순한 일도 세상에 거저는 없듯 삼사 개월 일을 하고 나서야 손에 익었다. 무엇이든 모르면 어렵고 힘들지만 알고 익히면 수월하듯.
서울의 출근길 '카페족'을 대비해 일찍 문을 여는 것과 달리 시골 카페는 느지막이 아침이 시작된다. 대부분이 농사를 짓거나 건설 막일을 하시는 분들, 거리는 좀 떨어져 있으나 자그마한 산업단지 직원들이 전부이다 보니 정오 나절이 주 영업시간인 게다. 10시쯤 열어도 여유로운 편이다.
오전 10시
빗자루 들고 저녁 내 쌓인 먼지며 밤새 놀고 간 벌레들의 흔적을 치운다. 시골에 오니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벌레들이 수 없이 많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주의할 점은 역시나 청결이다. 그저 시골을 '빈티지한 멋스러움'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면 착각이다. 유심히 보지 않았던 곳곳에 주인장의 손길이 닿지 않아 생긴 땟자국, 의자의 네 다리 사이로 다리를 놓은 거미줄이 눈에 띄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밤새 말려둔 테이블 행주로 끈적임이 남겨져 있지는 않을까 쓱싹쓱싹, 테이블도 반질반질 닦아 놓고 거미줄은 긴 막대봉으로 제거해 놓는다.
청소 중에도 가장 중요한 청소는 '물걸레질'이다. 이런 소도시 카페들은 마감 때 청소 한 번, 아침에 청소 한 번, 중간중간 수시로 마대질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자로 잰 듯 2차선, 4차선 찻길 외에는 대부분이 흙길인지라 손님들의 장화나 구두에서 떨어진 굵직한 흙덩어리가 카페 바닥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뿐인가 비나 진눈깨비라도 내리면 카페 바닥은 온통 진흙탕이 되곤 한다.
청소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소분해 놓은 과일 재료며 시럽등과 컵들을 챙겨 놓는다. 그날그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켜고 자리에 앉는다. 비나 눈이 내려 날이 궂으면 잔잔한 음악을, 날이 쨍하면 경쾌한 음악을 튼다.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나고 쉬고자 앉으면 11시다.
오전 11시
틈새 시간이 많기 때문에 시골 카페를 운영한다 생각하면 본인의 밥벌이 직업이 따로 있으면 좋다. 활용하기 좋은, 방해받지 않는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정오 ~ 오후 3시
"안녕하세유, 커피 한 잔 줘봐유"
누군가 문을 시원스레 밀어대며 인사하면 영업 시작이다. 커피를 내리고 담고 계산하고, 따뜻하게 스팀 한 우유에 하트를 그려 내보내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매출의 90%는 이 점심 직후 시간대에 몰려있다. 오후 3시가 넘어가면 가볍게 차 한잔을 원하는 분들은 있어도 넉 잔, 다섯 잔 여러 잔의 커피 주문이 집중되는 경우는 드물다. 손님대 연령이 높다 보니 수면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커피는 해가 저물고 나면 인기가 없다.
오후 4시
마감 때까지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서 간혹 가다 한 분씩 오는 손님을 받으면 된다. 날이 궂으면 저녁때까지 카페 손님은 고사하고 지나가는 행인 한 사람도 구경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세상만사 그러려니...' 하고.
오후 7시
일단 마감 시간이 되었으면 외부 등은 모두 꺼두고 실내 등만 켜둔다. 마감 청소 시작이다. 커피 머신 청소를 하는 데 드는 시간도 30여 분, 분쇄기에 남은 원두 잔량은 산화방지를 위해 커피통에 다시 담고, 포터필터는 전용 약품을 풀어낸 세척기에 담가두고 수명이 다한 가스켓과 샤워스크린은 주기적으로 갈아준다. 루틴한 청소를 마친 후, 반드시 물걸레질을 해두자. 수십 명의 손님이 오가고 남은 흙발자욱부터 달달한 음료를 흘려 생긴 끈적하고 꾸덕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렇게 내일 아침을 위한 저녁 청소를 마치고 나면 오후 8시! 드디어 오늘 카페의 하루는 마감이다!
카페를 나서기 전의 한가로운 시간,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등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도 있다.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
혹자는 물어온다. 그렇게 시골 카페가 한가하다면서 어찌 장딴지가 뻐근하도록 이만 보(步)를 걸어 다니냐고. 바로 나의 카페에는 '셀프'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온 새내기가 무엇으로 이곳 분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는가. 방법은 하나! 다가가는 것이었다. 커피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갈 때는 직접 트레이를 들고 손님들 앞자리에 놓아 드린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주고받다 보면 손님들의 얼굴을 익힐 수가 있으니까.
"아이구, 사장님이 갖다 주시기까지 하네유. 감사해유"
"농사일도 힘드신데 여기에 오시면 편히 쉬었다 가셔야죠"
"우리 사장님, 서울깍쟁이인 줄 알았더니만 정이 많구만유"
"정만 많은가유? 맴씨도 고와유"라며 장단을 맞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슬.프.게.도.
매출이 늘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5만 원! 장사 좀 되는가 싶은 날은 10만 원! ...
녹초가 된 몸으로 맞이한 밤이 백 일이 되어가고, 카페의 큰 차창으로 붉은 노을이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더니만 어느덧 봄이 오고 있는 것일까? 해가 길어졌다. 인내하는 시간이 곧 일상이 되자, 나의 종종걸음도 제법 느긋해졌다.
이게 웬일?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지...
인내하고 인내한 덕에 하루 3만 5천 원의 일 매출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매출, 실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