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_ 항아리

by 빈자루

한 합.


나는 몸을 들이밀 수 없었다. 눈을 감은 그와 나 사이의 공간이 밀밀하였다. 나는 몸을 들이밀 수 없었다. 나의 눈은 그를 보지 못하였다. 그의 눈은 나의 뒤를 보고 있었다.






*

"무얼 그렇게 보아?"

명월이 물었다.

무림촌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명월이 무릎을 끌어안으며 곁에 앉았다.

"응. 항아리. 항아리에 비 내리는 것을 보아."

내가 말했다.

명월이 항아리를 보았다.

항아리가 비를 담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장수는 왜 강해지고 싶어?"

명월이 물었다.

"글쎄... 그냥 강해지고 싶어서?"

내가 웃었다.

"그러니까, 왜 강해지고 싶냐고?"

명월이 웃었다.

명월의 긴 머리카락이 이마를 따라 흘렀다.

내가 웃었다.

"... 사실..."

나는 명월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잘 몰라."

단지 명월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으이구, 바보. 그런데도 칼이 좋은 거야?"

"응 난 그냥 칼이 좋은가봐."

"장수 칼은 아름답구나."

나는 나의 칼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나의 칼의 모양을 생각하였다.

나는 나의 칼의 모양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비가 항아리를 적시고 있었다.

비가 항아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

"몸의 힘을 빼!"

누군가가 외치었다.

"몸의 힘을 빼란 말이다. 이 멍청한 놈. 아직 그것을 모르느냐!"

양명 형님이었다.

양명 형님이 군중들의 속에서 나를 향해 고함치고 있었다.

"몸의 힘을 빼라! 너의 몸은 항아리이다."

형님이 외치셨다. 나는 항아리를 생각하였다.


출렁.


항아리에 찬 물이 앞으로 쏠리었다.


몸이 김창수를 향해 밀리었다.


칼이.


김창수의 머리 위로.


긴 포물선을 그렸다.






https://youtu.be/efgtStrF87o


배경화면은 다케히코 이노우에님의 배가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이전 04화60화 _ 뒤